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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할아버지
어느 화창한 여름 날에 산 속. 한 아이가 두 개의 작은 흙무덤 앞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래봤자 모래성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무덤이였다. 척 봐도 8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소년은 그 두개의 흙무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절을 두 번 했다. 그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냥 어렸을 때 듣고, 또 한 번 본걸 따라하는 것 뿐이다. 모두 마친 소년은 조용히 말했다.
"뭐, 그래도 부모님이니까 이정도는 해드려야지. 이제 만족 했어요?"
하지만 무덤 앞에서 대답이 들려올리 만무했다.
"근데 도데체 엄마, 아빠는 누가 죽였어요? 하긴... 나랑은 상관없지만..."
상관없다니? 이제 엄마, 아빠에게 어리광 좀 부려볼만한 나이에 죽은 부모님 무덤 앞에서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그랬어요. 너희 부모님이 돌아가셨단다. 가서 인사는 드려야지. 그래서 귀찮지만 손수 와준거죠. 이정도면 효자죠?"
효자는 무슨 개뿔. 부모님 돌아가셨다는데 돌아가신 부모님 뵈러 오른 게 귀찮은 8살 짜리 꼬마 아이. 그 꼬마는 어떻게 보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 활짝 웃는 것으로 보아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좋아! 이제 엄마, 아빠한테 인사도 했겠다, 어디로 가볼까? 근데 여긴 어디지?"
그 꼬마는 정말 한참을 고민했다. 어딘가로 가봐야지 하고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이 곳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어느쪽으로 가야 마을인지, 아니면 평야인지, 강인지 조차도 몰랐다.
"이런, 이런.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뭐 노숙자 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질리도록 해봤지만..."
그리고는 부모님 무덤쪽으로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어렸을 때 절 버린 두 분 덕분에 말이죠. 그 덕에 세상물정은 제 또래애들 중에서 제가 제일 잘 알거예요."
꼬마의 말투에는 원망도 없었다. 증오도 없었다. 무감정으로 단순히 말만 하고 있었다.
"근데 어쩌죠? 저도 침대에서 한 번 자보고 싶걸랑요. 근데 그럼 어디로 가야 되는건지... 돈이야 구걸하면 된다고 쳐도..."
구걸. 8살 짜리가 할만한 짓은 아니였지만 그 꼬마에게는 매일의 일상이였다. 계속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꼬마. 아무리 봐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꼬마의 부모님 무덤 뒤에 있는 한 나무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꼬마야. 굉장히 특이한 꼬마구나... 정말 마음에 들어. 부모님의 죽음도 자신과는 상관없다라... 크하핫! 이봐 꼬마. 너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꼬마는 뭔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한 할아버지가 서있었다.
"왠 할아버지?"
"이봐, 나랑 같이 안갈래?"
할아버지의 말에 꼬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내가 왜 할아버지랑 같이 가야 해요? 내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득? 이득이야 많지... 뭐 침대에서 자는것도 할 수는 있겠지?"
"그래서요?"
"응? 뭐가?"
"절 8살로 취급 말아요. 다른 놈들보다 세상물정 잘 알아요. 속고 속이는 세상에 그런 말을 누가 믿어요?"
그 할아버지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8살짜리로 보기엔 정말 속고 속이는 난장판의 세상을 너무 잘 알았다.
"뭐, 솔직히 내가 널 원할뿐 뭔가를 해줄 수는 없어. 하지만 적어도 네가 말하는 구걸 같은 건 안해도 되겠지, 안그래?"
꼬마는 그 말을 듣고 제차 물어왔다.
"먹고 재워주는 거죠? 그럼 일단 조건은 마음에 드는거고... 그럼 할아버지가 절 원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절 원하는 이유요. 원하는 이유에 따라 제가 가서 대성(大成)을 할 수도 있는거고... 자칫하면 봉변을 당할 수 도 있는 거라서요. 요즘 세상이 다 그렇죠."
'저 자식, 진짜 꼬마애 맞아? 뭘 저리 따져? 사채업자 해도 되겠네...'
"솔직히 원하자면 엄청나게 길은데... 그걸 또 말해야 하나? 몇 시간은 걸릴거야. 진짜인데..."
"이야기 하는데 일주일 이상 걸리지 않는 이상 들어야죠."
'이런, 꼬마를 잘못 선택했나?'
어쨋든 그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이 이야기를 못 믿을 수도 있어..."
"재미있겠네. 해 봐요."
그 할아버지의 이름은 장진천(將眞天). 꼬마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라서 정말이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할아버지는 아마 들어본적도 없는 이름일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엥? 그럼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예요?"
"으이구... 일단 들어봐."
-
100년 전.
장진천(將眞天)은 그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원래 무림(武林)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 곳은 이쪽 세계와는 많이 달라서 들으면 신기해할 것이 많지만, 그것을 모두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같이 술을 먹던 진천의 친구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한진영(漢振英)이였다.
"크큭... 이보게 진천. 이제 자네도 거의 탈마(脫魔)의 경지에 드는구만. 축하하네. 자넨 정말 대단해. 지금까지 단 한명의 마교인만이 성공한 탈마의 경지를 몸으로 입증하다니. 자넨 무림사(武林史)를 통틀어 2번째 탈마의 고수네."
"뭘 그리 칭찬하나... 자네도 극마(克魔)의 경지를 거의 완성시키지 않았나... 조금만 더 하면 될걸세."
"자넨 너무 그러지 말게나... 탈마의 경지가 정말 신비하구만... 마(魔)를 벗어던지니까 이 친구가 갑자기 착해졌어. 허허허..."
"대단한 것도 아니라니까."
"너무 자신을 비하시키지 말게나. 나같은 사람 백명, 아니 천명이 탈마를 이루지 못하고 이 벽에서 떨어져버렸네. 자넨 진짜 대단한 걸세."
"흠...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할 말이 없군. 술이나 한 잔 하세. 자네도 나도 잘되라는 의미에서 말일세..."
"좋지! 오늘도 천일취(天日取)겠지?"
"그럼! 그 술 아니면 뭘 먹겠나!! 허허허..."
그 두 사람은 허허허 웃으며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진천은 탈마(脫魔)라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였다. 탈마의 경지는 무림의 전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단 한명만이 이룩한 대단한 경지였다. 그 경지에 오는 진천은 현재 모른 마교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마교(魔敎)라는 이유로 정파(正波)인들에게는 천대받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날은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천일취는 한 병을 마시면 천일동안 취해있는다는 뜻으로, 그만큼 독하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수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고수는 몸안에 진기(珍氣)를 이용해서 술기운을 몸 밖으로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환골탈태(換骨脫兌)를 겪기 바로 전 단계인 절대고수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만큼 두 친구가 대단하다는 것을 뜻했다.
진천과 그 친구인 한진영은 축하와 서로에 대한 우정의 의미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하지만 절대 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교로 돌아오면서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물론 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수들은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법. 돌아가서는 바로 운기조식(運氣組飾)을 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 고수들은 사실상 하루에 반 각(약 15분)만 자도 몸에 무리가 없기 때문에 매일 거의 운기조식을 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였다.
"좋아. 이제 시작해볼까..."
진천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온 몸의 육감을 몸 안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단전에 있는 진기를 온 몸으로 끌어올려 순환시키고 그 곳에 갈무리 시키는 작업을 계속했다. 고수일수록 갈무리가 잘 되는데, 진천의 경우 자기 자신이 아니면 갈무리 된 그 진기에서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갈무리가 다 되면 다시 풀어헤쳐 단전으로 모으로 다시 한 번 좀더 갈무리를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속으로 빌면서...
'제발 오늘은 진전이 있기를...'
사실 진천이 탈마가 되면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극마였을 때는 극마와 탈마 사이의 그 벽에 끊임없이 부딫히며 조금씩 벽이 허물어졌는데 탈마가 되자 그 벽의 형체, 아니 예기(銳氣)조차 잡을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제발 진전이 있기를 비는 중이였다. 그런데 하늘이 이 생각을 안 것일까? 진천은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뭐, 뭐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그 곳에 새로운 생각들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인지는 자기 자신도 잘 몰랐다.
'서, 설마 깨달음인가? 벌써?'
몸에도 변화가 있었다. 몸도 꼭 하얘지는 것 같았지만 몸의 진기가 일순간 빠져다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극마 때도 비슷했지만 왠지 스케일이 다르달까? 그리고 단순히 스케일의 차이가 아닌 무었인가가 있었다. 분명히... 하지만 잘 알 수 없었다.
'탈마의 경지를 뛰어넘으면 느낄 수 있는 차이일까? 제발 성공해라...'
진천은 성공하기 위해서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뭐, 뭐지?'
갑자기 다른, 또 다른 기운이 몰려 들어왔다. 극마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단지 탈마를 뛰어넘고 싶을 뿐. 그런데 이상했다. 점점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째서지? 깨달음을 얻을 때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꼭 실성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역시 대단한 경지인 만큼 뭔가가 다른걸까?'
하지만 이제 거의 제정신이 들었다. 진천은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눈을 뜨게 되었다.
지끈
"윽!"
갑자기 머리가 아주 아파왔다. 어지러웠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고수로서는 생각할 수 도 없는 일이였다.
"뭐, 뭐야? 도데체 무슨 일이 있던... 엥?"
투덜거리며 눈을 뜬 진천에게 보인 것은 자신의 숙소가 아니였다. 깊은 산 속. 어떻게 된건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
"이렇게 되서 또 다른 세계로 넘어온거지. 어때 믿기냐?"
"아뇨, 안믿겨요."
"끄응. 기왕이면 좀 믿어주지. 난 네가 꼭 갖고싶거든."
"좋아요!"
"응? 뭐? 갑자기 왜?"
"일단 조건은 괜찮고... 어짜피 노숙사 신센데 어떻게 되봤자 뭐... 게다가 재밌는 얘기도 해 줬잖아요?"
"그, 그런가?"
"할아버지랑 같이 갈께요."
"으응, 그, 그래. 고맙다."
그렇게 되서 그 꼬마 아이는 그 할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불행이였다. 소년 개인적으로도... 이 세계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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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길을 가던 꼬마가 갑자기 할아버지한테 물었다.
"아 참! 그럼 할아버지는 도데체 몇 살이예요?"
"갑자기 그건 왜?"
"아까 그게 100년 전 일이면 100살이 넘었다는 뜻이잖아! 쳇, 역시 거짓말이였어."
꼬마는 할아버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거짓말은 무슨. 탈마였을 때가 200이 다 되었으니까... 지금쯤 한 300살이 다 되어가겠군. 오래살다보면 나이는 기억이 안 나."
"300살? 흥! 역시 거짓말이였어, 쳇!"
"오래사는 것도 내가 살던 세계의 신기한 점 중 하나야. 너도 날 따라왔으니 오래 살게 될거다."
꼬마는 믿지 않았다. 믿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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