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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환상로맨스 No.3 죄와 벌 上

네냐플 왕녀 2006-09-17 01:12 1097
왕녀님의 작성글 1 신고

단편소설 이라기에는 앞편을 조금 보셔야 이해가 가는 그런 시즌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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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언가를 쉽게 잊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당연한 것을 애초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이 나와 그들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벌이었다.






















‘어떻게 해도 알아나야 한다. …정체를!’


귓가에 작지만 갈라지는 듯이 척박하게 울리는 목소리.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등불이 그들의 모습을 비췄다. 책상 위로 빙 둘러앉아 모여서 앉아있었지만 얼굴과 형체조차도 제대로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 중 ‘보리스’의 모습을 띤 그와 몇 명의 소수의 인원들이 숨을 죽이며, 박력 있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겠다. 절대 실패하면 안 돼.”
“만약 그랬다간…우리들의 목숨은 보장받지 못하는 거겠지.”


‘보리스’의 모습을 한 그가 꺼낸 한 마디에 모두들 침묵했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의 뜻. 고로 절대로 ‘그들’의 일은 실패하면 안 되었다. 실패란 용납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여기엔 그들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되 그들의 목숨 또한 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듯 유일하게 형체가 제대로 비춰지는 가운데의 조명 아래 ‘보리스’가 강잉하게 말을 이었다.


“반드시 퀸을…없앨 것이다!”















*illusion-환상로맨스
No.3 죄와 벌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by eli(Mtales.net)





















“유리, 오늘은 어디서 사냥할거야?”
“뭐 늘 똑같지. 수정동굴이나 가보려구.”
“그래―. 역시 세검은 먹고 살기 힘들구나.”


나, 유리. 올해로 18살이 되는 파릇파릇한 여고생이다.
얼마 전, 황당하게도 이 ‘테일즈 위버’의 주민이 되는 아주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했고, 모두가 믿지 못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어느 날 눈을 뜨니, 이렇듯 갑작스럽게 눈앞에 닥친 이 황당한 사실을 믿을 만한 근거도 의식도 현실의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로부터 3개월. 이제는 믿지 않을 래야 믿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어느 정도 현실감 있게 다가온 이 상황에 아무도 그다지 어색해하지 않은 채 그럭저럭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지금의 처지를 말하자면, 나는 이번에 150대로 진입하게 되는, 먹고 살기도 빠듯한 세검 이스핀이다. 안 그래도 현실적으로 보자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이스핀인데, 세검은 더욱 힘들었다. 남들보다 떨어지는 데미지, 비싼 장비, 반면 느린 사냥 속도에 이어지는 가난함….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스핀이 좋아서 한 이유 한 가지만으로 나는 다른 불안감을 누른 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바인딩이라도 찍어줄까? 거기 층도 높은데 매일 걸어 다니기 힘들잖아.”
“그래주면 고맙지. 역시 언니밖에 없어!”


같은 클럽 내에 있는 언니, 시아. 나보다 낮은 130대의 티치엘이지만, 게임을 한창 하던 때부터 만나서(그때가 내 레벨 60대였다-)지금까지도 같은 클럽에서 쭉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성격이 무척이나 좋아서 내가 시시때때로 어리광을 부리고는 했는데도 무척 잘 받아줘서, 나는 시아 언니를 무척 좋아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퀸이 OX 퀴즈 대회를 연다고 했었지?”
“응. 나도 들었어. 저녁 8시였던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플리마켓이 시끄럽더라.”


퀸. 이 세계의 주민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하고 거스를 수 없는 말 그대로의, 우리의 ‘여왕’. 그녀는 한 순간에 우리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이 세계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마치 그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GM(Game Master 게임 마스터)같았지만, 눈앞에서 보이는 그녀의 존재는,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마치 ‘여신’에 가까웠다. 목소리만으로도 대중을 압도하는 그 존재감.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본 것도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우리들에게 의지할 것은 단 하나, 바로 퀸뿐이었다. 오로지 그녀가 내세운 규칙들만 지킨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지금 몇 시지?”


문득 허리에 차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 보니, 저녁 7시 34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어머, 그렇네. 우리 그럼 미리 가볼까? 아니면 사냥하다가?”
“에이, 뭐 그 몇 분 사이에 얼마나 한다고 그래. 난 그냥 가 있을래.”
“그래.”


마침 나는 사냥이 지겨워지던 때라서, 딴 일거리가 생긴 겸 가벼운 마음으로 나르비크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구 주변에 모여 있었다. OX퀴즈의 입구는 항상 변함없이 두나 앞에서 마치 블랙 홀처럼 검은 구멍의 입구가 5분 동안 열리기 때문에, 그 전에 몇 날 몇 일 몇 시에 OX 퀴즈를 한다-는 통보만 알려지면, 사람들은 늘상 버릇처럼 이곳에 미리 와있고는 하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르비크 플리마켓은, 평소보다도 무려 3배는 넘쳐 보이는 사람들로 와글와글 거려 하나도 정신이 없었다.


“으…. 사람 진짜 많네.”


나는 갑자기 미리 온 것이 후회되었다. 그 와중, 어떤 사람이 나의 뒤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세차게 밀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그 반동으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으악! 누구야, 아야.”


나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넘어진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나의 부주의라기보다는 그 사람 때문에 넘어진 이유가 더 컸으므로 어쩐지 열이 받아 그대로 넘어지자마자 나를 쳤다고 ‘예상되는’ 앞의 사람을 바로 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한, 그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쩐지 더 열 받게 했다. 그렇게 말을 한 그는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불멸의 왕의 뿔을 달고, 악마의 뿔을 달고 있는, 그냥 흔하디 흔한 보리스. 아니, 좀더 성의를 가지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사실 해결될 일이었지만 나는 뭔가 좀 억울했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의 잘못으로 갑자기 넘어진 사실도 그렇거니와, 저 성의 없어 보이는 무언가의 대답! 한마디로 나는 뭔가가 불충분 하다고 느낀 거다. 나만 그런 건지 몰라도.


“이봐요, 사람을 넘어뜨렸으면 좀 더 성의 있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치면 어쩌려고, 사람을 그렇게 조심성 없게 치고, 넘어뜨리기까지 하다니!”
“…전 사과했습니다만….”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여전히 탁하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니 사람이 사과만 하면 끝이에요? 하다못해 남자가, 숙녀가 넘어졌으면 손으로라도 잡아줘야 예의죠. 안 그래요?”


라고,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웃기고, 상대방이 듣기에는 좀 기가 막힌 말을 하고 나서-생각한 거지만,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별것 안 되는 일로 이렇게 그 사람을 잡아놓고 저런 말을 쏘아붙이고 있는 일이, 사실은 더 쪽팔리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주위에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동시에 나와 그 사람에게 집중되기 시작했지만, 마침 매우 타이밍 좋게도 ‘퀸’의 전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르비크 플리마켓의 중심지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 하늘 아래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너무나도 아름답게 등장했다. 여전히 고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렇듯 오늘의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여주신 유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청아한 목소리가 플리마켓 안에서, 아니 서버 안에서-울려퍼지자 마자 유저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나도 곧 그 쓸데없는 싸움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며 곧 시작될 이벤트를 생각하며 두근두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 당시, 나랑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싸움을 벌이던 그가, 그 당시 퀸이 나타날 때만 하더라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만 보았더라면―후에 그런 지독한 ‘벌’ 따위는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 곧 입구가 열립니다. 유저  분들께서는 부디 질서를 지켜주시고, 이날의 이벤트가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곧 두나의 앞에는 갑작스런 이펙트와 함께 흡사 우주의 블랙 홀 같은 모습의 입구가 퍼어라니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구멍의 모습이 실체화되자마자, 사람들은 마치 백화점 세일기간의 아줌마들(..)처럼 달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아까 그 사람에게 사람들도 많은데 다칠 수도 있는 데서 사람을 치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입구가 열리자 그런 건 까맣게 잊혀진 채 나도 무작정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 블랙 홀 같은 구멍 안으로 들어서자, OX모양으로 나눠진 흑백의 방안에서 사람들이 꽉 꽉 들어차 있었다. 실로 그 인원이 정말 어마어마했고,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잡담 소리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나는 곧 시아 언니가 아직도 사냥중인가 싶어서 쪽지 연락을 취했다.


[언니, 아직도 사냥 중이야? 입구 열렸어!]
[알아, 아까 퀸한테 들었어. 달려가는 중이야. 앗, 지금 들어간다.]


나는 언니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그대로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예전에 OX퀴즈를 할 때는 우리집 컴퓨터는 거의 견뎌내질 못한다. 서버 내의 동접자들이 거의 한 장소에 몰려있다는 뜻과도 같으니까 말이다. 뭐, 이 ‘테일즈 위버’의 실존 주민이 되고 나서는, 렉이 없는 점이 매우 편하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계속 워프 되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정신없었긴 했지만 곧 모습을 나타낸 언니를 군중 속에서 발견하자마자 정말 반가움이 들었다. 마치 외국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 뭔가 좀 틀린 듯하지만 뭐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아, 진짜 복잡하다.”
“뭐 OX하면 맨날 그러잖아. 어쩔 수 없지.”
“하기는.”


시작되기 전, 방 안에 고립되어 있는 듯이 꽉꽉 들어찬 그곳에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떠들어댔고, 5분쯤이 지나자 퀸이 OX 방 안에 나타났다. 항상 OX 방 대기실 카운터를 지키는 세나 바로 옆에 그녀가 서 있었는데, 우리는 그쪽으로 넘어갈 수가 없도록 결계 같은 것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함부로 만지거나 할 수는 없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OX 퀴즈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내는 문제에 대해서, X일 경우 X쪽 방으로, O일 경우 O쪽의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자,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그나마 좀 가라앉는 듯-했으나 그래도 뭐 별 소용은 없었다. 나는 시아 언니와 함께 다음 문제가 나올 때까지 가슴을 두근거리며 긴장된 태도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나올까? 나오자마자 5초의 여유밖에 없으니, 빨리 달려갈 수 있도록 문제에 집중해야지. 그런데 그때였다.


“――퍼엉! 퍼엉!”


갑자기 폭죽 소리 같은 게 뒤쪽에서 들려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진짜로 폭죽 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터뜨리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하여간 공중에는 빨간색, 노란색 등등의 별 들의 모양이 퍼지기 시작했고, 눈폭죽 까지….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대체 누구야? 나는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옆에 있던 시아 언니는 의아한 눈으로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뒤로 누군가가 잽싸게 다가왔고, 나는 순간 어? 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순식간에, 나의 뒤에 다가온 그 사람은 나를 목덜미로 움켜잡아 나는 순식간에 뭔가에 잡혀 매달린 꼴이 되었다.


“――――――――퀸!!”


그것은 어디선가 들어본 그런 목소리였다.――그래, 아까의 그 가라앉아보이던 그 목소리! 나는 순간 매우 당황함과 함께 의아함이 들어 바로 나의 목을 움켜잡고 있는 뒤의 그 사람을 고개를 겨우 돌려 바라보았다. 아까의 그, 불멸과 악뿔을 단, 그냥 평범했던 인상의 그 보리스! 어째서 내 목을 잡고, 그리고 뭘 하는 거지? 나는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옆에는 왠 티치엘이 같이 있었다. 그냥 맹하게 폭죽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 나를 중심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말이다.


“퀸, 경고한다. 어서 우리를 현실로 내보내라! 경고한다. 우리는 장난이 아니야. 안 그러면 이 당신의 ‘정상적이고 순종적인’ 유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야.”
[무슨 짓입니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고도 살아남으실 것 같습니까?]


퀸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아하고 아름다웠지만, 그 대사에는 조금은 당황함이 곁들여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만큼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무려 곁에서 조금씩 물러나있었다. 바로 옆에 있었던 시아 언니마저 엄청나게 당황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 채 그대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유리야!!”
“가까이 오지 마세요!”


모나스 크리스탈 엔젤 스태프를 내 앞으로 가로서며, 그 사람의 옆에 있던 티치엘이 달려들려는 시아 언니를 갑작스럽게 막아섰다. 나는 뒤에 있었으므로 그녀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지만, 시아 언니는 매우 안타까운 듯이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배리어!”


그 티치엘은 순식간에 그 주변을 배리어로 감쌌다. 이런 짓을 한다고 달라질게 대체  뭐야! 스킬 적용이 안되는 게 사실 정상이지만, 이 ‘가상의 세계’는 일단 자신의 자유행동이 보장되었으므로 실제로 누굴 친다거나, 하다못해 자신의 스킬을 쓰는 일 또한 매우 쉬운 범주의 일에 들어서 있었다. 카운터에서 서 있던 퀸은 그냥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를 잡고 있던 보리스는 나를 잡고 강력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소리를 외쳤다.


“우리는 너의 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막고자 창설된 ‘드림·인버스(Dream inverse)’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다! 우리를 당장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주고, 이 가상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라!”
‘뭐?’


드림 인버스? 그게 뭐지? 어디 선가 퀸에게 반발하는 조직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흡사 그냥 괴담 같은 걸로만 치부했었는데, 그런 게 진짜로 있구나! 그녀는 순간 덜컥 겁이 들었다. 설마 진짜로 날 어떻게 하는 거 아닐까? 아니 하다못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왜 하필 그녀 자신이란 말인가? 설마, 아까 부딪히고 나서 내가 쓸데없이 시비를 건 그런 이유 때문에? 아악~~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풀리는 게 없냐고! 정말이지 가슴속에서부터 울분이 터져 나왔지만, 그가 너무 아프게 내 목을 쥐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숨 쉬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이러다 영화에서처럼 칼이라도 내밀어서 그어버리는 거 아냐? 으악!


[죄송하지만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저의 체제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신다면, 어떻게 되시는지 알고서 이런 짓을 하시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하지만 우린 너의 체제에 따라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너는 우리를 그저 이런 가상의 세계와 꿈속에 가둬놓고, 우리를 농락하는 것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저 말. 그 사람은 바로 처음으로 퀸에게 대들었던 ‘타나토스’다. 그 사람은 서버 내에서도 꽤 잘 나간다고 했었던 고렙 시벨린.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봤자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그 사람도 나르비크 플리마켓에 서서 처음으로 퀸에 대한 반항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일주일을 외치고 보내다 퀸에게 사라지는 첫 대상자가 되었다. 그 때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그곳에 있던 모든 유저들은 깨달았다. 이 세계 속에서 벗어나려면 그녀의 말에 복종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어차피 주어진 시간,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렇게 지내다가 현실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면 될 것 아닌가, 하고. 어차피 그 사람은 죽은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묻혀 살며, 단순하게 지내온 나에게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는, 이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지, 말던지 열심히 퀸을 보며 쏘아대던 그는 팔을 바짝 더 조여 오며 옆에 있던 티치엘을 향해 말했다.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면, 우리도 인질을 놔줄 생각은 없다. 티아라!”
“네, 레스코. 텔레포트!!”


그녀는 순식간에 스크롤을 꺼내들더니 곧 나와 보리스를 휭 하니 날려버렸다. 무언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그만 OX장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흘러들어갔을 때,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네, 킹. 그렇습니다. 네, 과연 예상대로….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인질이 있으니 일단…….”


알싸한 차가움이 온몸으로부터 밀려와,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감을 때보다도 밝은 빛은 그다지 들어오지 않고, 어디선가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순간, 또 한명의 목소리가 내 바로 옆으로 크게 들려왔다.


“레스코, 그 이스핀이 눈을 떴어.”
“―아아, 그래.”


나는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기분에, 그 알싸한 차가움과 아까 목을 꽤 강하게 잡혀 있었던 아픔으로 조금씩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곳은 난생 처음 보는 장소였다. 아니, 이렇게 보니까 난생 처음 보는 장소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왠지 챕터 깰 때쯤에 와본 듯한……. 어디선가 본 듯한 대리석 발판이었지만, 가지가지로 금이 나서 그 사이에서는 물기나 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색깔도 썩어 들어가는 듯한 시커멓고 탁한 색이라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은 그다지 없었고, 아까 그 보리스와 티치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그러고 보니 당신들은!”
“이제서야 정신이 드나 보군.”
“나를 인질로 잡아온 거에요? 이럴 수가…, 나플에서 겨우 넘어진 거로 시비 한번 걸었다고 해서 이럴 것 까지는 없잖아요.”
“무슨 소리야?”


내가 위에서 거만하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보리스를 향해 쏘아붙이자, 옆에 있던 티치엘이 그 보리스를 쳐다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면상을 맞대는 일이 생겨서.”
“면상을 맞대다니, 저질! 무슨 뜻인지는 알고 쓰는 거에요?”
“……….”


그는 아무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흥, 그러니까 제대로 설명할 것이지. 나는 그가 내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무언가 매우 흡족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쳐다보던 티치엘이 풋, 하고 웃는 것이다!


“풋.”
“아니, 왜 웃는 거에요?”
“……아니, 왠지 뭐랄까.…음, 왠지 인질도 나름대로 잘 골라잡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아 맞다! 왜 하필 나에요! 게다가 인질을 잡는다고 해서, 뭐가 해결될 거 같아요?”


그 소리에 단번에 티치엘과 보리스의 분위기는 심각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니, 그야말로 단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고 꿋꿋히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마디로, 인질의 신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뭐 그 소리지!


“당신들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말이죠, 그 타나토스-라고 알죠? 맨 처음에 대들었던 시벨린! 그 사람, 알고 보면 내 친구인데-뭐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 사람도 퀸한테 공개적으로 대들다가, 단번에 사라지고 말았다고요. 알겠어요? 어차피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곳에서 탈출할 만한 요건도 코딱지만큼도 없을 뿐더러, 퀸한테 괜히 개겼다가는, 주어진 ‘혜택’마저 다 없어지고, 그대로 사라질 지도 모르는……. 꺅!”
“이봐, 건방진 이스핀! 네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이에서 뭐 이름까지 불를 친밀함은 없으니 ‘인질’정도로 해두지. 지금 네 신세는 어디까지나 ‘인질’일 뿐이야. 이렇게 우리한테 함부로 개길 만한 상황이 못 된다고! 알았으면 제대로 네 신세를 알아두도록 해. 알았어?!!”


그는 정말로 싸늘한 눈초리로, 나의 멱살을 갑작스럽게 잡은 채 그렇게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순간 그 눈초리가 너무 무서웠다. 정말 내 평생, 결코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18살 평생에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당해(?)본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떨리는 가슴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은 열성을 토했다. 아~ 누가 나 좀 말려줘. 속마음에서는 그야말로 이성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고자 했지만…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당신이야말로 뭘 잘못 알고 있어요!-그전에 이것 좀 놔요! 퀸은 이런 짓 한다고 당신들을 쉽사리 놔주지 않아요. 어쩌면 퀸도 불가능 할지도 모르죠.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요? 어차피 주어진 시간 3년, 하지만 현실의 시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야,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는데 이런 데에 쓸데없이 힘은 왜 빼는 거죠? 그래봤자 이 세계의 여신은, 퀸이라고요! 절대자! 당신들은 절대 그녀를 이길 수 없어요! 더불어, 나도 결국 돌아가게 될 거라고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녀가 정말로 당신들을 찾아오기 전에 날 놔주고, 쓸데없는 의식은 버려요!”


정말 내 평생 그렇게 열성을 토해본 적은 처음이다. 예를 들어-문학 시간에도 토론 따위 엄청, 엄청나게 싫어한다. 나는 그리고 책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공부도 별로였다. 나름대로 노력은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대로 이런 열변을 토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지만, 이성에서는 나 이러다 퀸이 오기 전에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또 한번 지나가면서 울음을 토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흑~ 과연 나의 예감대로 그의 눈초리는 더 사납게 변하기 시작했다. 나의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이 꾸욱 하며 더 힘을 주는 느낌이 바로 들려왔다. 아 신이시여, 내가 이렇게 가는 구나.


“…제/기랄!”


그리고 그런 욕지거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나는 부딪힌 충격과 놀라움에 그만 쿨럭 쿨럭 거리며 기침이 가슴속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제/길, 이스핀이 아무리 남자같이 생겼다지만 엄연히 여자를, 바닥에 이런 식으로 내동댕이치다니. 역시 태도가 글러먹었어. 나는 계속 기침을 해대며 겨우 안정을 되찾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런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휙 돌아서더니 티치엘한테 말했다.


“티아라, 잘 감시해. 나는 본부에 갖다오겠어.”
“…네, 조심하세요, 레스코.”


그렇게 그는 말하고서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워프한 거다. 망할 자식! 내 말에 따질 수가 없으니까 도망치다니. 나는 겨우 몸을 추스리며 일어섰다.


“당신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레스코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을 거에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냥 가만히 계세요. 어차피 우리도 당신을 정말로 죽일 생각으로 데려온 건, 아니니까.”
“……그럼 당신은요?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 전혀 못되어 보였다. 아까 시아 언니를 강력하게 막아서던 그 매몰찬 뒷모습과는 틀리게 그녀의 인상은 상당히 호감 가는 형이었다. 하지만 그 슬픈 눈빛이, 어쩐지 평소에는 맹하고 둔감하다는 소리를 인정하게 하는 나 자신에게까지 느끼게 할 정도라서,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티아라죠? 아까 내내 들었어요.”
“아, 네. 아시네요. 역시 상황에 능숙하신 분이군요.”
“에에, 어떤 의미로요?”


나는 기가 막히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쿡쿡거리며 미소 지은 채로 그냥 나를 좋게 쳐다볼 뿐이었다.―근데 가만,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에요? 그렇게 맘 놓고 있다가 내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건 소용 없어요.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어딘데요?”


마침 나도 궁금한 차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곳은 ‘뚜렷한’ 장소가 아니다. 사람은 아는 장소를 가게 되면, ‘아 어디다!’라고 뚜렷하게 기억을 하게 되지만, 이곳은 그런 ‘명칭’이 사용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은 이벤트 존안이에요.”
“네?!”


이벤트 존? 이런 곳이? 무슨 소리지? 내가 이해 안 되는 벙찐 얼굴을 하고 있자 그녀가 마저 설명해주었다.


“챕터 같은 것을 하면, 예를 들어 10이나, 11도 그렇고, 나르비크의 하수구나, 카디프의 하수구 같은 평소에는 허용이 되지 않는 장소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죠. 이곳도 그와 같은 경우로, 용자의 무덤 챕터 장소 입니다. 레스코가 일부러 챕터를 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포트의 형식으로 출입하게 된 거에요.”
“컥….”


치밀하다. 아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지? 챕터의 장소 안이라니!


“그, 그런다고 퀸이 못 찾아낼 것 같아요?”


나는 왠지 모를 당황감에 말을 더듬으며 따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미소를 지우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물론, 퀸이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시간은 끌 수 있어요.”



이 사람들, 진심이잖아! 왠지 나는 그때서부터야 비로소 현실감이 들길 시작했다. 나, 정말 이상한 일에 끼게 된 거야…으앙, 시아 언니, 보고 싶어~~~~~. 정말 간절하게 평소에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까지 다 기억나게 되는 절규의 상황이었다. 흑.



전체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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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벨린
    네냐플 혈거투
    2009.09.23
    오ㅋㅋ재미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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