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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닿을 수 없는 당신에게

네냐플 마양 2013-03-07 14:56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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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는 당신에게

 폭설이 내리고 연일 추위가 계속 되던 나날도 봄 햇살에 서서히 물러나고 있습니다.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면 궁금한 것 투성이 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누구와 함께,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오늘도 저는 고요히 당신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 봅니다.

 당신을 알게 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갑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저는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을 어떠한 형태로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품고 보듬어 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제 마음을 풀어가야 할까요. 편지를 쓰기 위한 흰 여백을 멍하니 바라보며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입에 담아 봅니다. 보리스 진네만. 나의 존재를 인지조차 할 수 없는 당신에게. 이제야 용기를 내어 제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당신과의 첫 만남은 중학교 도서실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책의 첫머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에메라 호수에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망령이 있어요.' 유모의 말에 떨던 꼬마였던 당신이 당시의 제 자신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을 헤쳐나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테지요. 당신을 이렇게 애틋하게 여기게 된 것은. 그러다 발견한 책날개에는 당신이 등장한다고 하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게임에 대한 것은 제 뇌리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수험이 다가오면서 현실에 쫓기게 된 저는 제 마음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당신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친구가 자신과 함께 게임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2가 무슨 게임이냐며 친구를 타박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입에서 나온 한 단어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테일즈위버라고, 진짜 재미있는거 있어. 나랑 같이 하자. 내가 템도 줄게." 테일즈위버. 저는 심장 깊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보석을 발견한 듯한 충격과 함께 잊고있던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당장 고등학교 도서실로 달려갔습니다. 그 곳에도 당신의 이야기는 얌전히 책장에 꽂힌 채 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저는 이튿날부터 테일즈위버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캐릭터 선택창에는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당신을 고르는데에는 망설임이 필요 없었습니다. 아이디를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 저는 중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부르던 별명으로 아이디를 정했습니다. 아기자기한 필드를 귀여운 도트 모습의 당신이 총총 달려가는 것만 봐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당신과 만났고, 당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되었습니다. 같은 듯 달라진 당신은 이 곳에서도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이 강해져서 더이상 고통받지 않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요령없이 우직한 플레이 스타일로 느리지만 꾸준히 당신을 키워갔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한 저였기에, 어떤 유저가 무엇을 부탁해도 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을 오롯이 저만의 것으로 하고 싶었기에, 언제나 솔플만을 고집했습니다. 당신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이 강해지는 것이 기뻤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테일즈위버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어느날인가부터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 때의 당신은 사냥도 PK도 전부 어중간한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무시하며 언제나 혼자 사냥터를 누비고 다녔지만, 당신을 폄하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저를 따라왔습니다. 저는 점점 그런 말들을 참을 수 없게 되었고, 초조하게 득템을 노리고 사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고 집착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이상 당신의 모습을 보아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고3 생활은 당신과 함께 레어 사냥터를 전전긍긍 하며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상냥한 당신이라면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낼까, 아니면 미안해 할까. 그런 덧없는 생각을 하며 살풋 웃곤 합니다.

 그 후 다행히 저는 대학에 무사 입학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컴퓨터의 그래픽 카드를 교체한 후부터 테일즈위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아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고자 알바를 하고 돈을 모아 룬의 아이들 윈터러 양장본을 사고, 데모닉의 마지막 부분에서 당신이 나오는 부분을 읽으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지인에게서 테일즈위버가 무사히 잘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당신을 다시 만나러 왔습니다. 당신은 그 옛날 헤어질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을 보며 그리움과 사랑스러움과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을 당신과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늙어가겠지요. 그러나 저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기쁜 일이 생기면 당신을 떠올리며 더욱 행복해 할 것이고, 슬픈 일이 생기면 당신을 생각하며 인내할 것입니다. 

 이 편지 또한 당신에게는 전해지지 않겠지요. 그 사실에 기대어 마지막으로 당신의 소중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호칭으로 감히 당신을 한번 불러보고자 합니다. 부디 노여워 하지 말아주세요.

 나의 소년 보리스. 영원히 사랑합니다.


2013. 봄.
전체 댓글 :
1
  • 아나이스
    네냐플 엘라타프
    2013.03.07
    으엏ㅇ허어허어엏 이쁜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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