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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Master) - 2

네냐플 Bluelist 2007-07-19 19:37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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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저녁쯤에 차려졌던 축하 연회는 시에르로서는 정말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축하 파티라도 생각했던 시에르는 기대하고 갔지만, 국왕과 지체 높으신 귀족들간의 연회라는 것을 잊은 것이 잘못이였다. ‘오늘은 정말 경사스런 날이다.’라는 왕의 말과 함께 술잔이 가볍게 돌아갔지만, 그것도 시에르에게는 차나 다름없는 밋밋한 것이였다. 그래도 술을 먹었다고 얘기가 돌아가긴 하지만, 다 정치 얘기에, 전쟁 때문에 걱정이라는 신세 한탄들 뿐이여서 거의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리덴역시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역시 귀족들과는 못 놀겠다는 것일까.

 

“정말 지루하군.”

 

리덴은 대답이 없었다.

 

“이봐. 스승이 말하면 대꾸라도 하라구.”

 

“솔직히 지루하긴 해도, 자주 해보던 것이고, 또 그랜드 마스터면 그래도 공작이니까 내색할 순 없죠. 그리고 스승님도 너무 내색하진 마십쇼. 이 연회의 주인공은 스승님이니까.”

 

리덴이 조용한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지만 시에르는 코웃음을 쳤다.

 

“주인공? 웃기고 있네. 주인공이라고 뭐 하지도 않잖아. 노래를 부르냐, 춤을 추냐. 파티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야 재미있지. 이래서 뭔 맛이야? 술은 또 무슨 맛인지······.”

 

연회는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주인공이고 뭐고 모두들 시에르는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상의 주인공은 국왕이였고, 조용히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귀족들은 모두 국왕에게 아부하기 바빳다. 국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하면 귀족들은 ‘맞습니다, 지당하십니다.’하면서 억지 미소를 짓는 것이다. 그렇게 있던 중 국왕이 시에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보게, 시에르.”

 

“네.”

 

시에르의 대답은 어느정도 퉁명스러움이 느껴졌고, 리덴은 못말린다, 혹은 저 사고뭉치 하는 표정이였지만, 오늘 밤 당장이라도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랜드 마스터의 스승이라면 분명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순간 시에르는 ‘그 일반인의 기준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하려다, 안절부절 못하는 리덴의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실력을 이 자리에서 보고 싶은데 괜찮은가?”

 

‘그러다 연회장 날아가면?’

 

리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다르게 나왔다.

 

“물론입니다. 그럼 대련으로······?”

 

“그래. 상대로는 누가 좋을까?”

 

국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지. 밖에 누구 있으냐!”

 

“예.”

 

곧바로 시중이 한명 들어왔다.

 

“지금 바로 자바크 경을 연회장으로 들리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시에르는 곧 다가올 대련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제 몸 좀 푸는 것이다.

 

“저, 잠시 저의 스승님과 함께 밖에 나갔다 오면 안되겠습니까?”

 

리덴이 국왕에게 말했다.

 

“상관 없지만, 왜 그러는가?”

 

“사실 저의 스승님께서는 지금까지 계속 산속에서 수련만 하신 터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계십니다.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대련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겠습니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 그럼 허락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리덴은 시에르에게 눈치를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큰 식탁을 가로질러 문쪽으로 다가갔다. 문 밖에 있던 기사들은 이전과는 달리 정중하게 물러났다. 리덴과 시에르는 다시 화려한 복도로 나오게 되었다.

 

“산속에서 수련만 했다라······. 맞는 말이긴 하군.”

 

“일단 대련에 대해서도 뭘 좀 알아야죠.”

 

시에르는 그 말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냥 싸우면 될 줄 알았더니 역시 기사라 그건가? 하여튼 참 귀찮게들 산다니까.”

 

“스승님이 너무 속 편히 사는거죠.”

 

그리고 리덴은 차근차근 알기쉽게 대련의 규칙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단 전투에서 이러한식의 대련은 일기토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에는 먼저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 말 위에서 서로 합을 주고받으며 싸우다가 먼저 상대방을 죽이거나 혹은 떨어뜨린다. 만약 한명이 말에서 떨어졌을 경우, 말 위에 있었던 사람도 역시 땅에서 내려와 다시 싸움을 벌인다. 이 경우에는 말에서 떨어진 사람에게는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있는 것이므로 말 위에서 가능하면 죽이는 것이 좋다. 혼란스런 전쟁속에서 지키기에는 껄끄러운 것일 수 있으나 기사에게는 명예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지킨다.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별다른 손해가 없지만, 비겁한 기사, 예의없는 기사, 자격미달 등등 불명예스러운 얘기를 듣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1:1 대결에서 도망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 만약 기사가 일기토에서 도망칠 경우 당장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귀양보내지며, 그 모든 가족 및 친척에게는 벌금과도 같은 엄청난 세금과 겁쟁이 기사의 친척이라는 불명예가 안겨진다. 때문에 모든 기사들은 차라리 전장에서 그냥 죽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렇게 실제로 죽이지 않고 서로의 실력을 보는 정도의 싸움에서는 말 없이 처음부터 몸으로 부딫치며, 죽게 될 경우는 그것도 치욕적이며 죽인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형벌이 가해진다.

 

“절대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알았다고. 내가 무슨 어린앤줄 아나?”

 

“스승님이라 더 걱정이라고요.”

 

그 때 마침, 처 멀리서 한 위엄있는 기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갑옷 때문인지 상당히 덩치가 커서, 키가 2m 하고도 몇 십 센티미터는 더 되어 보였지만, 어딘가 날렵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등에 있는 무기로 보아 거대한 투핸드 소드를 사용하는 모양이였다. 양쪽이 뾰족한 매서운 눈매와 오똑한 코가 있었으며, 코밑과 턱에 약간 자란 털이 인상적이였다. 그는 시에르 앞에서 걷는 속도를 약간 늦추면서 노려보았으나, 별다른 것 없이 그냥 지나쳤다.

 

“자바크 경입니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실력자이지요.”

 

“전투는 꽤 잘하게 생겼군. 그러나 깊이가 없어.”

 

“항상 스승님의 말씀은 알 수가 없다니까요.”

 

시에르는 연회장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그 뒤를 리덴은 얼른 좇아갔다.

 

“저녀석은 평생 수련해도 그랜드 마스터에는 근처에도 못 갈꺼야.”

 

시에르는 말했지만 리덴은 별다르게 대꾸하지 않았다.

 

“오오, 드디어 왔군. 자 빨리 시작하지. 어서 보고싶네.”

 

들어가자마자 약간은 호들갑스러워 왕 답지 않은 국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연회장 한 구석에 아까 보았던 매서운 사내는 오른쪽에 이미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소드 마스터들의 대련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넓이였지만 무엇인가 많이 있었던 것이 급히 치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시에르는 그 남자의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리덴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웃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실력발휘는?]

 

‘뭐, 뭐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였다. 어디선가 의식으로 침투해서 뇌에서 울리는듯한 목소리였다.

 

[실력발휘는 100% 다 해야 하는 거냐?]

 

‘이 목소리는······. 스승님?’

 

리덴이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시에르는 어느새 리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모두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역시 스승님이 하시는 것들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리덴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반만.’

 

간단한 말이였다. 보통사람이였다면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시에르는 그랜드 마스터였다. 마스터들의 시력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다른 여러 감각들도 마찬가지였다. 리덴의 입모양을 보고나서 다시 시에르는 가려던 목적지로 다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그 남자와 마주 보게 되었다. 그 남자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나는 콜른 왕국의 루퍼트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콘리 자바크요. 리덴 경 님의 스승분과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소속은 물론 영광도 없으나, 시에르 드 루이테다.”

 

시에르의 인사는 건방진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자바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물론 봐주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말을 맏밭아치며 시에르 역시 검을 뽑아 자세를 잡자, 자바크는 곧바로 치고 들어왔다. 과연 1초에 몇 십 미터씩 달린다는 소드마스터 다운 엄청난 속도였다. 그것을 보면서 국왕과 귀족들이 ‘역시 자바크 경이야.’하는 미소를 날렸지만, 시에르에게는 가소로워 보일 뿐이였다.

 

“합!”

 

자바크는 기합과 함께 투핸드 소드를 높이 쳐들었다. 그대로 대각선으로 베어버릴 생각인 것이다. 이미 자바크의 검에는 시퍼런 오러가 3m나 되는 높이로 치솟아 있었다. 그것은 가히 장관이였다. 그리고 자바크의 검은 예상대로의 경로로 움직였다. 무게감이 있는 검이였지만 소드마스터의 검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시에르는 가만히 앞을 보고 있다가 자바크가 검을 내리칠 때 약간 스텝을 바꿔서 옆으로 살짝 움직이면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엄청난 속도로 검을 쳐올렸다. 그와 동시에 투핸드 소드는 날이 잘 선 카산드라와 부딫쳤고, 자바크는 엄청난 진동을 느꼈다. 온 몸을 울리는 듯한 진동이였다.

 

“크윽!”

 

자바크는 손에서 울리는 엄청난 진동 때문에 검을 놓칠 뻔했다. 자바크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검을 잡았다. 하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표적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자바크는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고, 급히 몸을 뒤로 틀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몸을 회전시키던 자바크는 차가운 검이 자신의 뒷목에 닿자 급히 몸을 멈췄다.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다. 얼핏 보는 상대방의 얼굴에는 아직도 여유가 넘쳤다. 생각해보면 겨우 상대방은 검 한번 쳐내고 이긴 것이다.

 

“그만!”

 

결투의 종료를 외치는 국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정말 대단하네! 내가 그대에게 다시한번 감탄하는 순간이네!”

 

국왕의 말에는 정말로 기쁨이 넘쳐났다.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위급한 전쟁의 순간, 특히 불리할 때에는 하나하나의 기사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드 마스터를 여유롭게 가지고 놀 만큼의 실력자라면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었다.

그 후에는 작위 하사식이 이어졌다. 시에르에게는 후작이나 백작의 단계조차도 거치지 않고 바로 공작 작위가 내려졌지만, 그것을 시기할지언정 토를 다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의 위치와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였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시에르는 불쾌한 표정으로 내내 국왕앞에 무릎꿇고 앉아있으면, 국왕은 무슨 문서를 가지고 지루한 연설을 해댄 후, 시에르에게 충성을 다하겠냐는, 마음에도 와닿지않는 멩세를 시켰다. 그리고 시에르가 일어난 후에는 검과 함께 투구를 선사한다. 물론 검은 몰라도 투구를 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에르에게 갑옷이란 무거운 옷에 불과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끝이였다.

 

‘이 작위라는 거······. 이것 때문에 이 나라에 얽매이는거 아냐? 귀찮아지진 않겠지?’

 

시에르는 내심 불안해하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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