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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환상로맨스 No.3 죄와 벌 下

네냐플 왕녀 2006-09-17 01:13 871
왕녀님의 작성글 5 신고

 


*illusion-환상로맨스
No.3 죄와 벌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by eli(Mtales.net)

 

 

 

 

 

 

 


그날 이후 유리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그건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진짜로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고,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식의. 티아라는 오히려 그런 유리의 모습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잘 떠들고, 활발한 아이였었는데. 레스코의 일 이후에는 오히려 자신한테 말 거는 일까지 부쩍 눈에 띄게 적어졌고, 하루의 반나절을 자거나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녀도 매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유리야, 이리로 와. 밥 먹어야지.”
“…고마워, 티아라.”


그렇게 또다시 대화가 끝. 요즘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레스코 때문이다. 그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애를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티아라는 정말이지 한숨만이 튀어나올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빵과 딸기 주스를 건네주자, 빵만 오물오물 얌전히 씹을 뿐 별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적막한데 평소보다도 더 어색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흘렀다.


“……레스코를 조금만 이해해줘. 그 사람은 유난히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거든.”
“…우리가 뭐, 이해하고 자시고할 사이였던가? 그냥 난 인질이니까 막 대해도 상관없는 거지.”


그녀하고는 안 어울리게 꽤 가시 돋친 말이었다. 티아라는 순간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는 한편 먼저 말을 꺼낸 자신의 입장이 면구해지는 듯 하여, 그냥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 내가 말을 심하게 했지…어차피 거짓말한 건 나였으니까…할말 없지 뭐.”
“…아니야.”


아무리 이름을 부르는 사이라지만 왠만하면 잘 그러지도 않는 티아라가, 먼저 말까지 건넸는데 자신이 그런 식으로 군 것이 역시 후회되는지 유리가 먼저 사과를 꺼냈다.


“레스코에게는 나이차가 좀 나는 친 여동생이 하나 있어. 나도 이야기밖에 못 들어봤지만.”
“이야기 밖에 못 들어봤다니…. 그럼 둘은 친구가 아니야?”


맨날 둘만 붙어 있으니 그녀로써는 그 둘이 친구 사이나 혹은 남매로까지 보였던 모양이다. 하기사 그녀가 그들에게 잡혀온 이후에 다른 누구를 본 적이나 있었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를 쳐다보며 티아라가 미소지었다.


“우리도 꽤 최근에나 알게 된 사이야. 뭘 생각했었는데?”
‘심하면 사귀는 사이처럼까지 보였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냥 그럼 같은 목적을 지닌 동지 같은 건가? 하긴 남녀를 그런 식으로만 붙여놓은 나도 바/**. 유리가 그렇게 생각을 곱씹으며, 티아라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기로 했다.


“헌데 여동생이 말을 듣기로는 많이 아픈 가봐. 많이 살아봐야 18살…아니 15,6살까지도 많이 사는 것일지도. 그는 항상 그렇게 말했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아이를 그렇게 병약하게 태어나게 한 신이 원망스럽다고. 물론 남매가 유달리 친했던 것 같긴 하지만.”
‘로리콘 콤플렉스 아냐?’


이른바 여동생 콤플렉스-라던가. 유리의 머리 속에서, 아직도 그 ‘레스코’라는 존재는 ‘망할 놈의 보리스’를 뛰어 넘어 ‘악과 공포와 어둠의 제왕’이라는 황당한 타이틀을 달아가며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여동생은 밖에 많이 나가서 놀 수가 없으니까, 새로운 세계를 많이 보여주고 싶었대. 그래서 그 사람도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한 건 가봐. 하지만 그 사람이 테일즈를 하고 있던 무렵에는 동생이 아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해서, 동생은 같이 ‘이곳’에 오지 못한 것 같아.”

 

만약 그 동생이, 그 몸이 약하다고 했던 그 여동생이 테일즈를 했더라면, 그 여자아이도 이곳에 왔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더니, 그저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모니터 안에서만 존재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 버린 그 황당함을, 같이 겪었을 것이다. 허나 온 것은, 레스코-한 명 뿐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래.―오히려 동생을 봐주고 그러기에는 별로 부족함은 없었나봐. 언제나 엄마는 병원에 가 있었고, 그는 학교가 끝나면 동생의 병문안을 가고….”
“잠깐! 질문이 있는데, 레스코는 대체 렙 대가 몇이야?”
“180대.”
“헐, 학교 끝나고 동생 병문안 가고, 게임 할 시간이 어디서 난 거래?”
“그 사람은 새벽파였던 것 같아. 렙이 꽤 되는데 동접 시간에 못 마주쳤던 거 보면.”
“흐음….”


새벽파 폐인이었군! 어쩐지 나보다 렙 대가 높은 거 같더라니. 하면서 궁시렁 거리며 유리가 어떤 생각에 빠지든지 말든지 티아라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여기 오기 전, 바로 한달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묵직하니 자신의 머리 속을 울리던 그의 목소리를 회상했다. 그 목소리는 얼마나 가라앉아있었는지 지금까지도 그녀가 본 그의 모습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을 정도였다. 티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유리도 그 이야기에 조금은 충격을 받아, 놀란 눈초리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여동생과, 그 사람 혼자 남은 거지.”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죽음. 그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지만 이제 그는 그다지 부족한 나이도 아니었다. 19살, 티아라와 같은 동갑이었으니,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 될 시기였다. 어떻게든 병약한 여동생을 혼자서 보살피며 살아가야 했다. 그것이 그가 오빠로써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친척들이 있었다고는 해도 동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가 없었다. 동생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동생의 나이 14살, 이제 다시는 올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해서 계속 모르게 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는 동생을 볼 때마다 도저히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도, 부모님을 잃었다는 충격을 가늠할 새도 없이 몇일이 흘렀다. 부모님의 장례식, 수많은 친척들, 그리고 보험 관리자 까지. 그렇게 죽음은 그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슬픔을 계속 안고 있어야 할 여유는 없었다. 헌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유리의 경우는, 어땠어?”
“뭐가요?”
“‘이곳’에 오기 전, 뭘 하고 있었어? 내일은 뭘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잠들었고?”
“음…쪽지 시험이 있었어요. 영어 단어 시험이. 우리 영어가 정말 성격이 더러워서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잠들고 말았죠.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잠들고 일어나니까, 글쎄 주위 풍경이 엄청 이상한 거에요! 눈을 뜨니까 햇살이 너무 눈부셨고, 일어날 때 바다냄새가 나더라고요. 저 나르비크에서 껐었거든요.”


모두가 다 그렇게 ‘이곳’을 왔다. 테일즈 위버란 곳, 그곳에서나 존재하던 아노마라드 대륙을―. 모두가 다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적응해야 될 ‘현실 아닌 현실’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었을 테지.”


티아라는 웃었지만 우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도 무언가를 넘기고자 하는 용기가 잠시나마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마음이 아파졌다.

 

 

 

현실에 두고 온 단 하나의 여동생. 그가 지켜야 할. 나는 갑자기 티아라가 얼마 전,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은 그것이 매우 이해가 된다. 가슴이 슬쩍 저며 올 정도로.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런 소중한 것이 있었던 거지, 그 사람은.’


타나토스에 대한 우연한 이야기. 티아라도 그런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 티아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레스코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단 한시도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꿈을 꾸고 있어야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미치도록 걱정되었던 것이다. 오로지 현실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신 하나만을 남겨둔 그, 여동생이 말이다. 그래서 몸이 약하다고 했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거구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했던 짓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그는 여동생이 생각나 무심결에 나를 진짜로 믿고, 걱정해준 거였다….그런 마음이 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워있던 몸을 옆으로 살짝 웅크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있었던 걸까? 부모님을 3년이나 못 만나는 사실에도 그녀는 그다지 그립지 않았고, 황당하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물론 지금은 가끔도 보고 싶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3년 후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데. 근데 그 시간마저도 그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눈을 뜨자마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햇살, 깨어날 때부터 생생하게 귓가를 울리던 갈매기 소리, 코끝으로 다가왔던 바다 내음까지도…몸으로 생생하게 느꼈던 나르비크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정말로 그들의 말처럼, 처음부터 다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슝,하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또다시 그가 출몰했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티아라를 찾았지만,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또 텔레포트로 어딘가로 나간 모양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대중들이 거의 다 모였던 OX장에서 인질까지 납치했으니 얼굴이 알려진 상황이긴 했지만, 그녀의 경우는 아이템 외 먹을 것의 문제로도-티치엘은 제한 무게가 200대여도 고작해야 많아봐야 2600정도 였기 때문에, 계속 들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어쩔 수 없이 마을 조달을 해야 했으므로 일단 염색과 장비, 무기까지 다 바꿔 차고 다니며 텔레포트를 이용해 아주 잠깐, 많아봤자 5분 정도만 마을에 다녀오고는 했다. 언제나 있던 일이었지만, 이번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티아라에게 전할 것은, 아주 중요한 전달이었다. 퀸이 이곳을 눈치 챈 것 같으니 좀 더 조심하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나가버리다니. 그렇게 그가 서있자 뒤에서 이제는 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아라라면 마을에 잠깐 갔어요. 아마도….”
“….”


그가 뒤를 바라본 그곳엔 유리가 조금은 뻘쭘한 표정으로 지으며 서 있었다. 사실 유리는 티아라가 어딜 나가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갈 때마다 물건을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마을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저번에 일로 그래도 좀 미안했는지 몰라도 유리를 대하고 있기가 껄끄러워 보였다.


“그럼 후에 다시오지.”
“저기, 잠깐만요!”


또다시 휭하니 사라지려는 그를 서둘러 잡으며 유리가 무언가를 급히 쥐어주었다.


“싫든 말든 보든 말든 당신 자유에요! 어쨌거나 저번 일은 내가 잘못했으니까, 한번도 안 쓴 건데 아깝지만 당신 줄게요!”


하고, 그대로 그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달려 나가고 말았다. 그래봤자 어디 뭐 갈데도 별로 없겠지만. 그치만 주변에 혼자 남아버린 레스코는 황당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손에 쥐어진 정체/모를 물건을 그제서야 쳐다보았다.


“……고백 사탕?”


빨간색의 줄무늬가 그려진 작은 사탕. 그건 사탕이 아니라 메세지를 새겨놓는 아이템으로 주로 연인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쓰여 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지?-레스코는 무척이나 의아했지만 일단 안의 메세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저번에는 정말 미안해요. 빨리 현실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From 유리

 

절대 사과를 안 할 것 같은 황소고집으로만 봐왔는데, 이외였다. 게다가 사실 자신이 좀 잘못한 것도 있었으니까. 그 이스핀 이름이 유리였군. 생각하니 못내 이름도 제대로 안 부르고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막 대한 것이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의 누이동생도 사탕을 상당히 좋아해서 병원에서 종종 어른들에게 얻은 것을 몰래 그에게 건네주고는 했었다.


‘오빠, 이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데. 오빠 줄께! 대신 다른 사람들한테 주면 안돼!’
‘너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옆자리에 있던 할머니 손자가 나보고 친해지자고 준 건데, 오빠 주는 거야. 알았지?’
‘야, 너 인기 많나 보네?’
‘후훗, 그럼.’


그 아이는 몸은 약했지만, 성격만큼은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했다. 그렇게 종종 병원에서 남자 아이들과 친해져 놀거나 그런 식으로 사탕을 얻어오면 늘상 버릇처럼 그에게 주고는 했었다. 그는 문득 그것을 보며 미소 짓다가도, 갑자기 자신이 놓인 현실을 생각하자 더없이 동생에게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사탕을 놓인 손을 꽉 쥐며 다시 한번 더 굳세게 다짐했다.

그렇게 그가 결심하고 있었던 순간, ‘무엇인가’가 그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까르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티아라가 이제서야 돌아왔나 싶어 입구 주변으로 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뭔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티아라가 마을에 있는 시간은 이렇게까지 길지 않다. 그녀는 한동안 보/지않던 회중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1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무언가 볼일이 있는 날도 이렇게까지 늦지는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 소리가 들린 직후 유리는 입을 꼭 다물고 주위에 소리에 집중했다. 항상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는 그녀 이외에 다른 존재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듯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너무 긴장한 탓에 조금 힘이 빠진 그녀는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까드득, 까륵….”


분명 아까의 그 소리! 유리는 벌떡 일어서 메트라 벨모어를 집어 들었다.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 별로 넓지도 않아 그녀가 돌아다닌 바로는 티아라, 자신,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레스코를 제외해 정말로 아무도 없었는데? 그녀는 오랜만에 드는 검을 꼬옥 쥐며 소리에 집중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딱딱한 것이 기어오고 있는 듯이….


“끼이이익!”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달려드는 것은 바로 머리카락 같지도 않은 가발 같은 초록색 머리를 뒤집고 살점이라고는 근 한 푼 어치도 발견할 수가 없는 뼈다구 몬스터 스켈레톤이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달려든 놈을 향해 검을 찌른 후 바로 카운터 스피어를 날렸다. 그리고 단체 공격의 맞서 다행히 뒤에 놈들까지 크게 타격을 입었고, 그녀는 바로 그곳에서 도망쳤다. 사실 도망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약한 놈들이긴 하지만, 자신은 고립된 상태고, 갇힌 지 오래되어 포션도 얼마 없다. 만약 저 놈들이 계속 리젠 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만 불리한 일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다니, 어찌 된 상황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데 함부로 덤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 맞아! 용자 챕터를 할 때 나오는 몬스터들! 하지만 여태까지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허나 그런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그 놈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이럴 때 신조의 깃털만 있었어도! 정말 이럴 때 재접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억울했다. 챕터 이벤트 존안이니까, 재접 하면 바로 마을일텐데. 티아라라도 와주면, 티아라는 레벨이 높은 데다 티치엘이니, 저런 놈들 따위 한 주먹감도 아닐 텐데…(물론 나도 한 주먹에 날릴 수 있지만).


‘티아라는 왜 아직까지 안 오는 걸까? 혹, 무슨 일이라도?’


혹시 퀸에게 들킨 거 아닐까? 갑자기 그녀는 오싹함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것이었다. 오로지 퀸만이 그녀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믿고 있었지만, 티아라의 경우는…. 퀸에 대한 불복종은 바로 이 곳에서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것은 싫어! 유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놈들이 바짝 다가오자 유리는 바로 정면으로 나아가 카운터 스피어를 날린 후 뒤에서 리젠 되는 놈들을 아까처럼 잠시간이나마 따돌리기 위해 바로 달려가 벽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읍!”


왠 만큼 꽤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벽 모서리로 바로 돌아서는 순간, 누군가 나를 세차게 끌어당기며 나의 입을 막았다. 헉, 뭐야 이건 또? 유리는 너무나 놀라서 읍, 거리며 반항했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좀…얌전히…있어라…. 게다가 시끄러워….”


꽤 익숙한 목소리였다. 유리는 곧 행동을 멈추고 곧바로 뒤를 바라보았다. 레스코였다. 헌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당신, 꼴이 왜 그 모양….”


유리가 보기에도 그의 꼴은 여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처참했다. 이리 저리 옷도 찢겨있고, 피까지 군데 흐르고 있었으며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난 듯, 포션도 다 떨어진 듯 했다.


“오다가 리치한테 걸렸어.”
“뭐야 리치? 그 놈은 보스몹이잖아.”


리치라 하면 테일즈위버 최강의 마법 공격의 보스 몬스터.(물론, 그람존 제외)챕터 보스 치고는 좀 강한 편에 속하는 데다가 그 공격 연타를 잘못 많으면 200대라도 견디지 못하고 즉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리치가 이 곳에 있다고? 그것도 역시 챕터의 영향인가?


“그것도 역시 챕터 때문에 그런건가? 스켈레톤도 그렇고….”
“천만에. 그렇게 위장 시킬려고 한 거다.”
“위장이라니…?”
“퀸이 눈치 챘어. 이벤트 존이라 자신이 여기로 들어올 수가 없으니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일시적으로 이렇게 수를 쓴거다.”


퀸이 역시 눈치챈 거였어! 그러자 곧 머리 속에서 아까 걱정했던 부분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럼, 티아라는?!”
“아마 잡혔을 거다. 지금까지도 돌아오질 않는 거 보면….”
“그럴 수가….”


유리는 절망스러웠다. 왜 절망스러운지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이때만큼 참담함이 느껴지는 때도 없었을 것이다. 티아라가 잡혔다면 그건 곧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런 유리를 바라보던 레스코는 힘든 듯 한 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어차피 나도 많이 버틸 수 없어. 리치를 티치엘의 엄호도 없이 우리 둘만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
“당신 설마 포션도 없는 거야…?”
“훗, 아까 다 떨어졌다.”


티치엘을 제외해서 마방에 유달리 약한 타 캐릭터들이, 리치 앞에서 1:1 로 승부하기에는 거의 꿈같은 일이었고, 리치의 공격 범위를 생각했을 때 도망치는 것조차 매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냥 마을로 가면….”
“바보인가? 이대로 마을로 가면 우리의 위치가 발각 돼. 퀸의 목적이 그거라고.”


아 맞다, 유리는 그대로 입술을 깨물었다. 테일즈 위버에서는 죽는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이대로 마을로 돌아가도 경험치 깍이고 뭐 보석 잃어버리고 등의 피해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나를 제외해서 이 사람이 마을로 돌아간다는 것은…티아라와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녀는 티아라를 생각하자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도 잡혀온 이후에 매일 같이 있었고, 친구가 되었고, 먹을 것도 챙겨주며 언니처럼 잘 보살펴 주었는데! 그녀가 어둠 속에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그가 나지막히 허무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훗, 너는 기쁘겠군…. 소망대로 퀸이 구하러 왔으니까.”
“웃기지 말아요!”


그의 말에 그녀가 바로 반박했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샌가 눈물까지 서려있었다. 레스코가 그런 그녀를 매우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지? 너는 돌아가고 싶어했잖….”
“당신은 다 죽어가는 부상자 꼴이 되었고, 티아라가 생사도 모른 채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내가 기쁠 리 있어요? 아무리 당신이 싸/가지라고는 밥에 말아먹는 보리스였고, 나한테 이름도 안 부르고 막 대했다고는 하지만, 부상자 앞에 두고 그런 소리 할 정도로 나는 성격 안 이상하다고요! 게다가 티아라는, 티아라는…. 엉엉…….”


그녀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레스코는 정말이지 난감해졌다. 체력이 없어서 머리까지 핑핑 돌 지경인데, 갑자기 앞에서 우는 이 여자애는 또 무엇인지. 유리도 울면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듯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리치까지 덮지지를 않나…. 이게 다 뭐냐고, 엉엉….”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해…. 머리 울린다고.”
“…흑.”


그 말에 그녀는 신기하게도 바로 뚝 하며 울음을 멈췄다. 아직도 눈에는 어느 정도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이상해, 어쩐지. 너를 보고 있으면 더 그 아이가 생각나. 분위기나 외모도 전혀 틀린데 말이야…. 게다가 나이도 같지 않고….”
“뭐요? 그, 여동생이요?”
“티아라가 말했나 보군.”


유리가 울음을 멈춘 채로 그를 쳐다보며 뚱하게 말했다.


“뭐 티아라가 나보고 이해해달라고 했으니 내가 기껏 사과한 거죠. 아니면 안했지.”
“…이제 슬슬 돌아가고 싶군.”


상황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말이 나오자 유리를 그를 쳐다보며 짐짓 화를 내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벽 안, 그리고 그 앞에도 똑같이 놓여진, 그냥 그곳을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로 쳐다보고 있을 뿐. 아주 짧게, 유리도 그대로 입을 다문 채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유리라고 했던가? 이름이.”
“이제야 물어보는군요. 체.”
“그래, 유리. 진작에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너는 이제 네가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유리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태도에는 아량곳 하지 않은 채, 부상당한 몸을 힘들게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붉은 검―푼시온 붉바를 들었다.


“리치가 나타날 지도 몰라요! 당신 포션도 없는데 무리라구요!”
“어차피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당할 거야.”
“당신 보단 차라리 내가 나아요! 차라리 가만히 있어요!”
“무슨 짓을―….”


유리가 그를 애써 막으며 계속 우겼다. 그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매우 힘들어 보이는데 포션도 없다니, 게다가 그런 몸으로 리치에게 맞섰다가는 마을로 갈 게 뻔했다. 그렇다면 그는 끝이다. 퀸에게 들켜서, 이곳에서 그야말로 ‘소멸’되버리고 말 것이다. 그녀가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부딪혀서 넘어뜨리질 않나, 갑자기 인질로 잡아와서 멱살까지 쥐어잡고, 망할 놈, 망할 놈, 하면서 온갖 욕을 다 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그가 죽을 만한 상황에 놓이자 그건 안 된다고, 머리 속에서부터 간절히 외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가 가면 안 된다고. 그러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고.


“나를 싫어하지 않았나? 내가 죽든 다치든 그건 너와 아무 상관 없어.”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대로 가면 당신, 죽을 게 뻔하잖아요! 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내가 외면할 만한 매정한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 뿐만이 아니더라도―사람이 죽을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 눈 감고 보내라구요?”
“네가 말했었지. 어차피 이 기간이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로 돌아갈 거라고. 나와 티아라나 좀더 일찍 그렇게 되는 것 뿐 죽는 게 아니다.”
“여기서는 죽는 거에요!”


그녀는 또다시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얼굴까지 또 치솟아 오름을 느꼈다. 가슴이 울컥, 해서 도무지 한 마디를 안 해줄 수가 없어, 이 인간!


“이 곳을 다시는 또 밟을 수가 없고, 이 세계에서 남은 시간을 살아갈 수가 없고, 만나고 싶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런 게 죽음과 뭐가 틀려요!”
“나는…….”


나는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레스코의 머리 속에서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퀸이 순순히 자신들을 보내주지 않으리란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벌였던 것은, 사실 어쩌면 그런 식으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음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 마음은 이 이스핀을 만났을 때부터 더 강렬해졌다. 이상하게도 점점 현실이 머리 속에서 뚜렷해 졌다. 사실은 조금은 여유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해야 할. 그래서 조금쯤은 흐려져서, 어느 샌가 짧은 시간 동안 잊어가고 있었는데,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누이동생이 매일 매일 한 시도 빠지지 않고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비슷한 부분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없었는데. 그녀처럼 진짜 몸이 약했던 것도 아닌데.――헌데, 그 말을 해야 하는데, 머리 속에서는 계속 그 말이 떠돌고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였을까? 그 느낌은. 하지만 한시도 생각할 틈이 없이 아무런 말도 못하는 그를 쳐다보다가 유리가 검을 쥐고 달려 나가 버렸다.


“당신이 못하는 거라면 내가 할 거에요!”
“잠깐, 이봐…!”


그가 말릴 틈도 없이, 그녀가 뛰쳐나가버렸다. 세검이라 그런 건지, 본래 날쌘 건지는 몰라도 한 순간에 뛰쳐나가, 스켈레톤들을 날린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크르르륵, 크르륵.”


기분 나쁜 웃음소리. 마치 뼈가 바닥에 갈리는 듯한 익숙한 듯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 느낌보다도 10배 정도는 더 강렬하게 뭔가가 다가왔다. 하지만 유리로써는 그런 걸 느낄 틈이 없었다. 다만 뭔가가 다가온 다는 것만 느꼈을 때, 그녀가 뒤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안돼!”


마치 번개가 튀어 내려오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 찌르는 듯한 아픔이 그녀의 몸을 덮칠 거라고 예상되었던 순간, 뭔가가 쑥, 튀어나왔다. 처음 봤을 때처럼, 그냥 평범한 그의 모습. 불멸, 악뿔에, 그냥 검은색 머리에 고만한 인상. 그냥 일반적인 보리스. 힘든 몸을 일으켜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주며 달려들었던 그의 모습. 그의 붉은 검이 저 만큼 튕겨나가 버리고, 그는 그대로 그녀의 눈 앞에서 그대로 타 들어가듯이 바닥에 툭 쓰러져 버렸다.


“―――!”


마치 카메라처럼 한 순간 이었다. 카메라 렌즈에 박힌 듯 그 장면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 그대로 반사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 앞에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쳐다보던 그 대단한 존재보다도, 마치 그건 영화처럼 잔인했다. 그냥 이건 게임일 뿐인데, 현실이 아닌데. 너무 현실같이 느껴졌다. 그처럼 피가 흐르고 있어서 더욱 무서워졌다. 왜 나를? 내가 인질이니까 살아있어야 해서? 하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었을까.


“―갑자기 왜? 막판으로 갑자기 날 구해주는 듯한 그런 멋있는 영웅인 척 한다고 해서, 내가 여태까지 나한테 했던 짓, 용서할 거 같아요? 내가….”
“어차피 맞아야 할 쪽…은 나였는데,… 네가 멋대로 뛰어나간 거잖아….”


그가 피가 흘러 한참 인상을 찡그린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말도 안돼. 이건 거짓말이야. 그녀는 들고 있던 메트라 벨모어를 그대로 떨어뜨리며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당신 알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죽어버린단 말이에요!! 아, 바이올렛 허브가….”
“훗, 네 아이템 주머니 뒤질 때…. 보니까 없더군.”


그래…내 기억 속에 갑자기 떠오른 그것은 내가 갖고 다니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많이 갖고 다녔을텐데…. 왜 어째서 이렇게 간절하게 필요할 때 없는 것일까. 티아라도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당신도 결국엔 그렇게 이곳에서 ‘죽어’버리는 걸까?


“어차피 이렇게 되었어야 했지….”
“거짓말…. 아니, 틀려요. 이게 아냐. 이게….”


그녀의 얼굴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일생 중에 이렇게 애타게 무언 가를 원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이렇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런 무력감, 허무감도 느껴보/지못했을 것이다.


“정말 울보로군. 아, 그래…. 사탕…정말 고마웠어…유리….”


그렇게 그게 끝이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몸이 이윽고는 그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같이 뿌옇게 되버려 형체조차 보이지 않은 채 그는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도.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섰다. 허무한 듯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몸 위로 아까와 같은 마법이 시전 되며 그녀의 몸을 마치 새카만 듯 태워버리고 말았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그가 가지고 있었을 거라 예상되었던 그 빨간색 줄무늬의 작은 사탕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 나쁜 바닥에서 홀로 나뒹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엾게도…그동안 얼마나 힘이 드셨습니까.]


그대로 마음속까지 전해오는 듯한 그 청아하고 투명한 목소리. 그녀였다. 퀸! 그녀는 그 순간 벌떡 눈을 떴다. 여기는 어디지?――일어나자마자 둘러본 주위는 뭔가 파란 빛만이 조금씩 비추는 이른바 ‘아무것도 없는’공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는 퀸이 있었다.


“퀸….”
[이제 정신이 드셨습니까? 몸은 어떠신지요?]


뭔가 몸이 좀 피곤했다. 그리고 머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아….”


뭔가를 생각하려고 하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무척이나 큰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았다.


“윽, 머리가….”
[충격이 있었던 듯 합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저기….”


뭔가 이상했다. 그냥 그녀의 몸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뭔가 생각할 게 꼭 있었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아니 그리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고, 귀찮았다. 그냥 다 허무했다. 그런 느낌이 머리 속에서는 들었는데 몸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같은, 아주 맞지 않는 기분이 서로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그녀에게 물어볼 말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그럼, 잠시간 후에 깨어나셨을 때는, 마을로 돌아가 계실 겁니다……부디 안식을….]


점점 멀어지는 퀸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도 곧 힘없이 잠들고 말았다. 몸과 머리가 너무나 무거웠다….

 

 

 


“…리! 유리야!”


무언가 오랜만에 듣는 듯한 친근한 목소리. 걱정스러움을 한껏 띄고 누군가 애타게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간신히 힘을 주며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주황빛 머리에 마도사 리본을 끼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아 언니가 있었다.


“시아…언니…?”
“그래, 나야. 알아보겠니? 정말 얼마나 걱정했다고…!”


시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일어난 그녀를 덥썩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직도 꿈에 젖어있는 듯, 몽롱한 눈을 하며 그녀가 되물었다.


“나를……왜…?”
“왜라니…. ox장에서 갑자기 납치 됬었잖아. 흑흑,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어. 클럽 사람들도 다 걱정했단 말이야….”
“납치 됬었다고…?”

이상하다. 전혀 그런 기억이 없었다. 마치 몇 일 동안 계속 잠들어 있었던 듯이 머리가 무거웠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전혀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냥 자신이 살아왔던 평범한 일상들 외에, 들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런 그녀의 앞으로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 역시 익숙한 얼굴 이었다.


“아, 일어났구나. 다행이다. 다친 데도 없어 보이고.”


같은 클럽의 보리스, 아마조네스 오빠였다.


“아마존 오빠….”
“그래, 그래. 너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 갑자기 잡혀가다니…. 세상에 그런 놈들이 있다니! 정말이지 말세야 말세.”
“흑흑,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분명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야기 하는 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납치?


“내가 납치…됬었다니 무슨 소리야?”
“뭐야 너 기억 안나? 혹시 그 놈들이 무슨 짓 한거 아냐? 내 그냥 이것들을…!”
“그래도 이렇게 돌아온 게 어디야. 그냥 이대로 며칠 푹 쉬어.”


아마조네스는 주먹까지 불끈 쥐며 무언가에 대해 화를 내고, 시아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몇 번이고 시름을 놓는 듯 했다. 하지만 유리는 아직도 꿈에서 덜 깬 듯이 그대로 힘없이 앉아있었다. 앞에 있는 시아와, 아마조네스를 바라보며, 어쩐지 그녀는 무척이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뭔가 좀 더 다른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애써 기억해내려 하지 않은 채 또 그대로 다시 잠들고 말았다.

 

 

 

 

 

 

몇일을 클라드 여관에서 휴식을 취한 후, 만나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다양했다. OX장에서 일어난 대대적이며 사례 없던 공개적인 납치. 그것은 퀸에 대한 불복종 존재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으나, 어쨌거나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문제는 당사자인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무언가 생각할 게 있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가늠 잡을 수가 없었다. 뭘까? 형체조차도 떠올릴 수가 없는 그것은. 아주 중요한 뭔가가 거기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이 그 중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느낄 수 조차 없었다. 시아 언니의 말로는 충격으로 인해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잡혀간 이후에 계속 마취 당해있었거나 뭐 그런 가능성도 있어서 기억이 없는 거라고도 했다. 아는 사람들은 다들 돌아와서 다행이라고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 까지, 그러니까 마을 같은 곳을 가면―종종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기억도 안나는 일을 답변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 처럼, 그냥 그녀가 지내왔던 일상들 같이 오랜만에 플리마켓에 있는 상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툭!’
“앗…!”


가만히 서 있던 그녀의 등을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세차게 부딪혔고, 그녀는 그 반동으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뭔가가 잡혀있는 듯이 머리 속에서 뭔가 떠올랐다. 여전히 형체가 없었지만 기억 해낼 수 가 없었다. 유리는 서둘러 뒤를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아….”


틀렸다. 아니 다르다. 뭐가 틀리고 다르다는 걸까? 뭔가가 생각날 듯도 한데…. 그치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람은 그냥 일반적인 막시민 이었다. 누굴까, 뭘까? 내가 왜 부딪힌 사람을 확인하고자 했을까, 뭘 확인하고자 했을까……….


‘내가……뭘 잊고 있는 걸까?’


그녀는 일어서서 주위를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상점 아르바이트생들과,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나처럼 나르비크에서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햇살이 거리를 밝혀주고 있었고, 갈매기 소리가 끼룩 끼룩 하늘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코끝으로 상쾌한 바다 내음이 흩어오고 있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가운데 그녀만이 여전히 이상할 것 없이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다.

 

 

 

 

 

 

 

 

 

 

 

 

 

 

전체 댓글 :
5
  • 루시안
    네냐플 키폰
    2008.04.30
    와아... 전부 죽네요.!
  • 티치엘
    하이아칸 성녀마리아
    2006.10.04
    우애애애애 해피앤딩이 아니야아~.. 좀더 쓰시지, 님 너무 잘하세요 장편 하나쓰세요 5점 쾅!
  • 루시안
    하이아칸 Boss사냥2
    2006.10.01
    해피 앤딩이 아니네요.. .ㅠㅠ 아, 저렇게 기억 못하고 끝난단 말인가... 슬퍼요.
  • 보리스
    네냐플 강철향기
    2006.09.21
    정말 대단한 느낌이 드네요...정말 최고인거 같아요. 내용도 멋지고~
  • 보리스
    네냐플 슬픈운명의아이
    2006.09.18
    결국.. 다 죽는군요((... 유리는..그들을 기억하지도 못한채.. 안타깝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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