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게시판

티치엘
소설

illusion- 환상 로맨스No2.빠져나올수없는미로下

네냐플 왕녀 2006-07-30 21:51 584
왕녀님의 작성글 3 신고
*illusion- 환상 로맨스



No 2.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下)
-作 Eli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테일즈위버 바로잡기 Mtales.net*










“어째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페어리는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끝도, 끝도 없는 길. 기분 나쁜 석판을 따라 몇 번이고 걸음을 향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헤맨지 10분도 안 되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은 ‘미로’다. 쉽게 길을 찾을 수 없는.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여기서 잡혀있을 순 없다. 그녀는 애써 마음속의 불안을 누르고 의욕을 되찾으려 했지만, 막막한 미로를 몇 시간이고 헤맸을 때, 남은 건 ‘절망’이라는 단 두글자 뿐이었다.


“정말……아무도 없는 건가?”


이제는 차마 발걸음을 향하기도 무서웠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앞으로 나가보아봤자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문’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페어리는 너무나 끔찍해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 거지…….”


그녀가 차가운 벽에 기대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게 기분이 나빴지만, 그녀는 당장 기댈 곳이 필요했다. 너무나 많이, 오랜 시간을 헤매어, 이제는 아무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은 몇몇 개의 포션들 뿐. 체력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여기서 영원히 갇혀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로 너무나 공포스러워졌다. 순간 그녀가 벌떡 고개를 들어서 어두 컴컴한 길 안으로 소리를 내던졌다.


“――아무도 없어요-―?!여기 사람이 갇혔다구요―이봐요――….”


소리를 애타게 불러봤지만, 바라기만 했을 뿐, 예상대로 아무런 답변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위가 너무나 삭막했다. 너무나 외로웠고, 힘들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지쳐서는 바닥으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정말…. 어떻게 해….”













“…이상, 이번 달의 용자의 무덤 수행에 관한 회의를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뭐 별 내용도 없었으면서.”


에밀리오와 스트라이트, 하얀 옷을 입은 백발의 소년과, 거대한 덩치의 달인이 모여서 회의를 끝마친 모양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용자의 무덤 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트라이트가 핀잔부리 듯 한마디 하자 에밀리오가 타박했다.


“스트라이트, 회의 때마다 시끄럽군.”
“흥.”
“너무 그러지 말라구. 이 애는 장사시간을 빼앗기는게 아까운 거야.”
“그럼 평소에 더 열심히 하도록 해.”
“그치만 심심한걸―.”


스트라이트가 책상에 엎어져서는 늘어지게 있거나 말거나 에밀리오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달인과 백발의 소년도 대충 짐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스트라이트, 이만 가자고.”
“…흠….”


어느샌가 늘어지게 책상에 쫙, 엎어져 있던 스트라이트는 에밀리오가 나간 문을 의심쩍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쪽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뭔가가 캥기는 듯 한 얼굴


“왜 그래?”
“아뇨…. 있죠, 아저씨.”
“뭐?”


스트라이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달인에게 느닷없이 질문을 했다.


“에밀리오 아저씨 말인데. 좀 변한 거 같애요.”
“뭐가 말이야?”
“……예전에는 안 저랬던 거 같은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전에 어땠는데.”
“……모르겠어요?”


전혀 성립이 안 되는 대화였다. 스트라이트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멋대로 물어놓고서는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고, 달인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런 그녀를 재촉해보았지만, 스트라이트는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그럼 이번 달은 모두 10명뿐인가?”
“네.”
“수고했어, 하나.”


하나라고 불린, 성별을 가늠할 수 없이 아름답게 생긴 백발의 미소년이 내민 문서에 적힌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던 에밀리오는 자리 위를 정리하고는 용자의 무덤 대기실 1층으로 내려갔다. 문밖으로 나갔을 땐 여전히 그 알싸한 느낌과 함께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럼….”


그가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 늘 문 옆에 붙어있던 조각상을 쳐다보더니 놀란 듯 한 표정을 짓고는 곧바로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무언가가 변했다. 언제나 용자의 무덤을 관리하는 그의 예리한 직감이 그런 곳마저 스쳐지나갈 수 없는 듯했다. 그는 서둘러 조각상 옆에 있던 룬(rune)문자들을 바라보았다. 문자들의 배치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한참이나 그렇게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프다….”


페어리가 어느샌가 바닥에 엎어져 힘없이 수그러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곳으로 건너온 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는 생활은 똑같았지만 사실 이 곳에서는 굳이 먹지 않아도 포션으로도 체력은 버틸 수 있었다. 허나 그녀가 이렇게 지쳐버린 것은 정신의 문제이리라. 그 누구도 이렇게 알 수 없는 곳에 어느 날 갑자기 갇혀버리고 헤맨다면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나날이 힘들게 했다. 간신히 힘겨운 몸을 이끌고 이 기분 나쁘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기대어 애써 잠을 청해보아도, 일어날 때에 여전히 다를 바 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는 것이 그녀를 얼마나 절망스럽게 했는지 모른다. 깨어나면 꿈일 거야, 꿈일 거야 했던 것들. 허나 아침인지, 밤인지도 전혀 구분이 될 수 없는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을 진정 없는 것일까? 그녀는 너무나도 서러웠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까르륵….’


그 순간 이었다. 주변만이 고요한데 한 미묘한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그녀는 환청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태에서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또 한번,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또 한번, 그녀의 귀로 아까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꾸르륵….’


무슨 소린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그곳에 존재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었다. 무슨 존재인지 확인 해봐야했다. 제대로 힘은 나지 않았지만 애써 용기를 내 배에 힘을 주고 양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거기 누구 있어요――?!여기 사람이 갇혔어요―구해줘요――!!!”


그 어떤 존재든 좋았다. 지금의 신세를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다면, 이 막막한 길에서 그 어느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그 이상한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기 시작했다. 건너편, 반딧불만이 날라다니는 어두운 길 저편에서 무엇인가가 건너오고 있었지만, 그건 잘 보이지 않았다. 헌데 소리가 커져갈 수록 불안한 느낌에 그녀는 저절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끄르르륵…빠드득….’



사람이 아니다. 그 순간 페어리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던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 기분 나쁜 장소에서, 그 느낌 그대로 무엇인가가 점점 밀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잽싸게 허리춤에 단도를 꺼내들었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녀의 검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용기였다. 길 건너편,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무언의 존재가 점점 자신을 압박해왔다. 심장소리가 거세어져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얼마 안 되는 거리. 헌데 그 거리가 무척이나 좁게 느껴져서 그대로 도망쳐야 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실려왔고, 그녀의 심장소리는 어느샌가 귀밑으로까지 강렬하게 들려왔다. 그 알 수 없는 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뭔가가 끌려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점점 여러 개로 겹쳐지기까지 하는 듯 한 순간. 그녀의 눈앞에 간신히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에에에에에에-!!!!!!!!!”  


그것은 마치 좀비인 양, 두근거리던 심장이 폭발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녀의 눈 앞에 거대한 칼을 들이밀었다. 살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흉측한 몰골,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었으되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터져버릴 듯한 두려움에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움켜진 후 덤벼들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엑!!!!”
“저리 꺼/져 버려―!!!”


날카로운 시미터를 몇 개씩이나 들고는 나타난 해골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징그러웠고, 흉측했다. 예전에 챕터를 할 때 본 적이 있긴 했었지만, 이렇게 두렵진 않았다. 너무나 두려웠다. 두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기분 나쁜 곳에서 홀로 있었을 때, 간신히 한 마디 구원을 들었나 했더니, 오히려 엎친 데 덮친 격 아닌가. 피는 나지 않았지만 마치 피가 튀기는 도살 현장에서 홀로 위태롭게 서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런 괴물들의 가운데에 뒤섞여서 똑같이 칼을 정신없이 휘둘러댈 뿐이었다. 세차게 반항하는 그녀의 작은 몸으로 그들의 날카로운 칼심이 비켜나가기 시작했다.


“윽!”


체력 보충을 위해서 써버린 포션들이 이제는 바닥을 보이는 듯 싶었다. 여기서 이렇게 끝인가. 너무 허무하다. 두려움을 앞서 너무나 허무했다. 여기서 나가면 정말 할 말이 많았는데. 이곳에 오지 말라고 혼을 내던 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그러니 내가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저 웃는 얼굴을 딱 한번만 보고 싶어 매일 매일을 찾아와 보았던 사람.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리운 그 사람을 다시 한번만 보고 싶었다. 이 순간에도 그저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제는 끝이구나 싶어 눈 앞에 허옇게 광채가 날라오는 순간, 눈을 꼭 감아버렸다.



“끼에에엑-”


마치 쇳소리가 갈리는 듯 한 그놈들의 끔찍한 뼛가루 소리가 귀를 늘씬 울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검은 머리, 긴 장발. 허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여자가 아닌 사내이다. 그녀는 순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단 한번만 보고자 했던 그 사람이 정말로 와준건가?!


“……이봐, 괜찮아?”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들려오는 목소리. 아. 그게 아니구나. 그녀는 순식간에 허무하고 낙담한 기분에 그만 얼이 빠진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보리스’였다. 이름은 아직 모르지만. 악마의 뿔을 매달고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불멸의 왕의 뿔을 뒷머리에 단. 그러하였는데도 왜 못 알아본 걸까. 정말이지 바보였다. 그녀는 하, 힘없는 한숨을 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언가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허탈해지면서 힘이 빠진 것이었다.


“이봐?”



보리스가 그렇게 얼이 빠진 그녀를 몇 번이고 불렀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조금은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간신히 들어 그를 쳐다봤다. 목이 매어 자신이 들어도 매우 건조한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신은….”
“나는 레스코. 너야말로 누구지? 여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냐.”
“……어쩌다가 보니까…뭘…눌렀더니 문이 열려서…그래서….”


도저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더라?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서 제대로 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그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도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 그럼 모르는 거냐?”
“모르겠…는데. 당신은 수행원…인가요?”


이런 미궁 같은 곳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다면 틀림없이 수행원이겠지, 단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그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여기는…용자의 무덤 내 감옥이다.”












“…뭐라구요?”


그녀는 두 번째로 환청을 듣는 듯 한 착각에 빠졌다. 처음에 그, 지독한 해골들의 공포스러운 소리를 알아챘던 것 처럼. 그녀가 놀라거나 말거나 레스코는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고, 진지했다.


“감옥이다. 범죄자들만이 들어오는…. 아니, 들어올 수 있는.”
“…감옥이라고요? 여기가?”


들은 적은 있었다. 용자의 무덤 내에 별별 장소가 다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유저들의 소문을 타고 돌았지만 그 중 감옥이 있다는 소리도 물론 들어보긴 했다. 하지만, 설마 자기가 갇힌 곳이 하필 감옥이었을 줄이야! 믿고 싶지 않았고 믿기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레스코의 얼굴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짜구나.―그녀는 또 한번 절망에 빠졌다.


“범죄자들이라면…당신은 누구죠?”
“말했잖아. 레스코라고.”


짜증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치푸리며 그가 말했다.


“하지만…범죄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면서요?”
“그래. 그러니까 들어와있지.”
“…당신이 범죄자라고요?”


어느 것 하나 달라보이는 게 없는데? 아니, 그보다 같은 유저가 ‘범죄자’라며 감옥에 들어와 있다니. 생판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감옥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도 한 마디 들어봤지만 그곳에 갇혀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멀뚱하니 이해가 안 되는 얼굴로 서있는 페어리를 바라보며 그가 또 짜증스럽게 말을 이었다.


“퀸의 불복종에 대한 처벌.”


그렇다. 그녀. ‘퀸’이라는 이름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납득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말을 어기는 것은 곧 이곳에서의 불복종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칫하면 ‘주민’의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우연히 이 ‘테일즈위버’의 세계에서 ‘주민’이 되어있던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처럼, 그것을 현실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퀸’이란 존재는 그렇게나 대단하며 경이로운 것이었다.


“당신은…무슨 죄를 지었는데요?”
“네가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가르켜 줄 의무는 없지.”
“…그런가요.”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 사람이 과연 무슨 죄를 지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지. 하지만 그는 단박에 말을 잘랐다. 그녀따위는 처음부터 상관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이곳도 그냥 지나가다가 신기해서 자신을 구해준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말상대라도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 속에서 그나마 빠져나오게 만들었고,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이 되는 것도 예전의 그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듯 했다.      


“그래서…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나야 정해진 기간이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너 같은 경우는 나도 모르겠는데?”
“…….”


결국은 길은 또 막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죄를 짓고 이유를 안 채로 들어왔지만 이유도 모른 채 이곳에 들어온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언니!’


언니의 얼굴이 보인다. 주황색의 짧은 머리가 저 멀리서 노을처럼 빛나는 것 같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무정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페어리가 끝도 없이 쫓아갔다. 애타게 부르고, 불렀다.



‘언니!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미안하다고?’
‘응,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그제서야 간신히 앞에서 걸어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뒤를 바라봤다. 헌데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언니가 아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너무나 놀라 벌떡 눈을 뜨며 일어섰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지난 몇 시간 전에 만났던 그 흉측한 해골의 모습을, 언니가 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건 언니가 아니었다. 단지 너무 그리워서 착각했던 것 뿐이다. 페어리는 오싹한 마음에 가파른 숨을 고르고 옆에 누워있던 레스코를 찾았다.


“저기….”


주변이 싸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기 전엔 분명히 있었던 그 사람이 없다! 나를 버려두고 간 건가?
순간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에 그녀는 온 몸에 오한이 들면서 간신히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어딜 갔을까? 잠시 어디를 간 것을 아닐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 사람도 꿈이었던 게 아닐까? 이제는 어느 쪽이 현실인지마저 헷갈리기 시작했다.


“레스―….”


그녀가 또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랐다. 무언가가 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헌데 그건 아까 그 해골들을 만났을 때의 오싹함이 아니었다. 인기척이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듯한.


“레스코? 거기 있어요?”


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 주위를 살폈다. 헌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또 무얼 착각한 것일까.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그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복도 사이로 보이는 길 건너편이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했다. 이 기분 나쁘고 외로운 곳에서 한시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찰랑’


뭔가가 스쳐가는 소리. 마치 바람에 실들이 흩날리는 듯이 아름다운 소리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잠시 가느다랗게 하얗게 무언가가 빛났다. 그녀는 순간 그것이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두려움도 잊은 채 어두운 길 안쪽으로 다가갔다. 반딧불들이 반짝이며 그녀의 주위로 다가왔다.


‘찰랑’


또 한번 무언가가 흔들렸다. 하얀 실날 같은 것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그녀는 어느샌가 그 알 수 없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점점 걸음을 빨리 했다. 뭔가가 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낯설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본 듯한 그 빛. 그녀는 빠른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에밀…!!”


모서리 저편으로 사라지는 황금색 눈동자. 그녀는 다급해졌다. 그다. 그가 왔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보고 싶어 했던. 반드시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테야. 절망 속에서 단 하나의 빛을 찾은 듯이, 그녀가 온 힘을 다하여 그의 인기척을 찾았다. 검은 빛의 그의 긴 머리가 사이사이로 보인다. 절대 놓치지 않아. 작은 발을 양껏 들어올려 그녀는 그를 쫓았다. 방금 전만 해도 그녀가 찾던 레스코도, 꿈 속에서 보았던 언니의 얼굴도, 그 아무것도 그녀의 머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 시선, 생각은 전부 그의 것이었다. 오직 그만이 차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에밀리오!!”


간신히 따라잡았다 하는 순간, 모서리 사이로 사라지던 그의 눈동자. 황금빛이다. 아름다움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스르르 피어올랐다. 헌데 그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깊게 느껴졌다. 그녀는 순간 섬칫 했다.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라면…….


“가지 말아요!!”


그녀가 애타게 그를 불렀다. 아닐 것이다. 자신의 착각일 것이다. 그의 무심한 눈동자 사이로 느껴지던 것은…. 허나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이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그가 들어섰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또 한번 자신을 잠깐 뒤돌아 보는 것으로 그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맞다. 그는……….






“나를………무시했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눈물이 저절로 그녀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렸다.    








돌아오던 길을 그대로 잊어버려 레스코는 찾지도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고자 했던 에밀리오를 본 후로 그녀는 더욱더 심란해져 있었다.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녀가 사랑하는 그다. 그를 착각할 리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괴로웠다. 이제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나 괴로워하는데, 여기서 갇혀 있다는 걸 아는데 그는 왜 자신을 무시했을까. 도대체 왜. 내가 그렇게 그에게 무시하고 싶을 정도의 가볍고 못난 존재 였을까. 차라리 미워한다면 나를 좋아하게 만들 의욕이라도 생겼을 텐데. 나를 무시한다. 그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엔 너무나도 철저하게 자신이 들어있지 않았다. 벽 옆으로 스쳐가던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되 담지도 않은 그 무심함이 가슴까지 뼈에 사무쳐서 너무나 아팠다. 왜. 왜 자신을 이런 식으로 무시하고 버리고 가버린 걸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만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 그를 본 순간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현실이 되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몇 시간, 느껴지지도 않는 이 몇일의 시간을 그대로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처음엔 느껴지지도 않을만큼 무심한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서 흘렀지만 이제는 더 이상 흐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이미 죽어버렸으니 살 가치를 잃은 것이다. 이런 몸뚱아리 따위, 이런 끔찍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돌아가자. 그렇게 눈을 감고 이제는 더 이상 싸늘하게마저 느껴지지 않는 바닥에 누워있을 때였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가엽게도 이런 곳에 계셨군요.’


어두운 건물을 갑자기 밝히는 경이로운 광채. 흰색의 옷, 얼굴조차 보이지 않지만 머릿 속에 울려 퍼지는 단 하나의 목소리. 아무도 거부할 수도 거부할 능력도 권리도 없는. ‘퀸’이었다. 갑자기 다가온 너무나도 큰 눈부심에 그녀는 놀라 눈을 떴다.


‘설마하니 실수로 이곳에 떨어진 분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곧 꺼내드리겠습니다.’
“……퀸?”


그녀가 어름어름한 목소리로 겨우 꺼낸 말은 고작 그것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녀가 순간 조금 미소짓는 것 같았다.


“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얼마 전의 범죄자가 알려주었습니다.’




범죄자. 레스코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 사람도 현실이었구나, 그래.


“레스코는?!”
‘그것은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하신 고생이 크실 터이니 곧바로 지상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퀸, 잠깐만요. 레스코가 어떻게 됬는지만이라도….”


페어리의 의사는 전혀 전해지지도 않은 듯 퀸은 무작정 그녀를 어디론가 워프 시켜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거기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봐! 일어나!”


까마득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낯익은 목소리다. 그녀가 애써 눈을 뜨며 흐릿하게 비춰지는 고개 위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고양이 귀에, 빨간색의 커트 머리. 대기실에 항상 서 있던 스트라이트다.


“스트라이트….”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여기는…대기실?”
“그래. 너 감옥에 잘못 들어갔었다며.”
“…응….”


대체 얼마나 그곳에서 헤맸는지는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 간신히 빛이 비춰지는 곳으로 빠져나온 그녀는 이 몇일 사이 아주 초췌하고 말라보였다. 반짝이던 눈동자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죽어있었다.


‘뚜벅, 뚜벅.’


익숙한 발걸음 소리다. 고개를 간신히 들어 쳐다본 앞쪽에는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그가 서있었다.


“몸에는 그다지 별 이상이 없을 터이니 마을로 돌아가서 체력을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자신은 얼마나 마주치기 만을 고대했었는데, 그래서 지난 몇 일 상관을 얼마나 지옥같이 보냈는데, 그는 자신 따위는 여전히 아무렇게나 상관없다는 듯이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만으로 일관했다. 그에게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무것도.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신경써주지도 않는다. 무시당하였던 그 때, 그게 진실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녀는 마지막으로 없는 힘을 짜내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내가 어떻게 되었던 상관 없는 거죠?!”


갑자기 들려온 질문에 옆에 앉아있던 스트라이트가 놀란 듯이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에밀리오를 향해 노려본 채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허나 그 눈동자에는 아직도 기대감이 남아있었다.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거기 있었던 것이 차라리 내 실수 였으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화라도 한 번 내줘요. 허나 황금색 눈동자는 여전히 그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더없는 무심(無心).


“…폐가 됩니다. 돌아가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그가 돌아서서 가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빠질 절망도 없어 그녀가 허무하게 그대로 거기 앉아있었다. 옆에 있던 스트라이트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망연자실한 그녀를 그대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입술을 꼭 깨물고 에밀리오의 뒤를 따라갔다. 또다시 홀로 남겨진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서 있는 것이 서 있는 것이 아니되, 왜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는 지조차 이제는 의문이었다. 목소리도, 아무것도 머릿 속에 마음도, 생각도 단 하나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영혼이 비어버린 것 처럼. 그렇게.












“고작 그게 당신이 말하는 그 ‘마음’인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스트라이트가 상당히 독설적인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듯이 뒤에서 외면하고 있는 에밀리오의 등 뒤로 말을 이었다.


“이게 고작 당신이 말하는 마음의 전부냐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스트라이트.”
“나는 알고 있어.”


스트라이트가 팔짱을 낀 채로 에밀리오를 향해 밀어붙였지만 에밀리오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에서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저 여자애가 찾아왔을 때부터. 그리고 지금도.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했어. 일을 제외하면 그다지 까다롭지도 않은 당신이 몇 일 상관 웃음 한 번 짓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용자의 무덤을 그 무엇보다 철저하게 관리하는 당신이 감옥에 정상 유저가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모를 리가 없으니까. 안 그래?”
“쓸데없는 소리로군…할 말은 그게 다인가?”
“그러니까, 그게 당신의 마음의 전부이냔 말이야!”


뒤를 끝까지 돌아보/지 않는 에밀리오의 등 뒤로 날카롭게 스트라이트가 고함을 쳤다. 왜 화가 나는지는 자신도 모르겠지만 스트라이트는 그런 그에게 화가 나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매정한 것인지 단순히 이유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게 전부다. 우린 어차피…….”


여전히 변함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하며 그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그런 행동도 마음도 허락되지 않는 존재니까.”













가질 수만 있다면 가지고 싶었다.
허니 그녀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몇일을 그렇게라도 손 안에 쥐고 싶었다.
그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서 요정 한 마리를 그런 식으로 가두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어떤 식의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다.
끝까지 퀸이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영원히 자신의 것이었을 테니까.
영원히 그렇게 괴로운 모습이라도 그저 지켜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을 테니까.


그녀가 뼛속으로부터 기분 나빠하던 차가운 바닥에 힘없이 나뒹굴 때에도 자신은 잔인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차피 애초에 영혼 따위 허락되지도 않은, 퀸의 능력으로 잠시의 시간을 허락 맡은 존재.



가질 수 있는 마음이란 것도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푸른 석의 대리석 위로 갑작스럽게 날아 들어온 작은 요정 외에는.
가지고 싶은 것도 그런 식으로 잔인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던 것도
그녀의 마음을 무시하면서까지 그 미로에서
자신의 손 안에서만 갇혀있게 하고 싶었다.






이미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 마음의 미궁에서.

전체 댓글 :
3
  • 보리스
    네냐플 다프넨Boris
    2006.10.07
    아니 재밌잖아 ;ㅂ;
  • 나야트레이
    네냐플 초토의시2
    2006.08.18
    캬 ~_~! 아이디어 훔쳐가고 싶을만큼 잘써서용!!!~_~! 트레비조 초토의시 찾아와서 아이디어 빌려주세용~!!<><>번쩍!
  • 이스핀
    네냐플 유s
    2006.08.08
    ㅠ_ㅠ 잘쓰셨어요 ㅠ_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