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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지에
소설

[화이트] 나의 근황을 고백한다.

네냐플 바스로일 2013-03-04 22:4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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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란지에.

내가 너를 알게 됐을 때가 4년 전인가.

테일즈위버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3년 전이었지.

같이 하자고 권유했던 친구는 게임을 하든, 애니메이션을 보든 자기와 별자리가 같은 캐릭터만을 고집하는 녀석이었어.

내가 무슨 캐릭터를 고를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그 녀석이 너를 추천해주었지.

나하고 별자리가 같다면서.

그런 걸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나는 다른 면에서 매우 놀랐다.

너는 룬의 아이들에 나왔던 캐릭터와 같은 캐릭터였으니까.

테일즈위버가 룬의 아이들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를 선택하고 캐릭터를 생성했다.

네가 좋았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개인주의가 팽배한 그 세상속에서, 속좁아보이는 녀석들 가운데에서 이타적인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그 시기가 가장 즐거운 시기가 아니었나싶다.

검은안개섬에서 발판을 외우지 못해 헤매고, 보상으로 받은 거북이 등딱지를 착용한 모습에

기뻐하고, 죽림의 오솔길에서 하동이 무서워 도망다니면서 총을 쏘던 사냥은 정말 재밌었지.

피할 수 없는 공격을 퍼붓는 블룸밤부는 비싼 포션을 잡아먹는 귀신이었어.

벚꽃비마을 진입로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저주받은 묘원에서 필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사냥하는 것도 별미였지.

우여곡절 끝에 '각렙' 이라고 불리는 240레벨을 찍고서 마법총으로 전환하여 인기사냥터인 마법의 늪에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초기에 순수하게 즐길 줄 알던 마음을 잃어버렸어.

그 때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너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규던전이 나오고, 더욱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현할수록 고레벨의 무기를 착용하기 위해 쓸데없는 스텟을 어쩔 수 없이 찍을 수밖에 없는 너의 특성이 문제점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였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너를 떠나가는 상황에서 나는 그래도 다시 물리총으로 다시 돌아와 게임을 계속했지.

무자비한 매크로들의 방해로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속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네게 좋은 무장을 갖춰주고 싶어서 어찌어찌 사냥이 되는 데린세히르에서 계속했어.

 

그리고 얼마나 지났던가...

다시 새로운 사냥터인 시오칸하임이 출현했을 때, 내리막길을 걷던 너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 되었어.

나 역시 결국 너를 포기하고 말았다.

서민인 내게는 도저히 사냥이 불가능한 던전이었어.

게임속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신규사냥터뿐.

좋은 무장을 갖춰주고 싶었던 꿈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지.

상심하여 한동안 게임을 그만두었다가 다른 캐릭터를 해봐도 그뿐.

지긋지긋한 가난의 연쇄를 깨기 위해 애쓰고, 근심하고......

그러다 최근에서야 깨닫게 됐어.

왜 이러고 있나.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최근,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 너를 다시 시작했다.

코볼트들에게 정신없이 얻어맞느라 멀티샷을 날리지 못하는 너의 모습을 보아도 전처럼 답답

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튀김용으로 가공된 닭날개가 날라가는 것처럼 버려진 아이템들이 구석으로 튀는 광경에 웃는다.

나르비크에서는 앵무맨 앞에서 혼잣말을 하고, 똑같이 들리는 대답에 바보같이 혼자 웃는다.

그리고 밤에는, 한적한 곳에 앉아 배경음악을 듣는다.

밤에 나르비크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을 듣고 있으면 쉬고 있는 기분이야.

켈티카에서는 란즈미가 있는 집에 찾아가 앞에 앉아 배경음악을 듣는다.

서민가의 지하에 있는 민중의 벗 아지트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

악이지.

그곳에서는 책상에 고개를 박고 몇시간이라도 죽치고 앉아있을 자신이 있어.

때로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며 네가 그토록 건설하기를 열망하는 공화국이 이런 것이었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야 소설속에서 묘사된 트라바체스나 아노마라드에 비해서는 낫다고 생각은 하지만.

별의별 잡생각을 다하는거지.

사냥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마을의 풍광이나 배경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

게 생각되곤 해.

이 지경에 이르면 게임을 그만두기 마련인데 나는 계속하고 있거든.

그것은 무엇때문일까.

글쎄.

정들어버렸나.

란지에, 너한테.

그리고 네가 살아가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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