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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gos - [2]
분명 공작 가의 귀족 아가씨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려야 하는게 옳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인 화려한 실크 벽지에 온갖 사치스러운 잡동사니들과 눈이 호강할정도로
아름다운 값비싼 보석들 따위로 채워져 있어야 하는것이 맞겠지만. 아노마라드를 통털어 젊은 아가씨들 중에서 가장 신분이 높다 할 수 있는 클로에 다 폰티나 양의 방은 그런 분위기와는 상당히
동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방은 귀족 아가씨의 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무실 혹은 집현실에 더 가까웠다.
깔끔하게 정리된 물건들과 필요한 것만 딱딱 놓여져 있는 몇 개 없는 가구들은 어떻게 보면
세련되고 단아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검소하다는 말은 아니다.
몇 개 없는 가구와 물건들은 대부분 영향력을 지닌 귀족 가의 품위에 걸맞게끔 상당히 고급스러운
물건들이긴 했다. 예를 들면 오를란느에서 300년 장인 마법사의 손길을 거친 라즐리원석을 다듬어
만든 광택나는 업무책상 이라던가 아니면 저 먼 이국땅 산스루리아에서 공수해온 희귀한
오리하르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래 기름을 섞어 만든 염료로 문양을 넣은 침대라던가 아니면
작은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어 금색 실로 수를 놓은 실크 원단의 커텐이라던가.
단지 사치스럽지 않다 뿐이지 가문의 명성에 맞게끔 그 값어치는 톡톡히 하는 물건들로 채워진
그녀의 방이 그러하듯
그 것들은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했다.
품위 있으며 절대 녹록치 않은.
주변의 번잡스러움 없이 오롯하며 칼같이 냉정하고 옳고 그름이 정확한. 기품있는.
클로에는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업무 책상에 앉아 고급 양피지위에 조용히 편지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펜촉에 잉크를 뭍혀 기품있게 한자한자 써내려 간 뒤 어느덧 잉크가 마르자 그녀는 촛대에 꽂힌
파라핀 양초에 불을 붙이고 초를 들어올렸다. 양초를 들어 편지의 봉합 부분 위에 촛농이 녹아
떨어질때까지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공녀님. 오를란느 대공 작위 후계자이신 샤를로트 비에트리스 드 오를란느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클로에는 책상 한켠에 놓여진 탁상시계를 흘끗 쳐다보며 시간을 확인한 뒤, 서둘러 촛대에
양초를 꽂고 아직 봉합되지 않은 편지를 서랍 안에 넣었다. 서랍 문을 닫자마자 문이 열리며
세명의 시녀와 호위무사를 대동한 오를란느의 대공 후계자가 클로에의 시종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클로에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오를란느의 대공 작위 후계자라는
샤를로트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서오시지요. 많이 피곤하신듯 보입니다."
클로에의 말에 샤를로트는 자신의 호위무사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가르니에. 잠시 나가있어요. 폰티나 공녀님과 단둘히 할 얘기가 있어요."
가르니에라는 금발의 호위 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녀 세명을 대리고 클로에의 방에서 나갔다.
샤를로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클로에를 향해 격식을 갖춰 인사했다.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샤를로트 비에트리스 드 오를란느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있습니다. 폰티나 공녀님."
"실례라니요. 오히려 늦은 시간에 이 곳까지 오게 하셔서 송구스럽네요.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잠시 급한 용무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어요. 내일이라도 인사드리려 했는데 친히 찾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어찌보면 한나라의 후계자가 다른나라의 공녀에게 말을 높이는 경우는 전례하겠지만,
이 것이 오를란느의 대공 후계자와 아노마라드의 공녀일때는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베르니트 조약 체결 이후로 오를란느는 아노마라드의 공국이 되었고 그 이후로 오를란느에서는
몇번의 왕권 복귀 조짐을 보였으나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은 채 결국 현 공국 체제에서 샤를로트를
대공 작위 후계자로 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노마라드의 왕권과 귀족의 힘이 오를란느 공국의
실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였다.아노마라드의 귀속 국가로 전락해버린 오를란느.
그리고 그 곳의 대공 후계자는 결국, 아노마라드에서 정치계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실권을
장악하다시피 한 폰티나 가문의 공녀에게 격식을 갖추고 예의를 차려야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적 관계는 자존심 상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임은 확실하다.
사실상 샤를로트가 자의로 그녀의 방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
클로에는 오늘 오후, 아노마라드의 왕비이자 자신의 고모인 안리체에게 편지로
"오를란느 대공 후계자가 자신을 방문하길 원한다."고 은근슬쩍 운을 띄었고 안리체 역시
그 사실을 샤를로트에게 넌지시 일러둔 것이다. 샤를로트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
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에 앞에서 내색 하나 하지않는 그녀를 바라보며 클로에는 꽤나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었다.
짧게 친 단정한 검은머리칼에 상당히 이쁘장한 외모. 하지만 아래로 뇌까린 눈빛은 이지적이고
차가운 빛을 띈다.
클로에와 비교되게 군복과도 비슷한 느낌의 예복을 차려입은 샤를로트를 보며 클로에는 자신의
화려한 드래스를 내려다 보았다.
'그래. 강하게 보일 수 밖에 없겠지. 그러는 편이 너에게도 더 좋겠구나.'
클로에는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이 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차라도 내오도록 할께요."
딸칵-
찻잔을 접시에 내려놓으며 샤를로트가 말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듯 보입니다."
"작위 계승식 이후 바로 아노마라드 연회에 참석하시느라 무척 고단하셨을텐데, 피곤한 이야기를 꺼내도 될지 망설여지는군요."
클로에가 눈을 내리깐 채 찻잔을 입에 기울이며 말하자 샤를로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곤한 이야기라도 공녀님께서 신경 쓰고 계시는 일이라니 사뭇 걱정과 궁금증이 앞섭니다."
잘 되받아치는군. 이 정도 간봤으면 됬겠다 싶은지 클로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눈이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하며 차가운 빛을 띄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아노마라드와 마찬가지로 오를란느도 역시. 정세는 잘 아시겠지요."
"......"
"푸른장미. 혹시 들여보셨겠지요?"
"......"
"민중의 벗이라. 입에 담기도 참 꺼림직한 이름이네요."
클로에는 정말 쓴 홍차라도 마신 듯 아름다운 얼굴을 살풋 찌푸리며 말했다.
샤를로트는 클로에가 던진 말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는 거겠지. 그녀의 입장에선 충분히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다. 속으로는 분명 이쪽에서 먼저
왕권이 무너지길 바라고 있는 것이 공국의 입장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노마라드에서만
끝날지는 미지수겠지.
속으로 생각을 곱씹던 클로에는 샤를로트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대답해봐요, 대공 후계자님.
"꺼림직하면서도 위험하군요."
역시.
한참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샤를로트가 말문을 띄우자 클로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초면이라면 이런 골치아픈 정치적 얘기. 상당히 실례되고 따분한 얘기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실. 저희 둘은 예전에도 한번 안면이 있었답니다. 혹시 기억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 그랬던가요?"
"저만 기억하다니. 섭섭하군요."
클로에는 자신의 의자옆에 놓여진 은으로 만든 초콜릿함 뚜껑을 열며 정말 섭섭하다는듯 말했다.
클로에의 말에 샤를로트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는 홍차 주전자 옆에 놓여진 다과 접시에 초콜릿
몇개를 꺼내 놓았다.
"예전에 켈티카에서 잠시 뵜었죠."
클로에는 샤를로트에게서 비스듬히 앉은 채, 접시에 꺼내놓은 초콜릿을 살짝 입에 넣으며 말했다.
초콜릿은 상당히 달았다.
"막시민 리프크네는 아노마라드의 자랑거리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극작가거든요."
이제 클로에는 샤를로트를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것을 보며 클로에는 흡족한 웃음을 띄었다.
"리프크네와 친분이 있으신듯 보이더군요. 게다가 제가 리프크네와 함께 있는 대공 후계자님을 뵌건...... 꽤 얼마전이였더라죠."
그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샤를로트는 잘 알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듯 싶었다. 침착하게 찻잔에
손을 가져가는 샤를로트는 클로에의 다음 말에 잠시 평정심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리프크네의 연극은 상당히 정치적인 색을 띄면서도 풍자적이기도 하죠. 세련되고 재밌어요. 헌데, 요세 그런 소문이 들리더군요.
푸른 장미가 리프크네와 정치적으로 동조를 꾀한다라는......"
"네? 그게 무슨......"
클로에가 차갑고 싸늘하게 샤를로트의 뒷말을 되받아치며 말했다.
"한마디로...... 반역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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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브룩셀바2012.09.14감사합니다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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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마리akfl2012.09.14이건 재밌기도 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