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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 단어가 지닌 끝없이 깊은 어둠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사람이 없는 나르비크 거리를 한가하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코 스쳐 지나가려다가, 문득 조슈아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언제나처럼 새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 갈매기 몇 마리가 끼룩거리고- 그리고 로슈의 잡화상 간판 위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해물 소시지를 뜯어 먹으면서. 소년과 조슈아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조슈아는 참견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에 말을 걸었다.
"어이, 그런 곳에 앉아 있으면 위험……"
그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간판 위로 걸쳐진 소년의 다리가 그 뒤의 영상물을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슈아는 아차, 하고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런 유령들이 보이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그 소년만큼은 다른 어떤 유령보다 또렷했다. 소년은 꽤나 흥미가 생긴다는 얼굴로, 간판에서 가뿐히 내려왔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처럼 땅을 밟고 또박또박 걸어왔다. 그래서인지 더욱 인간처럼 보였다.
"너 내가 보여?"
그리고 아주 상투적으로 물었다. 조슈아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통은 목소리만 들리거나 윤곽만 보이는데……, 넌 정말 확실하게 보이는군."
소년은 빙긋이 웃었다. 조슈아는 소년의 웃음에 자신도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조금 후,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가 묻는 것은 조금은 뜻밖의 질문이었다.
"넌, 살아있는 사람 아닌가?"
조슈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넌, 대체 뭐지?"
싸한 침묵이 감돌았다. 조슈아는 여전히 차가운 공기에 피부를 내맡기며, 그저 씩 웃었다. 그의 웃음은 굉장히 공허하고 어색했다. 소년은 의아한 듯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조슈아의 입술이 떨어졌다. 아주 맑고 고운 음성으로, 그는 말했다.
"난, 데모닉. 조슈아-야."
"…데모니익?"
조슈아의 몇 마디가 담고 있는 아주 슬픈 음색에, 소년은 길게 반문했다. 조슈아는 썩 예쁜 웃음을 짓지 못했다. '배우라면, 관객에게 표정 정도는 관리할 줄 알아야지.' 어떤 속삭임이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듯해서, 그 표정은 상당히 누그러졌지만-. 그에게는 일상 하나하나가 무대. 주연은 언제나 그다.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은 관객이다. 조슈아는 그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좀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할 텐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실 각본 따위는 없지만, 삶이란 언제나 평화로움과 갈등, 그리고 갈등의 최고조- 하강- 그러고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무대에도 어디엔가는 하이라이트가 있을 터. 그는 이번 연극은 꽤 재미있는 연극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 자신도 그 데모닉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것이라는 것은 알지."
소년은 유령처럼 천천히 걸어-유령이지만- 조슈아에게 다가왔다. 그를 통과할 듯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쳐다보다가, 소년은 곧 조슈아에게 겹쳐졌다. 조슈아에게는 익숙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편안하게 소년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었다.
「나는 아루비스야.」
"아루비스."
「너는 내게 몸을 지배당할까 봐 두렵지 않은 거야?」
"두렵지 않아."
「왜?」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 자신을 긍정하지 않았으니까."
아루비스는 천천히 조슈아의 체내를 돌았다. 조슈아는 그런 상태로 걸어갔고, 이따금씩 사람들이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지나갔다. 아루비스는 다시 올라와서 그의 머릿속에 속삭였다. 조슈아는 나르비크의 거리를 걸으면서 영혼으로 그와 대화했다.
「너의 몸은 특이하군. 그렇지만 나는 알 수 없어. 보통의 인간들과 네가 무엇이 다른지.」
「나도 알 수 없어.」
아루비스가 탈출하듯 조슈아의 몸 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의 머리맡을 뱅글뱅글 돌았다. 조슈아는 어지럽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그칠 즈음에 아루비스 또한 멈췄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아루비스는 별안간 조슈아에게 거꾸로 떨어져 얼굴을 들이밀었고, 조슈아는 많이 당해본 일이긴 하지만 소년의 모습이 유령치고는 꽤나 구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루비스는 울고 있었다. 거꾸로 허공을 밟고 서 있었기에, 그의 눈물은 기묘하게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땅에 닿을즈음해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마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도 조슈아뿐일 것이다.
"나는 아루비스야."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조슈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너의 몸이 갖고 싶다고 강하게 열망했어. 그렇지만 강하게 열망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아. 나는 육체를 잃었어.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영이 되어 떠돌고 있어. 그런데 너는 육을 갖고도 어째서 행복해하지 않는 거지, 데모닉 조슈아?"
조슈아는 그저 허공 중에 둥둥 뜬 듯,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이제는 하얗다 못해 파랄 지경이 되었다. 그는 눈 앞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유령을 두고 천천히 걸어갔다. 유령은 힘없이 통과되어 조슈아의 뒤에 남겨졌다. 조슈아가 워프 게이트로 향하는 것을 보자, 아루비스는 재빨리 조슈아의 등에 달라붙었다.
메아리의 계곡이었다. 사람은 없고, 무언가 신비적인 일을 하기에는 알맞은 어스름이 내리깔려 있었다. 워프게이트의 빛이 반짝거려서, 유령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그 아래에 조슈아는 걸터앉았다. 소년은 빙글빙글 날아가 그의 옆자리에 착지했다.
"나는 도망치고 있기 때문이지."
"도망치고 있다고?"
"그래. 나는 두려워하고 있어."
"무엇을?"
"살의(殺意)."
유령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아릿하게, 무언가 떠오르는 듯한 기분으로 그의 미성(美聲)을 들었다.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메아리의 계곡을 메아리치게 할 어떤 무엇도 없었다. 아루비스는 소리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태가 없는 그의 소리는 계곡을 박차고 울려나오지 못할 터이다. 거대한 슬픔. 상실의 슬픔.
조슈아 또한 그런 슬픔을 앓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난 누군가를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해. 그 증오에 이유 같은 것은 없어. 내 영혼은 하나지만, 육체는 둘이야. 나는 그 육체를 죽이고 싶어. 반으로 갈라진 영을 되찾고 싶어. 그렇기 때문에 도망치는 거야."
바닥에 깔려 있었던 어스름은 점점 짙어져 어둠이 되어갔다. 아루비스는 그의 이야기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앉아 있었다.
"나는 영혼밖에 없는데, 너는 육체가 둘이란 말이야?"
"그래. 하지만 너와 나는 같은 것을 잃었어."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아루비스는 그것이 왜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눈물은 턱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땅에 닿기 전에 싸락눈처럼 흩어졌다. '상실'. 무언가를 잃었다. 무엇을 잃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에게 영혼 뿐이었기 때문에 육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육체는 아마 이미 오래 전에 썩어 없어져서 땅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건 잃은 것이 아니라 돌려준 것뿐이다.
아루비스는 쥐어짜듯이 소리쳤다. 의미가 될 수는 없는 외침이었다. 조슈아는 귀청이 터져라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에 그림자는 없었다. 소리는 튕겨나오지 않았다. 아루비스는 자신이 아루비스라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잃어 버렸다.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것을 잃어 버렸다. 잊어 버렸다. 아루비스는 그것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뭔가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깨달았다.
그의 소리는 부서졌다- 남은 것은 조슈아 뿐이었다. 조슈아는 그가 울부짖던 허공을 멍하게 쳐다보며, 메아리가 없는 계곡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니야, 들렸어. 메아리가."
그는 무대의 하이라이트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 필요는 없다. 오로지 위기만으로, 혹 전개만으로 점철된 연극도 때로는 있을 지도 모르니까. 조슈아는 아주 거대한, 그러나 이 세계에 비하면 아주 작은 연극을 떠올렸다. 그리고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어쩌면 각본. 혹은 그 도주가 '절정'일지도 모른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도망치려 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도망쳐도 눈앞에 맞닥뜨릴 것은 유령의 거꾸로 선 얼굴뿐일 터다. 눈물흘리는-.
어쨌든 그는 각본 없는 연극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일어났다. 그것이 도망치기 위해서인지 직면하기 위해서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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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칸 쥬앙페소아2008.06.12무섭군요 이거 ㄷ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