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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망자(fugitive)』- 5편

하이아칸 다비켜라CBRM 2007-01-07 12:30 461
다비켜라CBRM님의 작성글 1 신고

<의문의 남자와 할아버지. 일진 사나운 날.>

 

루시안은 보리스와 여러가지 대화를 나눈 후로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그 보리스라는 사람이 선악중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쌍한 사람인 것 같았다. 카린드에게 듣기로 그 사람은 내부분열 때문에 망한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즉, 모든 가족이 다 죽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가 맏아서 지키고 있다는 검인 '윈터러'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너무 끄는 바람에, 그는 산적, 도적, 귀족, 거기다가 믿었던 사람들한테까지 공격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공격을 받았으면 그저 기사가 들어왔을 뿐인데 윈터러를 빼앗으러 왔다고 오해하고 도망치고 싸웠겠는가? 결론적으로 루시안의 생각은 무척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였다.

 

"저기 카린드."

 

"네?"

 

"저 사람... 어떻게 할꺼야? 다시 풀어주는거야?"

 

그러자 카린트는 말도 안됀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잠깐의 웃음이 잠잠해지자 말했다.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살려두면 윈터러를 되찾겠다고 아마 몇 번이고 저희를 공격할텐데요. 물론 지금이야 저녀석 하나니까 괜찮겠지만 그래도 진네만 가문의 후계자, 힘을 키울 방도는 꽤 많답니다."

 

"그럼?"

 

"당연히 죽여야지요."

 

루시안은 경악했다. 설마, 하고 생각해보긴 했지만 루시안은 누굴 죽인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 죽일거야?"

 

"네. 어짜피 살려둬봐도 아무것도 없고, 저희 기사를 죽였으니 적이니까 못 죽일 이유도 없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며 다시 올라오다보니, 빨리 얘기했는데도 1층이였다. 더 얘기해보고 싶었지만 카린드는 임무가 있다면서 1층의 거대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루시안은 임무를 물어** 않았다. 카린드 정도의 기사가 하는 임무면 극비 임무이기 때문에 루시안에게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카린드는 원래 임무에 대한 정보를 불필요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루시안은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애썼다.

 

'과연 옳은 것일까...?'

 

카린드가 적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대긴 했지만 결론을 지으면 보리스,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국 그 윈터러라는 검이 가지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만든 도적들이나 귀족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른게 아무것도 없다. 루시안은 어느 순간부터 세상살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인 드메린 칼츠(Demarin Kaltz)에게는 돈이 너무도 많아 저런 검따위 지나가는 사람에게 던져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드메린이 가진 돈은 셀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이로써도 철부지 때의 생각이였다. 드메린의 경우 돈을 많이 가진 만큼 적도 너무 많이 가졌다. 모든 도둑들이 실력만 된다면 루시안에 집에 들어와서 일을 보고 싶어했고 귀족들도 자신의 재산이 넘어갈까봐 조심조심하며 오히려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귀족을 만나면 귀족들은 루시안이 귀족이 아닌데도, 어린애인데도 괜시리 도련님 취급을 하고 칭찬에 칭찬을 이었는데, 그것은 다 드메린이 가진 돈을 겨냥한 것이였던 것이다. 이러니 돈이 많아질수록 드메린은 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중하게 여겨야했고, 윈터러 정도의 가치가 있는 보물이라면 사람 한명 죽이는 것 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루시안은 아직도 그런 아버지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상계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후... 머릿속이 복잡하다. 으... 그래! 산책이나 갔다 와야지!"

 

그리고 루시안은 보통때 만큼은 아니지만 밝아진 얼굴로 뛰쳐나갔다. 검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보통때의 습관이였다. 산책하다가도 언제고 도망가기 위해서 검쯤은 꼭 챙겼다. 이젠 나갈 때 마다 챙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가지는 않을 생각이였다. 보리스를 도와주고 싶기도 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최후라도 보고 싶었다. 아직은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

.

 

"와! 역시 언제나 여기 공기는 맑다는 말씀이야."

 

나르비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나오는 이스턴(Easten)평원은 말 그대로 동쪽 평원이였다. 다른 이름으로 위케스트(Weakest)평원. 요즘같이 몬스터가 극성인 시대에는 아마노라드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만만한 평원이였다. 평원의 시작부분에는 몬스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깊이 들어가면 몬스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크라켄(kracen)이나 페일(fail)처럼 사람을 무서워해서 도망가는 몬스터들 뿐인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생태계의 보고였다. 열대부터 온대기후까지의 식물이 모두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졌는데 요즘은 전쟁이 있는 데다가 지금도 냉전 중이라서 관리나 개척은 생각도 못해 정말로 열대 활엽수에 키가 사람만한 풀까지 모두 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곳은 공기가 매우 상쾌했다. 도시 바로 옆에 있는 평원치고 매우 양호한 편이였다.

 

"음..."

 

머리가 약간 가벼워진 것 같았고 루시안은 다시 아버지가 옳은 것인지, 그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물론 양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보물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이였고 사는게 전쟁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요즘같은 시대에서는 솔직히 그런 것들을 지키고 사는게 바보같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였다. 과연 아버지가 옳은 것인지와 보리스라는 사람의 불행한 운명같은 생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회적이 되어서 나중에는 전쟁과 함께 불행을 이끌어내는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와 같이 사회에 대한 전문가나 답을 내놓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집에서처럼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루시안은 옆에 있던 바위에 앉았다. 풀들이 대부분 루시안의 허리까지 오는것쯤은 기본이라서 움직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다시 생각하니까 앉는 것도 힘들어서 바위에서 내려온다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인지 어지러웠다. 그런데 그 때, 그 어지러운 머리를 한번에 맑게 해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너."

 

듣고 싶었다거나 아름다운 목소리이기 때문은 아니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목소리는 너무 생뚱맞았던 데다가 그 사람의 목소리는 그 때 보리스처럼 매우 매서웠기 때문이였다. 매서운 정도로 치자면 오히려 한 층 더했을 정도였다. 루시안은 무의식적으로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남자가 한 명 서있었다. 검은색 머리에 검은 눈동자... 거기에나 눈은 상대방을 굉장히 멸시하고 미물적인 존재로 보는 듯한 눈이 있었다. 게다가 옷도 전부다 검은색으로 입은 것이 책에서나 보았던 마왕을 연상케했다. 밝은 평원 분위기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였다. 피부는 뽀얗고 깨끗했지만 그것초자도 옷과 머리에 묻혀버릴 듯 했다. 그래도 미남이였다.

 

"저... 누구신지?"

 

루시안은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다시 루시안은 쳐다보았을 때는 멸시하는 눈에다가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너무 강해서 루시안은 움찔하고는 정말로 겁을 집어먹었다.

 

"내가 살아생전에 인간한테 질문을 받게 될 줄이야... 네 놈. 루시안 칼츠라는 놈 맞지?"

 

루시안은 또다시 놀랐고 동시에 두려움도 증폭되었다. 이 사람은 도데체 누구인가? 왜 이름을 알고 있는가? 뭐하러 왔을까? 하는 물음들이 속속 생겨났지만 겁이 나서 선뜻 물어**는 못했다. 루시안은 가만히 있었는데 그것도 그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더욱 쏘아보면서 다시 물었다.

 

"맞아, 아니야? 아마 맞을텐데?"

 

루시안은 그 때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움직이지 못한 상태라는 걸. 뭐라 말하려 했을 때 알아챘다. 얼굴만 그나마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고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이건 저 사람이 검만 뻗으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정말 만화같은 상황이였다. 루시안의 공포는 한계에 다다랐고 그 때 마침 남자가 언성을 높이면서 다그쳐 묻기에 루시안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역시 맞는구나. 그럼 보리스 진네만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겠지?"

 

도데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였지만 루시안은 그것을 신경쯜 처지가 못 되었다. 결국 보리스의 불행한 과거와 지금 어디있는지까지 말해버렸다. 보리스에게는 연민이 있었지 사랑이나 우정같은 감정도 없었고 가족도 아니였기에 말하는데 별로 망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죄책감은 느껴졌다. 그 사람은 윈터러에 대해서까지도 물었다. 윈터러가 아직도 보리스에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루시안은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 검은 지금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릴수는 없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봐도 이 사람은 심상치 않은 사람이였다.

 

"윈터러는 지금은 보리스한테 없는 모양이에요. 누구한테 빼앗긴 모양인데 누구인지는 몰라요."

 

그러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꼭 루시안의 마음을 꽤뚫어보듯 물어보던 그 사람도 이번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루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또다른 질문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놈은 쓸모가 있을까?"

 

루시안은 처음엔 이 말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 뜻을 이해할만 하자, 이상한 느낌이 온몸에 전해졌다. 고통은 물론 없었고, 소름끼지는 것도 아니였지만 좋은 느낌은 절대로 아니였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정말 불쾌했다. 인간은 처음 맛보는 느낌은 좀처럼 뭐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루시안도 마찬가지로 그 느낌을 형용하지 못했다. 굳이 추측해서 말하자면 꼭 유체이탈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시간과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알고보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혼미해졌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반복되었다. 루시안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을 하는게 희미하게나마 들렸다.

 

"역시 소용없겠지? 인질은 필요없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그 자가 자신의 검을 들고 "죽어라"라고 말하는 장면이였다. 그러나 그 다음은 볼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눈앞이 환해졌다. 눈앞이 환해지자 정신이 보통때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자기가 지금 살아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정상이라면 죽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는 검을 찔러들어왔고 루시안은 움직일 수 없었다. 루시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일단 몸을 움직여보았다. 몸이 자연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었는데도 이렇게 느낌이 있다면 여기는 흔히 말하는 천당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은 큰 초 몇개에 촛불이 켜져 있었는데도 매우 깜깜했다. 자기가 지금 앉아있는 바닥은 타일이였는데 검은색과 매우 짙어 역시 검정색에 가까운 보라나 갈색들이 있었고 벽지나 천장은 완전히 검은색으로 도배해버렸다. 검은 사람에 이어서 이번엔 검은 방인가 싶었다. 천당은 이런 모습이란 건가...? 루시안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때였다.

 

"흘흘흘... 이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구먼."

 

루시안은 깜짝놀라 옆을 보았다. 아마 이곳은 촛불 몇개로는 감당되지 않는 큰 공간인 모양이였다. 누군가가 저곳에서 걸어나왔다. 정말 장관이였다. 그 사람도 역시 검은 옷을 입은데다가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도 검었다. 그 남자보다 더 했다. 그 사람은 피부까지 검었기 때문이다. 모습으로 보아서는 전형적인 노마법사였지만 악당같이 보였다.

 

'이번엔 할아버지? 도데체 여긴 뭐야...'

 

저 할아버지도 역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저 할아버지는 도데체 적인지 아군인지 알길이 없었다. 그래도 그 남자에게서 구해준거라면 아군일 확률이 높았다.

 

"저... 할아버지?"

 

"흘흘흘... 할아버지라는 칭호도 참 오랜만에 듣는군. 걱정마라 너 안죽이니까."

 

"그, 그럼 내가 살아있다는 건가요?"

 

"그럼 죽었겠냐? 물론 그대로 있었으면 죽었겠지만..."

 

"그럼 할아버진 누구죠?"

 

"알 거 없어. 충격만 먹을텐데 뭐... 아직 정신적으로 타격이 좀 있으니까 쉬라구."

 

아, 도데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직도 루시안은 혼란이 가시지 않았다. 이제 보리스와 아버지 사이에 양심 문제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나도 일진이 사나운 날이였다.

전체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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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스
    네냐플 silverdevil
    2007.01.07
    드디어 5편이 나왔군요! ^^ 루시안을 살려준 흑의 할아버지(?)는 누굴까요? 그나저나 보리스.. 풀려나야 할 텐데.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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