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게시판
<도망도 도망 나름>
어두컴컴한 숲속.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밤엔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 숲속에서 어디선가 환하게 밝은 빛이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그것은 모닥불이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발견했다면 아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밤에는 옆사람 얼굴도 잘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이 곳에서 빛이라면 가끔 여행자들이 피우는 모닥불 밖에는 별달리 예상할 수 있는것도 없었다. 그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30은 넘었을 듯한데 검은 머리에 살만큼은 다 살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되바라진 눈에 약간 살찐 몸매를 가지고 있어 별달리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였다. 다른 한명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을 듯한 청년으로 노랑머리에 푸른 눈동자로 언제나 태평한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데체 이 일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응? 뭘 어떻게해? 이제부터 여행하면서 살거야. 여행이라기 보단 모험이 좀 더 좋을거야. 위험한 일도 많고... 히힛! 정말 재밌을 것 같지 않냐?"
"도련님!!"
"아! 이제 그 도련님이라는 칭호도 버려. 우린 이제 같이 여행다니는 친구관계라고. 난 아저씨라고 부를게. 괜찮지?"
"아... 전 그 도련님이란 칭호 버리지 않을 겁니다. 아마 도련님이 원하는 모험이란 모험 해보기도 전에 주인님께 잡혀 집으로 돌아갈걸요?"
"아아! 그런 말 하지 말랬잖아요, 아저씨!"
"전 아저씨 아닙니다! 그건 둘째고 도련님은 주인님이 가진 기사를 따돌릴만한 실력이라도 있어요? 도련님이 사라졌다면 주인님은 아마 마스터(master)급 기사라도 보낼텐데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런 식이였다. 아마 어디선가 탈출한 모양이였다. 아저씨같은 사람은 다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고-돌아가기 싫어도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노랑색 머리 청년은 아예 탈출한 채로 살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저씨는 지금 심각했고 노랑색 머리 청년은 언제나 태평했다.
"예, 예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련님은 도데체 검을 얼마나 쓸 줄 아십니까? 아, 전 도련님이라고 부를겁니다. 존대도 할거구요."
"네. 그럼 전 아저씨로 대하겠습니다. 뭐, 검은 조금 배운게 고작이에요. 아버지가 검술을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거절해서 말이죠... 헤헤."
그 말로 인해 아저씨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시무룩했다기 보다는 무엇인가 체념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모든걸 운에 맡겨야 겠군요?"
"응? 뭘요?"
"설마 도련님, 여기가 마을 가까이라고 해서 몬스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아저씨는 뭔가를 추궁하고 지적하려고 심각하게 물었지만, 오히려 청년은 밝게 대꾸했다. 아니, 오히려 덤벼들며 물었다.
"마을에 가깝다구요? 여기가 어딘데요? 네? 네? 아저씨, 여기가 어딘데요? 제발 알려줘요~"
애교까지 떨며 알려달라는 걸 보니 확실히 좋긴 한 모양이였다. 아저씨는 한탄스러운 표정이였다.
"페나인 숲 입니다."
"페나인... 숲? 아, 그 숲? 저도 배운 적 있죠! 그래서 이렇게 나무가 많았구나. 그럼 어디 마을 근처죠?"
"공부좀 하시죠. 그래가지고 어디가서 칼츠 가문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라이디아 근처입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무엇인가 깨달은 것처럼 갑자기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죠! 페나인 숲은 몬스터 천지란 말입니다! 전 아예 검 쓸줄 모르고, 도련님은 기본 자세밖에 할 줄 모르면 몬스터한테 걸리면 그냥 죽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 설마 아직도 태평하겠는가, 라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노랑머리는 그 기대를 무참이 깨뜨려서 짓밟아버렸다.
"하핫! 아저씨는 그런걸 가지고 걱정을 하세요? 하늘에다 빌어보죠 뭐! 저 요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일 많이 했다고요! 하느님이 도와주시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도와주거나.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목숨을 주제로 얘기했는데도 이렇게 태평한 놈이 또 있을까. 아저씨는 내심 이 녀석은 사회생활이나 자립도 못한다는 둥, 결혼은 꿈도 못꾼다는 둥 별의 별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도 열심히 하던 분이 도데체 왜 갑자기 도망은 치셔서 부모님 속을 썩이십니까? 아마 지금쯤 주인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계실 거에요. 아이고, 안 봐도 뻔하지."
"에이, 도망친다고 다 나쁜건가요? 전 재밌기만 한데요?"
"매일 적을 만나면 정정당당하라고 시끄럽게 떠드신게 누구시더라요, 도련님? 도망가는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러셨잖아요."
"엇! 도망도 도망 나름이죠! 공부만 잘하면 뭐해요? 나중에 사회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이런식으로 경험을 쌓는것도 커다란 공부라고요! 게다가 이건 모험과 함께하는 도망이잖아요! 좋은거라고요!"
"공부만 잘하면 안된다는 말은 주인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얘기잖아요. 가슴에 와닿긴 커녕 웃기단 말입니다. 아버님 속 썩이면서 공부하는게 그렇게 좋은겁니까?"
아저씨는 은근히 비꼬면서 말했으나,
"그럼요! 지금은 모르셔도 나중엔 이런 일이 좋은 것이였다는 것을 알아주시겠죠."
청년에게는 아무 말도 통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안하기로 했다. 이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들을 잡으러 오고 있을 기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어짜피 돌아가게 될 터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싱글벙글이였다.
"아저씨, 이제 우리 그만 자요. 내일부터는 마을에서부터 본격적인 여행이니까 푹 자둬요! 히히!"
"웃음이 잘도 나오시네요. 그리고 푹 자라뇨? 몬스터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푹 자는건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에이, 걱정 말라니까 그러시네... 몬스터 안나와요. 그러니까 빨리 자세요!"
그렇게 말할 때는 이미 청년은 등에 매는 배낭에 챙겨온 침낭에 들어가 있는 중이였다.
"도련님이나 편히 자시죠. 전 그리 태평한 사람이 못 되어서요..."
그리고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그럼. 참 이상한 사람이네..."
마지막 말은 매우 작은 말이였으나 정적으로 휩싸인 숲에서는 잘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울컥해서 자칫하면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그러나 한계를 뛰어넘은 인내심과 도련님과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주먹을 억눌렀다. 이러한 상황은 태평한 청년과는 거리가 먼 것이였는지 파악도 하지 못한채 이미 꿈나라로 빠져 있었다. 그것을 본 아저씨는 더욱 졸려서 무거워진 눈을 비비고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왠지 너무 조용해 몬스터따위는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다르게 생각해보면 무서운-분위기였다.
- 전체 댓글 :
- 2
-
네냐플 silverdevil2006.12.29잘 쓰셨네요^^ 다음 편 기다리겠슴다ㅋㅋ -
네냐플 슬픈운명의아이2006.12.27재밌게 보다 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