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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血魔)] - 19. <깨달음 - 연>

하이아칸 Boss사냥2 2006-10-29 18:29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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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는 명상중이였다. 요즘 들어 무공이 전혀 진전이 없었다. 화경(化境)에 들고 난 뒤, 자신이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었다. 몸의 내공(內功)이 훨씬 자유롭게 순환함은 물론, 검강(劍剛)도 훨씬 정밀해졌고,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경공(輕功)부터 보법(步法), 장법(場法), 검(劍)의 초식(礎式)까지 모두 한층 단계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뿐이였다. 생각많큼 많은 진전이 아니였을 뿐더러, 그 뒤에는 운기조식(運氣組式)을 해도, 백만번 검을 휘둘러보고 검강을 내뿜어도, 그 어떤 무학(武學)에 대한 생각과 정리를 해도 단 일말도 진전이 없었다.

어쩌면 이게 사부가 말했던 마(魔)의 벽인지도 몰랐다. 그 괴물 사부도 이 벽을 깨는 데만 100년이 넘게 걸린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 벽을 깬다고 해서 바로 현경(玄境)에 경지에 드는 것이라면 그것도 아니다. 그 뒤에도 심신우주합일(心身宇宙合一), 이기어검술(以氣瘀劍術), 예검즉살(銳劍卽殺)등 많은 경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천조는 마음이 급했다. 솔직히 자기가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사부처럼 몇백년 살지는 알 수 없는 길이기에 이 따위 (이 따위는 아니지만) 벽은 빨리 깨부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렇게 며칠동안 명상을 하는 것이다.

 

.

.

.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상. 무(無)의 세상이다. 천조라는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만 있을 뿐. 빛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어둠이라는 것도 없다. 그렇기에 천조는 헤매고 있다. 가야 할 길도 없다. 비록 자신은 있지만 이런 곳에서는 목표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라면 마의 벽을 깨부수는 것이겠지만 이런 무의 세상에서 뭘 어떻게 해**다는 말인가.

 

"내가... 명상을 하다가 이런 곳으로 왔나? 이게 우주합일(宇宙合一)이면 좋겠지만..."

 

피식.

천조는 웃었다. 마의 벽도 깨부수지 못한 자신의 그런 경지를 맛볼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큰일났다? 이곳은 갈 곳도 없고, 이곳으로 올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계속 돌고 돈다. 자신의 기(氣)가 자신의 몸을 도는 것처럼, 모든 것이 돌고 그것은 사부라도 잡아낼 수 없는 정도이다.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빛[光]도 어둠[暗]도 없다. 그러니 다른것도 없다.

이곳에서는 목표나 꿈... 추상적인 것조차도 하나도 없다. 그래서 자신은 무의미(無意未)하다. 하지만 나갈수도 없다.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천조를 휩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천조는 둘러본다. 무엇인가 보인다. 무의 세계인데도 무엇인가가 보인다. 그러나 뭔지 모른다. 보는 느낌조차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소리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천조는 그것을 만져보았다. 분명히 만져진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이 없다. 천조의 신경세포는 정상인데도 그렇다. 무슨 조화(造化)인지 알 길이 없다.

천조는 빠져나갈 구멍을, 아니면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인가? 그래서 온몸에 기를 집중했다. 그래서 그것은 배출하려 했다. 조금이라도 느껴보기 위해서. 무엇인가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러나...

 

'안...된다.'

 

자신의 단전에는 기가 단 한톨도 없다. 지금까지는 몰랐으나, 자신의 몸을 순환하는 기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혈관(血貫)을 자극하는 피[血]조차 없다. 나는 지금 피가 없으면서도 살아 있다. 내 몸조차 공허(空噓)이다. 혹시, 내 정신만이 들어와 있는것은 아닌가? 자신은 명상중이라서 몸은 그 마차 안에 있는데도, 정신은 다른 세계로 전이(傳移)된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벽을 깨부수면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현경(玄境)이 되어야만 하나?

 

"허허, 시주께서는 뭘 그리 고민하시오?"

 

어딘가에서 너털 웃음이 들린다. 자신보고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이곳은 무의 세계. 설마 이런곳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자신처럼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는 뿔쌍한 사람일수도 있다. 천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바로 뒤에 있었다. 자신의 이목(耳目)을 속이고 바로 뒤까지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자신에게는 기 한톨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 세계에는 무엇인가를 느낄 매개체조차 없었는지도 모르니까...

 

"도데체 누구죠?"

 

천조는 의심을 가지고 물었으나 그는 태평했다. 아니, 오히려 장난치듯 대답했다.

 

"허허... 글쎄요.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진 자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노털웃음을 잊지 않았다.

 

"누구냐고 물었다. 외호(外呼)나 본명(本名)말이다."

 

천조의 목소리가 약간 무섭게 변해갔으나, 그 사람은 그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미타불... 본명(本名)이란 너무나도 쓸모없는 것이외다. 본명때문에 누구나 죽습니다. 혹은 태어나지요. 선(善)한 사람이나 악(惡)한 사람이나, 결국 이름[名]때문에 사악한 자가 된다오. 이름을 가지고도 선한 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지요... 아니, 고금(古今)을 통틀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선하고 훌륭하다고들 하지만 저는 너무나도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야? 그렇게 이름을 가르쳐주기 싫은가?"

 

"아미타불! 싫다라... 그럴수도 있겠군요. 저의 욕심때문에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것도 결국은 저의 욕심. 그것보십시오. 결국에 저는 욕심쟁이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난 너무나 사악한 욕심쟁이라서 사형(死形)이라도 당해야 하겠군."

 

천조는 슬쩍 비꼬는 말투를 넣어서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 생각보다는 깨달음이 깊으시군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일정한 수명이 되면 하늘[天]에 의해 죽음[死]을 당하지요. 사람들은 그걸 자연사(自然死)라고들 하지만 저는 천사(天死)라고 하고 싶군요. 이상합니까? 허허... 하지만 제가 정말로 모든 욕심을 버렸다면 천년전에 하늘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군.'

 

"하지만 말입니다. 죽지 않고 싶은 욕심에 모든 욕심을 버리면 그것 역시 욕심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천의(天意)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

 

"이봐, 난 그런 어려운 말을 알지 못해. 욕심을 버리지도 못하고, 200백살까지 살지 300백살 까지 살지는 몰라도 결국엔 죽는다고. 그건 만물(萬物)의 진리(眞理)이자,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이 아니었나?"

 

"아미타불. 그렇게 믿으십시오. 욕심을 버리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제 욕심이겠지요. 이미 그 욕심때문에 죽은지 오래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깐만. 그럼 당신 죽은거잖아? 그럼 편하게 살아. 왜 욕심을 버린다면서 그렇게 고생해?"

 

"아미타불. 글쎄요. 저는 그것을 끊임없이 도전할 뿐입니다.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늘에는 흔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염라대왕(炎懶大王)이 있더군요. 석호(析浩)라는 자인데, 그래도 꽤 높은 경지였다고 자부하는 제 강기(剛氣)따위를 새/끼손가락으로 가지고 놀 뿐더러, 저보다도 훨씬 높은 해탈(該脫)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니였습니다. 그 분께서는 말하시더군요. 지금까지 본 인간들 중에서는 네가 제일 해탈에 가깝구나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 말을 듣자 어딘가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해탈과 불심(不心)을 이루기위해 이렇게 노력합니다. 이제 곧 저도 다른 인간으로 환생(還生)한답니다. 그 때까지 꼭 이루고 싶습니다."

 

"흠... 어쨋든 넌 모든 욕심을 버려서 해탈인가 불심인가 하는것에 들고 싶다는 거지? 난 그런건 모르지만 어쩐지 대단해 보이네..."

 

"아미타불.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주. 시주께서는 원하는게 있으십니까? 돈과 권력같은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은 아닌 것 같군요. 이런곳에 들어오신걸 보면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어떤 여자를 얻고 싶으십니까? 뭐, 사랑 같은 것이지요. 아니면 무학(武學)에 관한 더 높은 경지?"

 

"맞췄네. 난 더 높은 경지에 들고 싶어. 지금은 현경(玄境). 멀리보면 생사경(生死境)까지 말이야."

 

"아미타불. 무림인(武林人)이 맞으셨군요."

 

"뭐야? 그럼 몰랐다는거야?"

 

 "이곳에 와서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이 우주가 얼마나 넓고, 저 따위가 하찮은 것인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음, 하지만 난 무림인까지는 아니야. 당신처럼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무림인에게 강호에 대해 배웠던 거야."

 

"그러셨습니까? 그렇다면 시주께서 생각하기에 그것은 행운(幸韻)입니까? 아니면 불행(不幸)입니까?"

 

천조는 잠시 생각하고서는 답했다.

 

"불행이야. 내 사부라는 사람이 너무 나쁜 사람이였거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공(武功)이나 무학(武學)을 배운것은 행운인 것 같군."

 

"아미타불. 약간은 애매모호한 것이군요. 하지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는 건 알고계셨습니까?"

 

"그게 뭐야?"

 

"모든 것은 행운도 불행도 아닙니다. 희열도 절망도 아니지요. 게다가 우리는 서로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빛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빛도 어둠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당신도 알고 있을 수목금화토(水木金火土)의 오행(五倖)조차도 결국 저도, 시주님도, 시주님의 사부님조차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천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현경에 들면 깨달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생사경에 들어도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시주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흠... 그럼 역시 현경에 들 때까지는 무리일까?"

 

천조는 약간 실망한 투였다. 그 때까지 그는 호기심이라면 참지 못했기에... 들지 못할수도 있는 현경에 기대여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허,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호승심(好昇心)에 가득 차있으시군요. 허나!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인 것입니다."

 

그 자는 약간동안 천조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약간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시주께서는 '연' 이라는 글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결할 연(連)인가?"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이름에 많이 쓰이는 글자? 아니면 사부가 나에게 많이 강조한 글자... 그 정도지 뭐."

 

"아미타불... 너무나 미흡하십니다. '연' 이라는 글자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먼저 제가 말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도 이 연의 기초입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모든 물건이 돌고 돕니다. 그렇게 돌다보면 서로 부딫히고 지나가고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일시적으로는 약간의 영향을 끝나게 되지만 그런 것이 계속되지요. 100번, 1000번, 10000번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물질들은 서로 서로를 닮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동화(同化)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도 동화되어 무엇인가가 되고, 오행(五幸)이란 것도 결국 일성(一星)이 되는 것입니다.

동화되려면 서로가 가까워지거나 접촉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물건이라도 멀든 가깝든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가까워 자연적으로 동화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나무, 물, 불, 빛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먼 것들은 서로 움직여서 동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연(連)이지요. 연결될 연(連)입니다."

 

약간 어려운 설명이였으나, 천조는 이해한 것 같았다.

 

"흠, 그럼 결국 모든 것들은 움직여서 동화되도록 만드는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연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연결될 연이지요. 하지만 연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멀리흐를 연(演) 같은 것이지요."

 

"많이 쓰지 않는 글자군. 거기에도 진리가 숨겨져있나?"

 

"아미타불. 약간 어렵습니다. 움직여서 동화되어 그것이 연이라고 하였는데, 움직이는 것을 흐른다고도 합니다. 흐르려면 엑체같은 물이나 기체같이 공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경우 특별히 연의 진리가 해당되지 않습니다. 허나, 나무[木], 쇠[金], 흙[土], 집[宇], 책[書] 같은 것들은 고체입니다. 이런 것들은 흐를 연(演)에 의해서 흐르게 됩니다."

 

"고체도 결국은 동화하나?"

 

"아미타불! 물론 그렇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무(無)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공기(空氣), 물[水]이라고 하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체가 어떻게 흐르냐 하면 그것은 그 안에 있는 기(氣)에 있습니다. 무학에서는 인간[人]이 소우주라고 하지만 결국 모든 만물(萬物)이 모여 우주를 이루니, 결국 모든것이 소우주입니다. 아니, 우주의 일부라고 하는것이 옳겠습니다. 이런것들이 모두 우주 하나이니, 안에 있는 기운(氣運)도 깊이 파고들면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은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들은 서로 흘러가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동화되지요."

 

"후, 그래서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흐르기가 불가능한 것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우주(宇宙)의 기(氣)로 끌어당겨 흘러 만나고, 그것을 뜻하는 것이 흐를 연(演)이라는 것인가?"

 

그러자 그는 약간 웃는듯한 기색을 보였다.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크게 되실 인물인가 봅니다. 사실 시주께서 이리 잘 이해하실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되면 제가 큰 일을 하나 해놓고 환생하는 것도 좋을 듯 싶군요. 연에 대해서 하나만 더 말하고 가지요."

 

"호, 기대되는 군. 말해봐, 말해봐."

 

" '연' 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는 잇닿을 연(聯), 혹은 닿을 연(聯)이 있습니다."

 

"닿는다...? 거기엔 또 어떤 진리가 있을지 기대되는데?"

 

"아미타불. 이번엔 동화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군요. 시주께서는 무림(武林)의 무공(武功)이라는 것이 맨 처음 어디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조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기원(記原)에 대해서 나온 책은 있었지만 그런 책까지 천조가 접한 것은 아니였다.

 

"아미타불. 모르시는군요. 책에는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을 세우신 신검대협(神劍大浹) 구휘(區輝)께서 맨 처음 기초가 되는 무공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인간과 동, 식물 모두에게 내공과 같은 기운을 쌓고, 무공과 같은 것을 익힐 수 있는 기본 터전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움직일 수 없으니 불가능하고, 인간을 제외한 동물같은 미물(微物)들은 아쉽게도 지능(智能)이 받쳐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인간만이 무공을 만들어낼 수 밖에요."

 

그 자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아미타불. 무공이란건, 사전(査展)적인 뜻으로 보면 몸속에 있는 기운을 사용해서 여러가지 보통 사람은 부릴 수 없는 묘용들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무림인입니다. 점차 무공은 발달했고, 검식(劍式), 창술(槍術), 초식, 장법, 제혈법(制血法), 경공 그리고 그 외에 아주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지금 무공의 기초(基初)이자 법칙으로 존재하고 있지요. 그런데, 무공의 기초이자 법칙이 이런 것들이라면 도데체 이런 것들의 기초이자 법칙은 무엇이냐? 참으로 까다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먼 옛날 몸속에 특정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사용하다보니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을 옛날로 돌아가지 않는 한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간단하게 생각하시지요. 아주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무공을 만들어냈을 그 기초는 사실상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로서도 아무 생각 없이 기(氣)를 사용하다보니 만들어졌을 것이니까요. 다만 제가 질문한 것처럼 검식, 장출, 초식 등의 기초까지는 알 수 있습니다. 검식과 검술의 기초는 검을 휘두르는데 있을 것이고, 경공의 기초는 달리는데 있을 것이요, 장법이라면 몸에서 기운을 내뿜는데 기초가 있습니다. 아미타불..."

 

이 때쯤 그자는 적당히 말을 끊었다. 그리고 천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천조는 잠시 멈칫했으나, 곧 그자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잘 알아들었으니 한번 맞추어 보라는 뜻일 것이다. 천조는 '잇닿는다' 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 약간의 미소가 올랐다.

 

"그랬군. 그럼 검을 휘두르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검식이 되고 검의 초식이 되는지 알라는것인가? 결국 검의 방식(方式)과 달리기가 경공이 되는 방식과 정확하게 혈도(血道)를 짚는것이 제혈법이 되는 그 연결이 모두 다르긴 하겠지만, 그것의 공통적인 것은 모두 닿는다[聯], 잇닿는다[聯]는 것이겠군."

 

천조가 웃으며 답하자 그 자도 희미하게 웃었다.

 

"대단하시군요, 하지만 다르십니다. 아미타불... 그냥 단순히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검을 위둘러 검법(儉法)이 될 때, 계속해서 똑같은 박자나 가락으로 단순하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지요. 때로 어떤 것은 짧게 휘두르고 어떤 것은 길게 휘두릅니다. 또한 속임수라는 것도 있어, 연결될 듯 하다가 연결되지 않고 또 다르게 휘두르지요. 다른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끼어든다고들 하지요."

 

"끼어들어?"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하지만 흔히 쓰는 것이 아니기에 들어** 못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끼어들었을 때, 다시 연결되기도 하고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하지요.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검법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국 그 중에서는 잇닿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그 밖에는 출(出), 입(入), 단(短), 절(絶), 발(發)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차라리 연(聯) 보다는 그것들이 더 쉽군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곡해하고는 합니다. 아까 검식이나 경공들이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입(入)이라고들 말입니다. 아미타불. 어떠셨습니까? 제가 한 이야기가 무학(武學)의 진전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군요."

 

"글쎄, 잘 모르겠어. 분명히 중요한 얘기 같은데, 내가 잘못 배운 것인가? 아니면 내 머리가 나쁜 것인가?"

 

"후자는 아닌 듯 합니다. 아미타불! 중대한 결심을 해야겠군요. 저는 사실 시주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욕심중에서도 좋은 욕심은 있는 법이지요. 그것을 하늘이 어찌 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럼 제가 좋은 욕심을 내보도록 하지요."

 

"좋은 욕심이라?"

 

천조는 눈만 끔뻑거릴 뿐이였다.

 

"시주께서는 분명히 화경(化境)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아무리 무공이 발달해도 그렇지, 20세도 안된 나이에 그정도라니 정말 존경할 따름입니다. 시주 정도라면 지금부터 수련해도 현경은 쉽게 뛰어넘으실 듯 하지만, 제가 그 시간을 좁혀드리지요."

 

그 말에 천조는 눈을 빛냈다.

 

"호오, 현경이 빨리 될 수 있다고? 어떤거야?"

 

"모든 연을 없애십시오. 제가 말한 연들을 말입니다."

 

"연을 없애라고? 연결하는 것도, 흐르는 것도, 닿는 것도 없애버리라는 말이야?"

 

"그 이상은 말해드릴 수 없겠군요. 시주의 모든 것의 연을 없애십시오."

 

그렇게 말하자 그 자는 사라져갔다. 천조로부터 약간씩 멀어져갔다. 천조는 잡으려고 했지만 물론 무의미한 짓이였다. 멀어졌으며, 동시에 뿌옇게 되어갔다. 멀어진다는 게 실감이 났지만 천조는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천조는 그가 사라지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이제 환생인가... 아미타불.' 이라고 말하는 것을 말이다.

 

.

.

.

 

"이봐, 천조! 역시... 벌써 사흘째인걸 보면 확실한 것 같아."

 

조령은 천조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처음 천조가 명상에 들어가서 반나절이나 깨어나지 않을 때는 걱정스러워서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가 넘으면서 사라져버렸다. 천조가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진 것으로 보아, 또한 이렇게 며칠간 명상만 빠져 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 깨달음을 얻는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천조는 이제 화경인데... 여기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현경이라는 뜻인가? 허허... 20세도 안되는 나이에 현경이라... 초유에 사태군 그래."

 

조령은 혀를 찼지만 그래도 기쁘긴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또한 어떻게 보면 부러웠다. 그만큼 천조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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