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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From. 루모리 사랑방

네냐플 왕녀 2006-09-26 13:30 899
왕녀님의 작성글 1 신고

재작년에 썼던 장소 시리즈 입니다.
지금도 기다린다고 한다면, 대답은 N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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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Novel Ver. 인연(因緣)
From. 루모리 사랑방

作 Eli (mtales.net and ssaul.com)

 

 

 

 

 

 

 

 

 

 

 

 

 

 

 

“오랜만이네, 개야.”


어쩐지, 듣기에 조금은 우스운 명칭. 두 마리의 용이 근사하게 새겨진 발판 위로 싸하게 퍼지는 구슬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조용한 마을에 늘 언제나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듯 한자리에 우뚝, 서있는 한 마리의 커다랗고 하이얀 개. 그녀는 버릇처럼 이곳에 올 때마다 개에게 인사를 했다. 어쩐지 파란빛이라고 보기엔 조금은 애매한 색깔의 긴 머리가 출렁였다.


“멍멍!”


무려 앉은키가 비슷할 정도로 큰 크기를 자랑하는 개였지만 뛰어 노는 건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분명 이곳에서 단 한발자국 도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늘 그게 당연하다 생각 할 테니까.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뛰어 노는 걸보고 싶었지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늘 개를 살아있는 동물처럼 대했다. 그것이 좋았다. 늘 여기서 맞이하며 짖는 이 개에 대한 그녀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고, 정말로 털도 푹신한걸―하며 그녀가 장난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바보같이 그를 찾아 나서다가 민망한 나머지 개에게 말을 걸어버렸을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하나도 후회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제 이 아이를 보고도 당신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개와 겨뤄야 한다니!’


지금도 웃음이 나오는 그때의 한 마디. 하지만 조금은 유치했었다. 그때 무엇이 심통이 나서 그리 심술을 떨었을까? 지금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온 몸이 하얀색과 대조되는 강아지의 검은 눈을 바라보며 소녀가 웃었다.
깨끗하다 못해 수북한 하얀 털을 얇은 손으로 조금씩 엉클어뜨리던 그녀는 보랏빛의 귀여운 아이, 이뉴이트를 데리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탁.
미방지 문이 가볍게 바닥을 쓸으며 닫혔다. 마치 그것은 그 옛날 초가집은 아니었지만 구식처럼 느껴지고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던 할아버지가 살던 방과 비슷하다고 바라보던 어느 날은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자라 소녀의 눈에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놓여진 옛날 집과 조금은 비슷하다 생각했다. 이곳은 ‘황천’이라는 분의 사랑방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인사를 건넸지만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었다. 얼굴이 시퍼랬고 눈동자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동공이 비추지 않았다. 검은 한복에 검은 갓을 쓴 그 인물은―간결히 표현하여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느껴지는 그 위압감은 보는 사람마저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소녀는 이 사람을 몇 번이나 찾아왔었고, 새삼스럽게 오늘 또다시 보았다고 해서 느껴지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리고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매일이나마 겪는 일이었으니까.


“자, 먹어야지.”


소녀가 자신의 펫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곱게 굳은 커다란 뿔이었다. 보랏빛 모자를 뭉특하게 뒤집어 쓴, 동물도 사람도 아닌 귀여운 아이가 짧은 팔로 자신의 밥(?)을 받아들더니 덥석, 잘도 갉아먹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여움을 느끼게 했다. 아이에게 간식거리를 쥐어준 그녀는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윗목으로 올라가 앉았다. 옆에 바로 앉아있는데도 여전히 그―황천이라는―인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자아.”


그녀가 문득 꺼내든 건 어색하게도 느껴질 정도로 아직 어려 보이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한 개의 긴 병과 잔. 게다가 그 매치는 무척이나 언밸런스 했다. 영어가 잔뜩 쓰여진 보라색의 길다란 병과 넓지만 길이가 무척이나 낮은 술잔. 그 술잔엔 마시다 라는 느낌보다도 무언가를 담가 먹는 것이 더 어울리다 해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한 손에 각각 쥐던 그것들을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마셔 볼까나….”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태도는 어쩐지 조금 어색했다. 사실 소녀는 단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낮은 잔의 이 ‘소주’라는 것은 현실에서 말하는 그것의 이름만 따왔을 뿐, 그리고 이와 정말 어울리지 않게 샴페인을 사서 같이 놓아둔 것이다. 흥취를 아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기가 막혀 웃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이것마저 그녀에겐 재미난 모습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술이란 것을 싫어했고, 이곳에서 마셔본들 해봤자 취하지도 않을 뿐, 체력만 깎아나가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도, 활발한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두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우스울 정도.


“저, 그쪽도 드실래요?”


오늘은 인사뿐만 아니라 술까지 권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묵묵부답.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아서 이미 굳어 뻣뻣해져버린 건 아닐까 하며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하던 그녀는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소주 한잔을 더 꺼내 그의 앞에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앉아 술을 마시려던 그녀의 옆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순간 난생 처음 들어보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보았다. 단 한번도 고개도, 말도 꺼내지 않았던 그, 󰡐황천󰡑이 문득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말…하실 줄 아시네요?”


그가 꺼낸 거절에 대한 말의 의미보다도 그가 말을 꺼냈다는 그 자체가 신기했던 그녀는 멍하게 쳐다보면서 놀라운 듯이 물었다.


“난 벙어리가 아니다.”


모습 그대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어둡고, 낮은 목소리.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것이 좋게 느껴졌다. 왠지 자신까지 덩달아 침착해지는 느낌. 적막함만이 흘렀던 그의 사랑방에서 문득 들려온 그 목소리는 어쩐지 차갑다거나 무섭다기 보다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져 편하다고 생각 될 정도였으니까.


“술 안 좋아하시는군요?”
“인간들이 가끔 머릿속의 상념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니까.”


마치 자신은 그 분류가 아닌 듯이, 완벽하게 갈라놓는 그의 말투.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던 그녀조차 그에 대해서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동감이 돼서 픽, 하고 웃음까지 나와버렸던 것이다.


“머릿속의 상념이라…과연 그렇군요.”


술이라, 술.
그녀도 문득 이렇게 마시려고 준비해놓고 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아니, 그전부터 사실 그렇게 생각은 했었다.
본래 좋아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먹을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왜 이런걸 마시지 하고 이해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입에 댔을 때도 절대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물처럼 일상적인 것도 아닌데 어째서 술이란 것은, 그리 사람들을 매혹시켜버렸을까. 늘 생각해 왔던 그 사실이, 이처럼 오늘에 와서, 뼈저리게 느껴지리라고는.

 

 

 

“인연이 뭐라고 생각해요?”


문득, 잔에 담겨져 있는 투명한 물-은 아니지만-에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그러나 황천은 또다시 입을 다문 듯 답변하지 않았다. 그 역시 언제나처럼 고개를 돌리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소녀는 말을 이었다.


“죽음이란 거, 그리고 시간이라는 거. 과연 사람의 인연을 떨어뜨릴 수 있는 걸까요?”
“……….”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조금씩 변하는 공기에 대어 느낄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명백히 한때, 󰡒죽은 자󰡓가장 가까운 인물이었으니까.


“늘 생각했었어요. 죽음과 시간이 과연 얼마나 우리의 인연을 잊게 할 수 있는지. 그 사람과 나와….”


어쩌면 이루어지지 못해서 더 안타깝다 느끼는 사랑일런지도 몰랐다. 가슴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에서는 아니다 하는데도 그토록 가슴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떠나간 인연을 계속 바라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했다. ―기다리진 않았지만.


“죽은 사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그게 모든 것의 섭리고, 이치니까.”


그의 조용했던 입이 또다시 열렸지만 이번엔 꽤나 싸늘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오래 전부터 느껴온 사실인지라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었다.


“알아요. 어쩌면, 인연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고 바로 떠나버렸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인연이래도 좋았다. 당신을 만나 나는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을 얻었고, 당신을 만나 영원한 마음을 바치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럴 것이다 했다. 당신을 만난 것이 얼마 안 되는 시간이래도 운명이라 믿고 싶었었다. 그리고 그도 그렇게 말을 했었다. 어쩌면, 떠나갈 나를 위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너를 만나고 가는 거라고.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결국엔 떠나 버린 그를 생각하며 가끔은 그런 그를 원망해보고자 했었다.


“인연이 없다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다. 인연이란 것은, 언제나 시작과 결말로 이어지지. 더불어 이 세상에 사는 영혼들과 단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것조차 우리는 축복이라 한다.”
“축복이라 한다 구요? 어째서?”
“인간들뿐 만 아니라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저기 앉아있는 네 아이도 마찬가지겠지.”


가작가작 거리며 기묘한 소리와 함께 자신이 내어준 뿔을 갉아먹는 보랏빛의 아이를 가리키며 황천이 말했다.
많으면, 수없이 많다할 6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1분 1초를 동시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거대한 것조차 밖으로 나아가면 그만큼도 넘는 행성들과 별의 하나일 뿐, 보자면 마치 바닷가의 모래와도 다를 바 없는 곳에서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 다는 것.


“…생각해보니 정말 대단하군요.”


시간이 지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시간이 지나 왜 정말 당신을 만나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오랫동안이나 자신이 살던 이 세계에서 당신과 나는 그토록 우연히 단 한번도, 말 한마디조차 나누지 않았는데, 심지어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다 본 기억조차도 없건만, 그것도 왜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되어 만났을까. 단 한번 당신이 나를 기억하긴 했지만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무심히 남이기에 스쳐가던 눈앞에 그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만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던가.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지금의 연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좋은 사람이면서도 단 한번도 그렇게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곁에 있고 나서 부쩍 늘은 건 혼자만의 외로움. 나는 역시 떠나버린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하면서도 노력했지만 때때로 그가 그런 자신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섭섭했다. 사실은, 조금은 잊게 해주길 바랬는데. 영원히 잊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보다 지금의 이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더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길 바랬는데. 결국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운명-이라는 단어, 지금도 믿진 않아요.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늘 자신의 인연이라 생각해왔던 그녀지만 길지도 않은 단 기간에 단번에 다가와 버린 것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엔 막연히 미로 같은 자신의 마음에 울어대기도 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아서.


“인간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순 없지만 죽음 또한 인간 자신의 행동으로 변하기도 하지.”


소주잔을 입에 갖다댄 그녀는 무언가 쓴맛이 느껴진다고 느꼈다. 역시, 이런 걸 왜 먹는 걸까. 하면서도 이 순간 그녀는 차라리 쓰는 듯한 이 맛이 낫다고 느꼈다. 가슴속까지 흘러내리는 기분. 그래서 술이란 것이 이리 사람들을 매혹시켰던가. 씁쓸한 미소가 얼굴까지 비쳐 나왔다. 대화는 마치 그것으로 끝이 난 것처럼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썰렁한 공기가 맴도는 그 방안에는 오랜 적막함이 흘렀다. 입구 앞에 매달려 있는 수돗가에서 새어나오는 물방울이 대야의 가득 담긴 물을 한번 더 찰랑이며 적셨다. 소녀가 한번 더 잔을 기울일 무렵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는다면 이어지는 것이 인연이라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흘러도….”


조금은 놀란 눈동자로 소녀가 황천을 쳐다보았다. 사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몇 번이고 이곳에 그와 함께 왔었으니까. 그때마다 그는 무심했고, 사실 그것 때문에 이곳에 온 이유도 있었지만, 분명 그녀가 기억하는 것을 황천 또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수시로 많은 걸 잊고 많은 걸 기억하며 살아간다. 정작 중요한 걸 잊을 때도 많지만 결국엔 모든 걸 기억하지. 그걸 󰡐추억󰡑이라 하더군. 그리고 수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결국엔 기억이 현실로 이뤄지고, 이어질 정도로 질긴 것 또한 인간이야.”


하지만 내 오랜 기다림은 몇 번이나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지.
그걸 알면서도 잊지 못했고, 그걸 알면서도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사실 잊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을 모른 척 했었다. 그리고 영원히 그리 되리라 믿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네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인간소녀여.”
“………무서워하는 것.”


잊는 것.
당신을 잊는 것이 과거엔 너무나 두려웠었다. 당신이 떠나가 있는 그 오랜 시간을 버텼지만 결국엔 잊지 않았어도 마음은 수시로 변했다. 명백한 과거, 되돌이 킬수 없는 일.
그리고 이번에도 누군가가 떠나갔을 때, 서로가 잊혀져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항상 그런 것이 두려웠다. 두렵지 않으려 생각하고 마음먹었는데도 늘 마음과 현실이 같지 않다는 걸 수백 번 느껴온 그녀로써는 막상 부딪힌 이 상황이 두려웠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많은 것을 헤맸다.


“내가 인간들에게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에도 황천이 먼저 말을 꺼내 들었다.


“마치 너 같은 부분이다. 어떻게 헤어지건 인간들은 한번 스쳐지나간 사람을 잊지 못하지.”


‘그래, 나는. 스쳐지나간 모든 사람들을 기억했으니까.’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을 나눈 사람들을 저절로 기억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것이 언젠가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으며 늘 이곳에서 기다릴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이곳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변함 없이 이곳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렸었다. 그 사람들이 떠나가도 낯선 듯이 돌아올 때 자신이 있으면 웃어줄까, 미소지어주며 과거를 추억해줄까.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해줄까, 하고.
사실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좋았었다. 사실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좋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저 내내 그 사람을 생각하니까. 그저 한 곳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실 자체가 좋으니까, 그냥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기다림 다음에 오는 그 순간을 상상할 때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기다림이 길어지는 만큼 그때가 오면, 그 기쁨이 더없이 컸었음을. 다른 무언가를 잊지 않는다고,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을 때 거꾸로 이런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우연히, 우연히 만나 이렇게 되었음을, 그러하니 시간이 지나도 기억할 수 있을까 하여도. 


초록빛이 감도는 투명한 잔 위로 소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회상하기도 하는 듯 했지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소녀가 쥐어주었던 한 개의 뿔을 다 갉아먹었는지 수돗가에서 새어나오는 물방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이곳은 달이 없었다. 그저 밤이 되면 비추는 어둠이 너무나 어두워서 주위의 풍경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붕 위에서 노랗게 불타는 등잔 밑이 좋았다.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등잔불이 가득 잔에 담겨지며 그녀는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미소지었다.


“그래, 늘 나는 기다리고 있어. 돌아올 사람들을. 그러니까….”

 

 

 

‘그러니까 반드시……절대로 잊지 않아.’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렇게 기다릴 것이다.
당신을.

 

 

 

 

전체 댓글 :
1
  • 보리스
    네냐플 강철향기
    2006.09.27
    인연이라..좋은 소재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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