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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번에도 사고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그 이면에서 들었던 것이다. 시체놀이가 특기에 괴상한 일에 잘도 휘말리는 괴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가 그의 친구였지만 샐러리맨이 말한 위험이란 것이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이번 학원 생활은 평범하게 할 거라고 그가 나름 선언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온전히 믿는다는 건 또 아니지만.
하여 찾는 거를 도와줄까란 소녀의 말에 소년은
"아냐, 됐다"
하며 손을 휘휘 내젓고는 더 귀찮아지기 전에 교정이나 더 돌란다, 하고는 자리를 떴다.
몇 시간이 지나, 청동색 머리칼의 소년을 보리스, 라고 이름을 부르며 그 옆에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금발의 소년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올 줄도 모르고.
또 어느 구덩이에 숨어버렸냐, 회색 고양이야.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다 애꿎은 땅을 발길질하며 잠깐의 화풀이를 하고 있으려니,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꽤나 즐거운 듯한.
물론 그는 눈치채지 못했고 약간의 감이라도 느꼈을 때엔 또 무엇이 문제냐는 표정의 소녀가 흑빛 단발의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뭐,뭐야 이스핀, 네가 왜 여깄냐?"
"왜긴, 나도 학생이니까 있지"
뭐 잘못먹었어? 하고 소녀의 눈이 약간 동그래지자 그럴 리가 있냐며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고 툴툴거리는 소년. 그럼 네가 그렇지. 소녀의 표정의 묘한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소년이 시달리지 않게 시달리는 사이, 태양은 각도를 바꿨고 조슈아는 여전히 방에서 두문불출이었다.
그가 하루만의 은거를 깨고 나왔을 때는 어제와 같은 아침의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
작게 심호흡을 하고 표정을 관리한 그는 명목상의 교재를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꽤나 이른 시간이었던 듯 기숙사에는 복도에 나와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누구와도 가까이 마주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한 빌라 앞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빌라의 주인인 소년들이 소리의 근원이었는데, 시선은 문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없어진 방패에.
"또 방 전쟁이야..?"
"도토리 빌라 녀석들은 아니겠지..?"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수업 끝나고 로글랑탱 파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라고 여겨 그대로 갈길을 가려던 그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이 계단의 중간에서 멈추어 섰다. 그들이 말한 것들이 어딘가 익숙하다, 고 머리에서 경종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누나! 로글랑탱 파이 100개 주세요!
-어떡해, 샐러리 양을 맞추느라고 다른 시약을 빠뜨렸나봐...
-이 몸봐라, 하나에 3엘소노나 하는 파이님을 감히 던지지 못하잖냐?
-...아니. 미안하다.
.
.
.
-기 르로이, 크림차 빌라에 있었어.
-꿀이랑 레몬 향이 나잖아! 아마 허니 레몬 잼이 아닐까?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에 분명 자신이 말했다고 하는, 음성이 뒤이어 머리속을 헤집고, 그것을 기점으로 홍수가 나 제방이 터져 급류를 방출하듯이, 수많은 영상들이 뒤섞여 노도와 같이 밀어닥쳤다.
물론 그가 저장하고 있는 양에 비해서는 다량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것들이 제 자리를 찾겠다며 아우성치자 알싸한 두통이 밀려 올라왔다.
".......으..."
통증을 추스리러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니, 이번에는 무형의 책장이 바람을 타고 넘어가며, 그것을 가리던 '종이'들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종이'들은 새가 되어 날아가고, 보이지 않는 손길에 잡혀 한 송이 종이 꽃을 이룬다.
생각보다 빠르군. 기억을 하기 위해 태어난 자에겐 망각의 안개도 별다른 소용이 없는가...
껄껄, 웃음소리가 다시금 퍼지고, 꽃잎을 쓰다듬는 손끝에서부터 은은한 향기가 새어나와 조슈아의 주위에 엷은 장막을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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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출연: 이스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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