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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렛
소설

After Story

하이아칸 달의고귀한고독 2014-02-08 00:02 514
달의고귀한고독님의 작성글 1 신고

'이번엔 내가 네냐플로 만나러 갈게'

골모답을 처치한 후, 하늘 다리에서 이솔렛은 그렇게 말했다.

영영 돌아가지 못 할 곳이라고, 그리고 만나지 못 할 사람이라고 마음 속 깊이 억눌러왔던 감정들은

이솔렛의 그 한 마디로 다시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네냐플로 온다는 것일까?

 

"보리스, 무슨 생각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나와 같은 쾌활한 미소를 띈 금발의 소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안, 언제 왔어?"

"방금! 그보다 오늘 신입생 환영회라는데 구경 안 갈거야?"

"오늘인가...."

"가자, 가자! 나 신입생들 빨리 보고 싶단 말이야!"

"선배라고 신입생들한테 겁주려는 거 아니야?"

"그...그렇지 않아!!"

손을 열심히 내저으는 루시안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다 들킨 꼬마아이와 같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같이 장난치려는 것은 아니지만...어차피 재학생은 전원 참가가 원칙이니 가볼 수밖에 없겠군..."

보리스는 천천히 일어나 항상 들고 다니는 윈터러를 장비했다.

눈에 띈다는 이유로 검집을 바꿀 때,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선물해준 가죽끈은

지금도 윈터러를 가지고 다니기에 유용했다. 

허리 뒤쪽으로 윈터러를 가로로 장비하고, 혹시나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라도 할까 싶어

학원에서 동계 보온용으로 제공되는 커다란 망토를 둘러 윈터러를 가렸다.

"어차피 학원 안일텐데 꼭 그렇게까지 가려야 돼?"

이유는 몰라도 보리스가 그 검만큼은 항상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있는 루시안이 물었지만,

보리스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을 뿐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보리스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루시안도 더 이상 캐묻거나 하지 않고,

보리스와 함께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는 강당으로 향했다.

 

"와, 이게 다 신입생들이야?"

강당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인파를 본 루시안이 놀라서 입을 열었다.

"그런가봐.  올라가자."

재학생들은 신입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끔 2층에 위치한 계단형 의자에 앉게 되어 있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쪽으로 향하자, 출입을 통제하고 있던 선도부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항상 보던 얼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자리가 좀 빈 것을 보니, 미리 자리를 맡아 놓은 것 같았다.

그 쪽으로 향하니 안경을 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루시안!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미안, 막시민!  보리스가 준비가 너무 늦잖아! 

그러고보니 막시민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야, 야!  내가 언제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막시민은 살짝 화가 났다는 듯이 관자놀이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막시민은 내가 데려왔어!"

갑자기 막시민의 얼굴 앞으로 금발을 한 소녀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역시, 티치엘한테 잡혀온거였구나!"

"아, 아냐!! 잡혀오다니!"

"막시민, 거짓말 하면 안 돼.  몇 일 전에도 거짓말하다가 우리 아빠한테 들켜서 혼났...!"

막시민이 급하게 그 소녀의 입을 막는 모습을 보며, 루시안과 보리스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런, 우리가 제일 늦은 건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자리에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이자크와

언제나와 같이 자기 몸만한 크기의 곰인형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나이스가 와 있었다.

"오, 아저씨! 어서 와!"

막시민이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는 동안 아나이스는 얼른 티치엘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나벨...내 옆 자리도 비었는데..."

이자크가 멋쩍은 듯이 입을 열었지만 아나이스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티치엘 언니가 더 좋은걸!"

이라고 외치고는 티치엘의 오른쪽 팔에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나도 아나벨은 귀여워서 좋아!"

티치엘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아나이스와 함께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에휴...그러고보니 밀라와 나야트레이는?"

"밀라는 인원 통제를 맡게 되었다면서 지금 신입생 가족들의 안내를 맡고 있을 거야.

나야트레이는...아까 우연히 만났는데 이런 자리는 싫어한다면서 도망쳤고.

아, 그리고 클로에는 상위 귀족의 영애답게 저기 단상에 앉아 있지."

막시민의 설명을 들으며 이자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리스의 옆에 앉았다.

잠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자니, 식의 진행을 맡은 이셀다 선생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용 조용!지금부터 귀여운 애기들...아니 네냐플의 입학을 축하하는 입학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웅성거리던 소란스러움은 이셀다 선생의 한 마디로 조용해졌다.

식은 순서대로 진행되어 처음 교가를 제창하고, 학원장의 축하문 낭독이 이어졌다.

"자, 그럼 다음으로 신입생 대표의 감사문 낭독이 이어지겠습니다.  신입생 대표 앞으로!"

이셀다 선생의 말이 끝나자 구석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의 앞으로 나와 섰다.

"신입생 답문!"

학생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 안에서 깊고 우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리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솔...렛....?"

"거기 학생.  자리에 앉아요!  재학생들 조용히!"

갑작스레 일어난 보리스로 인해 재학생 좌석 측에서 일단의 소란이 일었고,

이셀다는 그러한 재학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히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보이는 보리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루시안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고,

이자크는 급하게 보리스의 어깨를 잡아 눌러 보리스를 좌석에 다시 앉혔다.

이셀다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시작했는지 신입생 대표에게 진행해도 좋다고 손짓했다.

"이렇게 환영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학원장님 이하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올립니다."

로 이솔렛은 답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보리스의 귀에 이솔렛의 그러한 답문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솔렛의 답문이 끝나고, 재학생 대표의 축하문이 이어졌고, 입학식은 끝나게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보리스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가기 시작했고,

남아있던 다른 인원들은 그러한 보리스의 모습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다만, 함께 달의 섬에서 골모답을 잡았던 티치엘과 아나이스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급하게 뛰쳐나간 보리스는 곧 입학식장의 입구 옆에 조용히 기대어 서 있는 이솔렛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솔렛. 이..이게 대체 어떻게 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보리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솔렛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늘 다리에서 약속하지 않았니?  이번엔 내가 네냐플로 너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하지만 그 곳에서 어떻게..."

"이번 골모답 사건과 함께 섬에서도 일단의 사건이 있었어.  그리고 그 결과로 대륙과도 약간씩

교류의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어서 그 대표격으로 내가 이 학원에 오게 되었어."

"그....그런...!그럼 정말로 네냐플의 정식 학생으로 오게 된거에요?"

"응.  그리고 여기, 지팡이의 사제님께서 네게 보낸 편지가 한 통 있어."

이솔렛은 교복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어 보리스에게 건넸다.

"지팡이의 사제님의...?"

보리스는 그 편지를 조심히 열어보았다.

'보리스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이솔렛과 잘 만났다는 뜻이로구나.

 이번에 다시 나타난 골모답의 처치를 위해 너와 대륙의 네냐플 마법학원의 도움이 매우 컸구나.

 따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는 못 하였지만, 감사하다는 뜻을 감출 수가 없구나.

 골모답 사건 이후에 너희가 대륙으로 돌아간 후, 섬에서도 또 다른 소동이 있었단다.

 네냐플 마법학원의 도움과 함께 그들의 뛰어난 마법적 지식을 직접 확인한 일부 순례자들이

 그들과 교류를 꾸준히 행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제로씨가 대중 앞에 내보였던 한 권의 책은

 네냐플 마법학원과 꾸준히 마법적 지식을 교류해야만 한다고까지 발전되게 되었단다.

 제로씨의 말에 따르면 보리스 너는 이미 그 책을 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구나.

 그래서 그러한 마법 지식의 교류를 위한 첫 걸음으로 대표자를 뽑기로 하였고,

 이솔렛을 보내게 되었단다.

 그녀의 행동의 결과가 달의 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물론 이솔렛 혼자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겠다 싶어서 보호자의 역할로 다른 한 명을 같이 보냈단다.

 너도 잘 아는 사람일 터이니 그 둘을 잘 부탁한다.

 지팡이의 사제 데스포이나'

편지를 다 읽은 후에도 보리스는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 하였다.

제로씨가 결국 달의 섬의 섭정의 권한을 무너뜨릴수도 있는 강력한 한 수를 내보인 것 같았다.

섭정의 권한에 정면으로 나서서 패망하게 되었던 일리오스 사제가 생각이 나서 보리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무탑 속의 현자'라고 불릴 정도였던 제로였기에 어떻게든 다른 수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추측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편지에서 의문이 가는 문장에 생각이 미쳤다.

'이솔렛 혼자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겠다 싶어서 보호자의 역할로 다른 한 명을 같이 보냈단다.

 너도 '잘 아는 사람'일 터이니 그 둘을 잘 부탁한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며 이솔렛의 보호자 역할이라니, 대체 누구일까?

처음 떠오른 것은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오이지스를 떠올렸다.

하지만 오이지스는 이솔렛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자의 역할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헥토르인가?

하지만 헥토르라면 이솔렛 측에서 거절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단센?

단센이라면 나이도 나이이며, 여러가지 면에서 '이솔렛의 보호자'로서 맞아 떨어질 것 같았다.

"이솔렛, 여기 편지에 보면 당신의 보호자로서 한 명을 같이 보냈다는데 누가 같이 온건가요?"

이솔렛은 '당신의 보호자'라는 단어에서 순간 움찔하기는 했지만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나지, 누구겠냐!"

강당 입구의 낮은 지붕 위에서 쾌활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지붕 위에서 땅바닥으로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서...설마!"

위로 묶어 등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손으로 벅벅 긁어 흐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이솔렛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려 했으나 이솔렛이 손을 들어 그의 손을 털어냈고,

어색하다는 듯이 손을 만지작 거리며 그는 쾌활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나지! 누구겠어! 나....그러니까 여기는 아노마라드지? 그러면, 그래! 월넛 선생이 돌아왔다!"

"사제님!"

"어허!여기서는 선생이라고 불러야지!"

보리스의 눈 앞에 달의 섬에 두고 온 사람들 중 항상 걱정되고 다시 만나고 싶던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우플리온...항해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가 다시 한 번 보리스의 앞으로 항해를 한 것만 같았다.

그 둘의 재회를 바라보던 이솔렛이 입을 열었다.

"지팡이의 사제님께서 이 분을 내 보호자라고 쓰셨다고...?"

그 말에 움찔하며 보리스는 고개를 돌려 이솔렛을 바라보았다.

"네...확실히...."

"인정할 수 없어."

"네?"

이솔렛의 의외의 반응에 보리스는 당황했다.  분명히 전에 만났을 때 이솔렛과 나우플리온은

화해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난 내 몸 하나 정도는 내 스스로 지켜낼 수 있어.  누군가의 보호같은 것을 받지 않아도."

그랬다.  잊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녀는 전사의 딸이었고, 그녀 자신도 이미 어엿한 전사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월넛 선생으로 돌아가게 된 나우플리온이 급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내가 이솔렛을 보호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보다 보리스! 나는 어디서 자면 되지?"

보리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솔렛은 이제 이 학원의 학생이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월넛 선생은 학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곳의 선생도 아니니 잘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어디서 자야 하는 것인가?

그 때 가까스로 인파를 뚫고 루시안이 나타났다.

"보리스!  여기 있었어?"

루시안이 겨우 만났다는 듯이 급하게 뛰어와 보리스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어? 누나는?"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실버스컬에서 보리스를 추천하여 큰 돈을 벌게 해주었고,

보리스가 트라바체스로 가기 직전 루시안의 집으로 찾아 왔던 적이 있기에

루시안은 이솔렛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다시 보리스를 데려가시는 거에요?"

루시안이 다소 걱정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고, 보리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이번엔 제가 보리스에게 온 거죠."

이솔렛은 짧게 말했고, 그 짧은 한 마디에 보리스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제가 보리스에게 온 거죠.' 라는 한 마디는 보리스를 그렇게 만들기 충분했다.

"음! 이 꼬마는 또 누구지?"

월넛 선생이 제대로 면도되지 않아 까칠하기라도 한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고,

보리스도 정신을 차리며 그를 소개했다.

"제가 지금 신세지고 있는 드메린 칼츠 시의 외아들인 루시안 칼츠입니다.

 이솔렛은 전에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서 그 때 한 번 만났었죠."

"흐음 흐음! 그렇군.  반갑네!  난 월넛이라고 하지!"

다소 쾌활하게 소리치듯이 인사하는 월넛을 보고 루시안은 해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루시안 칼츠입니다!"

"이 녀석이랑은 다르게 나이에 맞게 쾌활한 친구로구만!"

월넛이 장난스럽게 보리스를 턱짓하며 입을 열었고, 보리스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루시안에게 급히 입을 열었다.

"루시안, 미안한 부탁이기는 하지만, 월넛 선생님께서 묵으실 만한 곳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내게 검술을 전수해주신 선생님이셔."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야?"

루시안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고 보리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구해줘야지!음...우리 집에 방 많은데 그 중에 하나로 하면 될까?"

"기왕이면 그 집 말고 집 밖에 작아도 상관 없으니 다른 집을 하나 구할 수는 없을까?"

"왜?"

"저 분이 너희 집에 같이 살게 되면 칼츠 씨께서 창고에 저장해 놓으셨던 좋은 포도주들은

 몽땅 저 분이 다 드실테니까."

"아, 그럼 안 되지!"

그 둘의 대화에 월넛이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보리스!  내가 언제!"

"전에도 주방에 술병을 숨겨두고 매일같이 술 드셨잖아요!"

"그..그건 묵은 술이었잖아!  어차피 버릴 술이었다고!"

"어차피 루시안네 집에는 묵은 술은 없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좋은 술이라도 꺼내 먹지 않겠어요?"

"그...그건! 그렇지 않아!"

"믿을 수 없네요."

"허...참...어린 놈이 벌써부터 나를 이렇게 술주정뱅이 취급을 하네..."

"사실이잖아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이 둘은 마치 어제 만나고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신기하네.  보리스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니?"

루시안이 신기하다는 듯이 보리스를 바라보았고, 보리스는 급하게 평소와 같이 냉정해보이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솔렛이 조용히 입을 열어 루시안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히...루시안 칼츠...라는 이름이었죠?"

"네? 네!  기억해주셨네요!"

루시안은 이솔렛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라도 한 것마냥

이솔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보리스의 말대로 작은 곳이라도 상관 없으니

다른 곳에 집을 구할 수는 없을까요?"

"음...알았어요! 구해볼게요!"

"고마워요."

루시안은 쾌활하게 대답했고, 이솔렛은 그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루시안은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월넛에게 집을 구해달라는 연락을 할테니 같이 가시겠냐 물었고,

월넛은 흔쾌히 수락하며 루시안을 따라갔다.  그로 인하여 보리스와 이솔렛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보고 싶었어요, 이솔렛."

"응...나도 보고 싶었어."

만나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월넛과 루시안이 대화에 끼여들어 제대로 얘기하지 못 하던 둘은

단 둘이 남게 되자 바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신을....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솔렛의 손목을 가볍게 쥐며 보리스가 입을 열었고, 이솔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리스의 손을

가만히 내려놓으며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알잖아.  섬의 법도를...."

보리스도 그것을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못 하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팡이의 사제님의 도움으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올 수 있었어.

 우선은 그것만이라도 감사하자."

이솔렛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고, 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원 생활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보리스와 이솔렛은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품에 안을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의 역할로 대륙에 함께 나와 있던 월넛은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제의 일로 섬에 급히 다녀오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월넛은 달의 섬으로 돌아갔다.

이솔렛과 보리스는 그들이 조사한 옛 달의 섬의 조상들과 기원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을

월넛을 통해 달의 섬으로 함께 보냈다.

약 2년 여 만에 도착한 달의 섬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우선 제로가 밝힌 책의 내용과 이 2년 여간의 여론은 섭정인 스카이볼라의 힘을 굉장히 위축시켰다.

거기에 더해 적극적으로 대륙의 마법을 받아들이자는 과격파까지 형성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사제들의 권한과 능력 등으로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끌어내리려는 노력까지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미 기존의 폐쇄적인 풍조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나우플리온으로 돌아간 월넛은 섬에 도착함과 동시에 데스포이나를 만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데스포이나의 집에 도착한 나우플리온은 시종의 안내를 받아 데스포이나를 만날 수 있었다.

시종이 나가고 나자 나우플리온은 바로 입을 열었다.

"누님,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서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단다."

과격파의 등장까지 있었음에도 평온한 미소를 띄고 있는 데스포이나를 보며,

나우플리온은 한 차례 마음을 편히 할 수 있었다.

"이건 이솔렛과 보리스가 조사한 자료입니다."

품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가죽끈으로 간단하게 철한 종이 뭉치를 데스포이나에게 건넸고,

그녀는 잠시동안 그 종이를 한 장 한 장 유심히 읽어가며 내용을 이해했다.

"그래...이미 2년 전에도 나온 말이긴 하지만 제로씨의 말대로 우리의 근본은 저 대륙인들이 말하는

 '가나폴리'라는 곳임이 확실한 모양이구나."

"네, 하지만 그 곳은 대륙에서도 '필멸의 땅'이라고 부르며 접근하기 어려운 곳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곳은 우리 순례자들의 기원이자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임은 분명한 것 같구나."

"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데스포이나는 나우플리온이 무언가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또 무언가 할 말이 있는가 보구나."

"실은...누님이기에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건데요..."

"말해보거라.  내가 언제 네가 하는 말을 무시하거나 내친 적이 있더냐."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솔렛과 보리스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솔렛과 보리스? 무슨 소리인게냐, 갑자기?"

"보호자의 입장으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안타깝습니다 누님.

 저는 이미 보리스의 행복이 제 행복이고, 이솔렛의 행복이 제 행복이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둘이 '섬의 법도'라는 벽에 가로막혀 닿을 듯 말듯 하면서 그 마음을 체념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둘을 어떻게든 맺어주고 싶습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섬의 법도이기에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어디까지나 낡고 폐쇄적인 법도에 막혀 그 둘을 갈라놓는다는 것도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달여왕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신다.  달여왕님을 욕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누님, 달여왕 신앙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누님도 이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신앙을 완전히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법도로 서로 애틋하게 아끼는 두 남녀가

 그 마음이 확실함에도 맺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매우 안타까운 것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하다만..."

"이미 과격파의 출몰로 달여왕 신앙도 많이 수그러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륙과의 인연을 강화하면서 필멸의 땅을 조사할 조약을 맺는 것과 동시에

 이솔렛과 보리스를 서로 맺어주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대륙과 인연을 강화하는 의미임과 동시에 서로 사랑하는 남녀 둘이 맺어지는 것이잖습니까?"

"그래...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구나.  하지만 이솔렛이 이 섬에서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해 보았느냐?"

"알지요. 전 검의 사제의 딸이자, 그 분의 모든 지식과 섬에서 잊혀져가는 옛 문화의 계승자이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그 둘의 맺음이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알겠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급히 사제 회의를 열도록 해보겠다."

"정말이십니까?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누님?"

"그래....어디 다른 사제들과 수도사들, 섭정 각하께서 어떠한 답을 내려주실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제의라도 해보자꾸나."

"감사합니다, 누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 벌써부터 감사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누님."

"그래...."

데스포이나는 나우플리온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고, 나우플리온은 그녀의 손을 보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보아준 누님과 같은 존재이던 데스포이나였다.

지금 돌이켜 본 그녀의 손에는 잔주름마저 잡혀 있었다.

이미 눈가에도 잔주름이 잔뜩 생긴 데스포이나였다.

아마 이번의 제안으로 그녀의 눈가에는 또 다시 잔주름이 생겨날 것이다.

왜 자신은 항상 친 누이와 같은 데스포이나 사제에게 항상 잔주름이 생겨날 것만 같은

그런 부탁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절로 들게 하는 손이었다.

 

그리고 몇 일 후, 전 사제들과 섭정, 그리고 대부분의 사제들이 모인 대 회의가 진행되었다.

여러가지 격한 말이 오가기도 했으나, 이미 형성된 각종 여론들과 결정적으로

섭정을 대신하여 자신의 의견을 주창한 리리오페의 발언 등으로 그 둘의 맺음이 허락되었다.

리리오페가 그 둘이 맺어지는 것을 허락하게 된 것은 의외였지만,

그녀의 찬성이 그 둘이 맺어지는 것에 대해 결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었다.

데스포이나는 친히 그 둘이 맺어지는 것을 허락한다는 편지와

네냐플의 학원장에게 '필멸의 땅에 대한 공동 조사'를 제안하는 편지를 각각 1통씩 작성했다.

그리고 그 편지들은 나우플리온의 손에 돌아가 대륙으로 향하게 되었다.

 

대륙에 도착한 나우플리온은 기쁜 마음으로 네냐플로 향했다.

네냐플에 도착한 나우플리온은 항상 장난기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공사구분이 확실한 성격대로

우선 섬의 일을 해결하기로 생각하며, 네냐플의 학원장실을 찾았다.

'달의 섬의 대표자'의 자격으로 왔기에, 네냐플에서도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었고,

데스포이나의 편지를 읽어본 학원장은 크게 기뻐하며, 달의 섬의 제안에 찬성하는 답장을 보내었다.

달의 섬에 찬성의 답장을 보낸 것을 확인한 나우플리온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학원장실을 나왔다.

이제 그들의 행복을 빌 시간이다.

 

마침 점심 시간이었기에 보리스와 이솔렛은 학교의 카페테리아에 나와 있었다.

서로 고급 식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기에 카페테리아에서 판매하는 간단한 샌드위치와 홍차를

구입하여 간단히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나우플리온이 지붕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아무래도 나우플리온은 지붕에서 떨어지듯이 내려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선생님! 이제 오신건가요?  일이 있으시다니 잘 끝나신건가요?"

"그래, 잘 끝났다, 이 녀석아!"

보리스의 긴 머리를 크고 굵직한 손으로 잔뜩 헝클어놓다시피 한 나우플리온은 목에 힘을 주며

그들에게 중대 보고를 하려는 것 같이 폼을 잡았다.

"뭐에요.  갑자기."

그 폼이 다소 웃겼던지 보리스가 미소를 띄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달의 섬에서 너희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가져왔지!"

보리스와 이솔렛은 서로를 마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 여깄다!"

나우플리온은 품 속에서 빠르게 편지를 꺼내어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뭐에요?"

봉투를 뜯으며 보리스가 물었지만, 나우플리온은 펴보면 안 다는 듯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나의 편지지를 보리스와 이솔렛이 함께 잡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솔렛과 보리스에게

 나우플리온으로부터 너희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서로 사랑함에도 섬의 법도에 얽매여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보리스가 다프넨이던 시절, 너희 둘을 보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늘,

 한 때의 사건으로 인하여 어긋나게 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단다.

 나우플리온의 설득에 넘어가 대 회의를 신청하였고, 결과적으로 너희가 맺어지는 것에

 찬성하게 되었구나.  이제부터는 섬의 법도에 상관 없이 너희의 마음을 확인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네냐플과의 협정 등으로 인하여 섬의 위치까지는 아니어도 신성 찬트나 검술 등에 대하여

 대륙인들 앞에서 보일 수 있게 하기로 하였단다.

 따라서 섬을 떠날 때 청석에 머리카락을 바치고 신성 찬트를 금했던 보리스의 금기 역시도

 이제 해제되게 되었단다.

 너희 둘의 행복을 멀리서나마 빌도록 하마.

 데스포이나

 추신. 리리오페가 너희의 맺음에 찬성하며 큰 도움을 주었더구나.'

편지를 읽어나가는 보리스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이솔렛을 품에 안을 수 있다.

그 동안 참아왔던 만큼 이솔렛에게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이솔렛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보리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이솔렛의 표정을 살폈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엷게 홍조를 띈 이솔렛의 표정을 보니,

그녀 역시도 이 편지를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솔렛...."

보리스가 나직이 이솔렛의 이름을 부르자, 이솔렛은 깜짝 놀란 것 같이 움찔 하더니 곧 대답했다.

"응...?"

"드디어....드디어 당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평생을 걸고...당신만을 위해 살아갈게요."

"응...나도 너만을 위해 살아갈게."

보리스와 이솔렛은 이 한 장의 편지를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우플리온, 아니 이제 네냐플로 돌아왔기에 월넛이 된 그가 입을 열었다.

"이야, 허락했다고 벌써부터 닭살 커플이 되려는거야?  나 아직 앞에 있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월넛에게 보리스는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그 동안 얼마나 참았는데요!  이제는 선생님이라고 해도 양보 못 합니다!"

그 말에 이솔렛의 얼굴이 다시 붉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게 된 보리스와 월넛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솔렛은 갑작스러운 둘의 웃음 소리에 놀란 듯이 고개를 들어서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보리스는

"이솔렛, 당신...지금 너무 귀여워요."

라며 나직이 말했고, 이솔렛은 부끄럽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월넛은 닭살 커플을 보고 토나온다는 듯이 토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 둘이 잘 살아 봐라!"

월넛이 다소 진지하게 말했고, 보리스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한 때는 나우플리온과 결혼까지 할 뻔 했던 이솔렛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 둘을 깨뜨린 것이 아닌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선생님...괜찮으시겠어요?"

월넛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뭐가?"

"아니에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월넛은 이것을 해결하려는 듯이 급히 입을 열었다.

"으음. 이솔렛은 보리스한테 보내게 되었고, 그럼 나는 누구를 만나야 하지?

 누구 덕분에 내 목숨에 제한이 사라졌으니, 나도 언제까지고 홀아비로 죽을 수만은 없지 않겠어?"

다소 기대하는 듯이 말하는 월넛의 말에 보리스와 이솔렛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나도 내 짝을 찾아서 사라져 보마!  이 선생의 배려가 너무 훌륭하지 않니?"

라고 외치며 월넛은 적당히 손을 흔들어보이며 다시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생에 고양이기라도 했던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보리스는 다시 이솔렛을 바라보았다.

"이솔렛, 당신이 좋아요."

"응, 나도 네가 좋아, 보리스."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짧게 입을 맞추었다.

 

몇 일 후, 보리스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솔렛과 맺어질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윈터러는 형인 예프넨 진네만의 유품과도 같은 것이기에 팔 수 없고,

야시장에서 루시안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구매했던 손거울도 팔 수 없다.

다행히 성적은 우수해서 네냐플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지만,

그 외의 수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벌 것인가.

그런 고민 중에 루시안이 제안을 해왔다.

이미 이솔렛과 보리스가 서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은 루시안 일행들도 모두 아는 내용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루시안은 자신의 아버지인 드메린 칼츠를 몰래 설득했다.

철 없게 놀기만 하던 자신을 마법학원인 네냐플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고,

도박 중독까지 치료해주었으며, 검술 실력도 높여주는 등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보리스가 말한 것도 아닌데도, 그에게 그간의 월급을 책정해서 줄 수 없냐고 졸랐다.

드메린 칼츠 역시도 아들을 변화시켜 준 보리스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방학에 루시안이 보리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입을 열었다.

"호위무사 겸으로 고용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아들을 성장시켜 주어서 너무 고맙네."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내 그런 자네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미약하지만 준비한 것이 있는데 받아주겠는가?"

"아닙니다.  저도 아드님에게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꼭 받아주었으면 하네."

"그렇지만..."

이러한 대화가 오가니 괜히 답답해진 루시안이 입을 열었다.

"보리스! 빨리 받는다고 해! 나도 함께 준비했단 말이야!"

"루시안...무슨 말을...."

보리스가 루시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루시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보리스의 손을 잡고 끌고 나왔다.

"루시안! 어디 가는 거야?"

"우리 아빠가 준비한 거!  지금 보여줄게!"

루시안은 보리스의 손을 잡아 끌며 집 밖으로 나갔다.

보리스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루시안의 손에 이끌려 그를 따라갔다.

따라간 곳은 루시안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원래는 공터였던 곳이었을 텐데, 집이 한 채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보리스가 놀라서 바라보는데 루시안이 입을 열었다.

"자, 봐! 너무 크면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조금 작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

 네가 좋아할만한 검술 연습장도 만들어 놨고, 또....

 너는 예전에 대장간 조수였다고 들은 것 같아서 작은 대장간도 한 번 만들어봤어!

 방도 몇 개 만들어 놨고!  이제 여긴 네 집이야!"

"루시안..."

"우리 집이랑 거리도 가까우니 이 정도면 걸어서 왔다갔다 할 수도 있을 테니

 완전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때?  마음에 들어?"

"응...정말 좋은 집이야."

보리스가 쉽게 보여주지 않는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미소를 띄어 보이자 루시안은 자신이 선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미소를 잔뜩 띄웠다.

"이솔렛 누나랑 결혼해서 여기서 살아도 괜찮아!"

다소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루시안이 놀렸지만, 의외로 보리스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보리스는 이솔렛보다 먼저 네냐플에 입학했었기에 먼저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솔렛 역시 졸업하였고, 그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 둘의 결혼식에는 그 둘이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월넛 선생과 루시안, 네냐플에서 친해진 막시민, 이자크, 티치엘, 아나이스와 같은 친구들,

드메린 칼츠와 그의 부인, 단센, 그리고 한 때 보리스가 일했던 대장간의 부닌 아저씨와

주점에서 일하던 토냐와 그의 남편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튤크 집사까지 찾아 와서 주인님의 결혼을 축하드린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데스포이나와 제로, 오이지스 등과 같이 달의 섬에서도 몇몇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었지만,

리리오페는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의외의 인물로 헥토르가 찾아와 그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 둘은 그 둘의 성격대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다만, 루시안이 자신의 용돈을 털어가며 최고 요리사를 초청하여 성대한 만찬 음식을 준비함으로써

조촐한 결혼식에 비해 만찬 음식 만큼은 고가의 산해진미가 올라온

다소 해괴할 수 있는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금발을 한 청년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장난기가 사라지지 않은 개구장이 같은 표정이었다.

상인을 상징하는 고가의 옷을 입은 그의 뒤로 한 수레 가득 커다란 상자들이 잔뜩 실린

짐수레가 따르고 있었다.

그 커다란 상자들은 모두 알록달록한 종이로 포장이 되어 있고 장난스럽게 리본까지 묶여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까워 지면서 목표로 하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는 그 집에서 피어오르는 거 같았다.

집에 가까워지자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솔렛, 애들 혼낼 때 티엘라로 혼내지 말아요!!"

"같이 잘못해서 같이 혼내야 하는데 두 명을 동시에 혼내려면 티엘라가 편해."

"비록 회초리라고는 해도 티엘라로 맞으면 저라도 아플 거라구요!"

"아파야 체벌의 효과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만..."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둘은 여전하네"

입구에 다가오니 맞은 편에서 또 다른 한 무리의 일행이 오는 것이 보였다.

떠들썩하게 떠들면서 걸어오는 그들을 향해 그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다들 모였네! 어서 가자!"

"루시안! 너 또 거래 잘 되었다면서? 거 참, 이 장난꾸러기 같은 녀석이 대 상인이 될 줄이야.

 피는 못 속이는 법인가본데?"

"감각대로 지르는 것 뿐인데 항상 잘 맞아 떨어지는 것 뿐이야!  이제는 아버지도 인정해주신다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그 집의 입구로 들어갔다.

"보리스! 우리 왔어!"

입구를 통과해서 나온 정원에서 그렇게 말하자 잠시 후 집의 문이 열리며 보리스가 나왔다.

"어서와, 모두."

보리스의 뒤 쪽으로 보이는 주방에서는 이솔렛이 음식을 하고 있는지 분주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보리스! 이솔렛 언니 도와주지도 않고 너무해!"

라고 외치며 티치엘이 급하게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도와줄래!"

여전히 가슴에 곰인형을 안고 있던 아나이스가 같이 뛰어들어가려 했고, 이자크가 그녀를 붙잡았다.

"아나벨, 너 요리 잘 못 하잖아."

"아니야, 나도 요리 잘 해!"

아나이스가 볼을 부풀리면서 답했고, 다른 일행들은 그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리스의 뒤쪽에서 두 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아, 루시안 삼촌이다!"

"루시안 삼촌!"

루시안을 발견한 아이 둘이 보리스의 다리 뒤에서 뛰어 나와 루시안에게 달려갔다.

"예프넨! 미스트리에!"

보리스가 급히 그 둘의 이름을 외쳤지만 그 둘은 루시안의 다리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래 그래. 우리 예프넨한테는 여기 연습용 검 셋트! 미스트리에에게는 인형의 집이다!"

루시안이 하인이 끌고 오던 수레에서 선물들을 꺼내어 그들에게 전해주었고,

그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예프넨, 미스트리에.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언제 왔는지 이솔렛이 보리스 옆으로 다가와 말했고, 그 둘은 바로 루시안을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루시안 삼촌, 고맙습니다!"

"그래,  싸우지 말고 재밌게 갖고 놀아!"

루시안은 그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답했다.

"내가 제일 늦은 건가?"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갔고, 그 곳에는 다소 늙은 것 같지만

아직까지 장난기 있어보이는 얼굴을 가진 나우플리온이 서 있었다.

"월넛씨! 오셨어요?"

루시안이 반갑게 맞았고, 보리스와 이솔렛도 미소지으면서 그를 반겼다.

"월넛 아저씨, 저도 검술 가르쳐 주세요!"

포장을 다 뜯었는지 연습용 검을 휘둘러보고 있던 예프넨이 말했고, 월넛은 그것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 수업은 쉽지 않을텐데?"

"당신은 수업이라면서 달리기만 시킬 거잖아요."

"그건 내가 대충 한다고 그런 거였고, 그래도 달의 섬에서는 제대로 훈련시켜줬잖아?"

"그래요 그래.  그 덕에 제가 골모답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럼 그럼. 역시 난 위대하다니까?"

"하지만 그 덕에 당신의 삶을 연장시켜 주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음! 흐흠! 배가 고픈데? 밥은 언제 먹는 거지?"

월넛의 반응에 보리스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 집의 불은 그 날 밤새도록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목소리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전체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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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솔렛
    하이아칸 달의고귀한고독
    2014.02.08
    공대생이라 글이 많이 조잡하네요. 처음 써보는 글인데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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