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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의 기억[3] - 이해와 변화

하이아칸 LozenCrantz 2013-04-11 11:22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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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패턴 분석은 어때? 인도자 양?"

'인도자' 라고 불린 회백색 머리의 소녀 옆에 붉은 머리를 길게 뒤로 땋은 청년, 코드네임 '블러디'가 나타났다.


소녀는 화가 나 있었던 모양이다. 뾰루퉁해져서 홱 돌아서서는,


"굳이 너네들도 다 할 수 있는걸 나한테 미루다니.. 좋지 않아.."


블러디는 속으로 미안한 듯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거잖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턴 분석을 너 혼자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그런데,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괜히 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지금 화내는거야?"


회백색 머리를 찰랑거리며 뒤를 노려보는 소녀의 시선에, 청년은 이게 아닌데.. 싶어 당황하다, 다시 말했다.


"아니라니까,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이윽고, 자연스레 소녀의 어깨에 팔을 얹고서는 말하기를..


"'인도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이렇게 어린 소녀라니.. 참 우스운 일이지? 넌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소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블러디를 바라보며,


"능력에 따라서 정해진 일이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이곳 저곳 불려다니기나 하는거니까.."


한숨을 쉬는 그녀를 바라보며 블러디는 안쓰러운 듯,


"이야, 어린데도 그렇게 절망적이면 커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런데 말이야, 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두는건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은 이곳저곳 불려다니지 않아. 그 사실만큼은 확실히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소녀는 고개를 돌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저리 가. 너만 오면 항상 하던게 안 풀려."


이상하게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 꼬여버린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놈의 버릇.. 괜히 위로하러 갔다가 화만 더 나게 했구나 싶어 블러디는 그 자리를 빨리 뜨기로 했다.


"예이, 예이"


곧, 블러디가 자리에서 떠난 걸 확인한 소녀는 나직히 읊조렸다.


"예언대로밖에.. 예언대로밖에 할 수 없는 꼭두각시가.. 무슨 능력이 있다는거야.. 안될거란 걸 알면서도 모두를 몰아넣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떻게 될질 알면서도 몰아넣어야하니까. 미안하고 슬픈데.. 왜 자꾸 날 더 초라하게 만드는거야."


그래도, 생각을 밖으로 내뱉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소녀는 굳게 다짐했다.


"그러니까, 이 행성 만큼은.. 반드시 살려야 해."


소녀의 곁에서 꽤 멀리 떨어진 걸 확인한 청년은 지나가면서 읊조렸다.


"네가 없었으면 이 프로젝트는 예전에 실패했겠지.. 우리 모두는 널 의지할 수 밖에 없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봤다. 안그래도 빛이 바랜 세피아색 천장이, 오늘따라 왠지 더욱 바래보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넌 날 의지하면서 버텨나가.. 어린 소녀가 지기엔 너무나 큰 부담일테니까."

 

...............

...............


"그래서, 아를레키노 씨? 하고자 하는 말이 뭐죠?"


'아를레키노 씨'라고 불린 회색 머리의 단발 청년은, 바로 앞에 서 있는 베레모를 푹 눌러쓴 소녀에게 답했다.


"당신이 독자적으로 이 별의 신호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슈페리어 양."


'슈페리어 양'이라고 불린 소녀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청년은 이어서 질문하기를,


"그래서, 뭔가 성과는 있었나요?"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대답.


"당신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을텐데요."


이대로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은 청년은,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라는 말을 읊조리며,


"왕국기사단 제 32사단 단장, 샤를로트 핀 비에트리스 씨. 당신은 대체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겁니까?"


그 순간, 돌아서서 매섭게 노려보는 소녀..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체, 위에서 어떤 지시를 받은 겁니까?"


여전히 매섭게 노려보며 답하는 소녀.


"여기선 에델에서의 이름, 직위는 모두 비밀로 되어있을텐데요?"


"당신의 그 태도가, '전 아직 에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라는 걸로 보이는데 말이죠."


"이봐요, '조슈아' 씨. 지금 시비 거는건가요?"


"아아, 그렇게 들렸다면 실례. 그나저나,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나요?"


소녀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소모적인 물어뜯기는 그만하도록 하죠.."


청년도 당연하다는 듯, 그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별은, 주기적으로 어떤 신호를 자꾸만 우리들에게 보내고 있어요."


"흥미롭군요. 그 몇일간 몰래 움직이던 이유가 그거였나요."


그녀는 그 말에 조금 놀랐지만, 조금 생각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제 절 미행이라도 하셨나요?.. 그건 아무래도 좋아요. 여튼, 우리가 잠에서 딱 깨어나는 순간에 한가지 신호를 보내는데, 신호를 에델어의 패턴에 맞춰보니, 이런 메세지가 나왔어요.. 분명 무언가 뜻이 담겨있을 거에요."


이윽고, 바닥에 'origintkheeedyesiisslixsiisneotnorigin' 이라고 적는 그녀.


"이렇게 해 두면, 당신 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은 가끔이라도 생각해보겠죠. 하지만, 제가 굳이 이 말을 하는건, 당신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아를레키노 씨."


그 말을 들은 아를레키노의 태도가 상당히 온화해졌다.


"번지수는 제대로 찾으셨군요. 슈페리어 양. 한번 노력해보죠."


"아, 그리고.. 이건 제 예상인데.. 얼핏 보기엔 난해해보여도 정말로 저 안에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에요."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뒤돌아서서 잠시 생각하던 아를레키노는, 그녀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이후에 혹시 수신하게 될 신호에 대해서.. 뭐, 아직 추측 단계입니다만, 아마 신호에 특정 헤더가 계속 붙어있을겁니다. 그걸 중심으로 조사하면 되겠군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참조하도록 하죠."

 

 


발걸음을 옮기던 아를레키노는, 한곳을 계속 맴돌면서.. 한가지 의문에 대해 계속 파고들었다. 슈페리어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된 그녀의 미심쩍은 행동..


"그런데, 대체 뭘로 조사한거지..?"


교수랑 한바탕 싸우고 그녀가 향한 곳은 송수신 장치. 그리고, 그 후에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와서 누웠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래, 분명 그랬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선 저녁이 되어서야 자리에 돌아왔다. 누가 봐도 엄청 수상한 행동이었다. 마치 송수신 장치에 뭔가 중요한 정보라도 들어있거나, 혹은 누군가와 통신을 하고 온 듯한..


"설마..?"


그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내 추측이 맞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기에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송수신 장치'가 있는 방향으로.. 예상대로,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입이 금방 떨어지질 않는다. 직접 확인하고도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까지 쏘아붙일 필요가 없었는데.. 그래도, 직접 질문해서 확실히 해두자는 느낌으로 말을 걸었다.


"대체 이 별의 신호를 어떻게 잡아낸거죠?"


오자마자 다짜고짜 질문하는 무례한 녀석, 그녀는 웃었다. 생각해보면 아를레키노가 굳이 그렇게 그녀를 물어뜯을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었다. '에델'..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가 그녀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고, 그렇지 않다면 굳이 거기서 '에델'을 언급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거나, 아니면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걸어온 거겠지.. 뱅뱅 돌릴 필요 없이, 그가 가장 듣고싶어 할 정답을 말해주기로 했다.


"주파수를 좀 조율했죠. '테시스'에 맞게."


보란듯이 옆으로 슬쩍 비켜주는 슈페리어, 그녀의 옆엔 지난번 오바드가 고쳐놓은 송수신 장치가 놓여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를레키노가 침묵을 깼다.


"제가 그것도 깨닫지 못했다니, 생각이 많이 짧았군요."


그 말에 그녀는 화답했다.


"가끔은 통찰력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이죠."


"변했군요, 슈페리어 양."


"변해야죠. 테시스에 맞게. 이젠 이곳이 우리들의 새로운 땅이니까요."

 

 


아를레키노는 걸으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한가지 공통점으로 모인 자들, '아티팩터'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사람들이.. '테시스'라는 같은 별에서, '발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 역시 처음부터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이 한달간, 아니 어쩌면 더 길게 흘렀을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각자 이 별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그런데 나는 지금 뭐하는걸까. 이 역시 시나리오중의 하나가 아닐까 의심이나 하고..'


'그나마 슈페리어가 도와달라 해서 망정이지 옆에서 보면 정말 할 게 없어서 맴도는 사람으로밖에 안보였을 것 아닌가.. 되돌아보면 '테시스'에 도착한 뒤 정작 난 뭘 했지?'


"이젠 저도, '테시스'에 맞게.. 변해야겠군요. 당신들이 그걸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런건 이제 상관없습니다. 저도 이제 '테시스'를 위해 움직일겁니다."


지금도 열심히 송수신 장치로 신호를 읽어들이면서 꾸준히 노트하는 그녀를 멀리서 돌아보며, 아를레키노는 나직히 읊조렸다.


"에델은 원류(元流)가 아니다.. 설마했지만, 그게 사실이었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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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생각나서 하나 또 께적여봤습니다.

쓰다 만 내용에 살을 붙여서 이렇게 또 올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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