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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머지 않아 그곳으로 떠날거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에게 남겨진 유예의 시간도,
우리에게 남겨진 후회의 시간도…
이제 우리는 그곳으로 떠날거야.
우리를 인도해줄 방주를 타고…"
"미래에서 온 편지?"
눈 속에 파묻혀진 채로 있다가 눈사람이 되다시피해서 온 막시민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 뒤에 꺼낸 첫 말이다.
"응, 달랑 봉투랑 그 안에 내용물만 들어있는 편지."
"거기에다 발신자는 고사하더라도 수신자마저 써있지 않았다?"
"응."
막시민의 말에 바로 단답으로 대답한 조슈아는 그 뒤에 얼른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이 내용에 딱히 수신자는 정해있지 않은 것 같은…"
"이 멍청아! 그 딴 종이 쪼가리는 어디서 구해와가지고 헛소리를 지껄여? 안그래도 그 잘난 레오멘티스 교수가 눈 치우기 같은 걸 강제로 시켜서 이 혹한의 날씨에서 죽어라 고생하며 눈을 치우고 왔더니, 오자마자 또 왠 이해하기 힘든 소릴 하고 있어?!"
쿵, 우지끈!
막시민은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세차게 자신의 한쪽 발을 디딘 의자가 밑이 불안한 나무 의자인줄도 모르고 발을 놀리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후에 부러진 의자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은 후에 다시 장활한 연설을 시작했다.
"자, 모두 침착하게 생각해봐. 저 편지는 발신자는 물론이고 수신자는 없어. 그리고 편지의 제목부터가 우습게도 미래에서 온 편지야. 그런데 그 어디서 굴러들어온 편지를 저 회색 고양이 녀석이 주워서 편지를 읽었지. 그런데 그 내용도 참 거지같은게… 뭐? 이 편지를 읽은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기에 미래에 올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장난해? 그럼 이 편지를 이 학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읽게 시키면 모두가 미래로 갈 수 있다는거야 뭐야 지금? 애초에 미래에 갈 수 있다는 전제부터가 잘못 된 거야. 미래에 갈 수 있는게 이 편지 한 장으로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잖아? 게다가 이건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시간을. 이런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어떻게 우리가 거스를 수 있지? 이 세상의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온다 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물론 그 불가능하다는 일을 어떤 한 친구놈 때문에 수도 없이 겪어봤긴 했지만… 만약 정말 이 편지가 너한테 온 편지이고 이 편지의 내용 또한 사실이라면 이 편지의 수신자는 셋 중 하나야. ** 마법사이거나, 아니면 정말 뛰어난 마법사이거나. 아니면 정말 ** 사람이거나! 니 그 똑똑한 머리로 이 셋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사실상 어느 가능성이 더 높겠냐?"
막시민이 장활하게 늘여놓는 말을 듣기 지루했던 티치엘은 부러진 의자를 마법으로 다시 원래 상태로 고친 후에 그 의자에 앉아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눈이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루시안과 보리스는 미래에서 왔다는 그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만약 미래로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 지에 대해 루시안이 신나게 얘기를 해댔고, 조슈아는 어렸을 적의 추억을 회상하며 막시민의 긴 연설을 가만히 들으며 있었다.
"… 거짓일 가능성."
"그럼 대체 왜 이 편지를 가져와서 우리한테 보여준건데?! 게다가 보여주면서 한다는 그 첫 마디가 제일 웃겨, 뭐? 미래로 가지 않을래? 너 정말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있는 놈이기는 하는거냐? 잘 들어, 미래란 정말 우리 머릿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거라고. 예를 들어 현재의 니가 네냐플에 있어. 그런데 미래의 너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네냐플에 계속 남아있을 너, 네냐플을 떠난 너, 켈티카에 있는 너, 페리윙클에 있는 너, 이 수많은 미래들 중에 과연 우리가 갈 미래는 어디일까?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절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막시민이 더 긴 연설을 하기 전, 조슈아가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막시민은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다.
"… 그런데 막시민, 너 점점 쥬스피앙 씨 닮아간다?"
눈이 내린 후에 우거진 하얀 숲 속에 흩어져 내리는 시냇물들. 그 시냇물들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에 끼어있던 눈들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곱게 쌓인 눈밭에 남겨진 작은 발자국은 좁은 폭으로 한 곳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 저곳이 네냐플."
두꺼운 외투를 두르고 있는 작은 몸집의 소녀가 외투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가려진 얼굴로 하
얀 숲 너머에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편지… 받았겠지?"
소녀는 약간 자신없는 듯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옷깃을 여민 후에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마가렛, 난 아직 당신이 무얼 할 지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단지 당신이 걷는 그 길이 옳은 길이기를 바랄 뿐이에요.'
소녀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에 있는 나무 하나를 잡아 등을 기댄 후에 품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 … 휘리릭.
소녀가 손목을 이용해 손을 몇 번 돌리자, 마술을 부리는 듯이 손에서 갑자기 펜이 나왔다. 소녀는 그 펜으로 종이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슥, 슥, 슥….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소녀가 지금까지 밟아왔던 발자국들도 모조리 덮어버릴 만큼 수많은 눈이 내리고, 쌓였다.
저 많은 눈들도 어느 한순간에 녹아내려버리겠지.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겠지…
소녀는 편지를 다 쓰고 편지를 반으로 접고 봉투 속에 넣었다. 소녀는 봉투를 꾸욱, 누른 후에 다시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인 후에 편지를 손 위에 세로로 세운 후에 다른 한 쪽 손으로 편지의 위쪽을 아래로 박수 치듯이 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편지는 손 위에 있지 않았고 숲에는 커다란 박수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짧은 보폭의 걸음으로 서둘로 발을 옮겼다.
"얼른 가야해, 시간이 별로 남아있질 않으니까.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할 시간마저 별로 남아있질 않으니까…"
편지 봉투는 뜯겨진 채 휴지통에 버려져 있었다.
봉투의 내용물은 조슈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슈아는 편지를 천천히 접으며 말했다.
"이 편지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하지만 이 편지의 내용에는 이 편지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나와있단 말이지?"
조슈아는 말을 하면서 다 접은 편지를 티치엘에게 건넸다. 티치엘은 편지를 펼쳐서 손으로 편지 내용의 위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려가더니, 이윽고 한 부분에서 손가락을 멈추었다.
"… 밑 부분에 적은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온다…고?"
티치엘이 말을 마치고 보리스에게 편지를 건네고, 보리스는 편지를 티치엘의 손에서 가져간 후에 다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읽었다.
"… 오늘, 낮."
막시민은 아까 조슈아가 한 말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잠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천천히 자기성찰을 살피고 있엇다.
"어? 그러면 곧 우리를 미래로 데리러 온단 말이야?"
보리스는 침착하게 편지를 들고 말했다.
"어째서 우리가 미래에 가야하지? 그럴 이유가 없잖아? 만약 그 사람이 와서 나에게 미래로 가라고 하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겠어. 만약 이 편지가 사실이라면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어느 정도의 목적이 있어서 우리에게 이런 편지를 썼겠지."
보리스가 편지를 티치엘에게 다시 건네고서는 벽에 등을 기댄 후에 다시 말했다.
"우리가 미래에 가서 무얼 한단 말이지? 미래로 가 현재를 바꾸기라도 한다는 건가? 어처피 우리가 미래에서 무슨 짓을 하던지 현재는 바뀌지 않을텐데 말이야."
조슈아가 보리스의 말을 이어 받아 말했다.
"여기 알 수 있는 점, 이 편지의 작성자가 원하는 목적은 하나. 우리가 미래로 가서 미래를 바꾸어 주는 것. 고로 이 편지의 작성자는 미래와 관련이 있는 인물. 뭐, 사실상 거짓이라면 모두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말이야."
조슈아의 장난 어린 말에 어느 사이에 정신을 차린 막시민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딴 편지가 사실일 것이라고 가정을 하는건데? 이건 분명히 다른 빌라 녀석들이 우리를 놀리기 위해서 보낸 편지인게 분명하다고! 이런 놀음에 장단 맞춰주는 꼴이라니, 참나 웃기지도 않네."
조슈아가 무어라 반박하려고 말을 하려 하자 티치엘이 다시 한 번 편지 내용을 쭈욱 훑다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막시민 아니야…"
"응? 뭐가 말이야?"
티치엘은 편지에 가만히 손을 얹은 후에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조슈아는 티치엘이 고대 가나폴리 어를 읽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소리가 그러했다.
"테 헤르 세이르 마 느로…"
티치엘은 잠시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더니, 잠시 후에 무언가에 놀란 듯, 급하게 손을 종이에서 떼어 힘없이 뒷걸음질을 하다가 벽에 기댄 보리스와 부딪혔다.
"아, 미, 미안해…"
"무슨 일이야?"
"그게… 이 편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
티치엘의 말에 막시민이 반박했다.
"아니 다들 왜 그러는데? 이 장난같지도 않은 편지가 왜 모두 사실이라는 것으로 단정짓는건데? 누가 나 좀 이해시켜 주라고! 그리고 조슈아, 만약 이 편지가 거짓이라면 지금까지 날 우롱한 죄로 너부터 주먹을 날려주겠어."
티치엘이 막시민에게 다가가 막시민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흥분 가라앉혀, 아무도 니 말을 듣지 않아줘서 화난거지? 물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이 편지는 가짜가 확실하겠지. 그런데 이 편지에 쓰여있는 글자들을 가까이서 봐바."
티치엘의 말에 막시민은 티치엘에게서 다시 편지를 가져간 후에 안경을 벗고 눈과 종이를 밀착하디 시피하여 보았다.
"… 뭐지? 이 문자는?"
막시민은 한 손으로 눈을 비빈 후에 다시 편지를 바라보았다. 보였다.
"그건 고대 가나폴리 어야, 우리가 아는 글씨 속에 가나폴리어를 정교하게 넣어 썼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야. 아직 나도 첫번째 줄밖에 해석하지 못했지만…"
티치엘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칠흑같은 어둠이 방 전체를 감쌌다. 그 어둠 속에서는 서로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리스!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이건… 그 때 느낌과 비슷해."
"… 켈스."
"야 이게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왜 멀쩡한 방이 까맣게 변하는건데? 장난칠 생각이라면 당장 그만둬!"
"아아, 이건… 모두 이쪽으로 모여!"
마지막으로 외친 티치엘의 목소리에 모두가 티치엘 근처로 모였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티치엘? 갑자기 방이 모두 깜깜해졌어!"
"루시안, 설명하자면 좀 기니까 일단 내가 만드는 원 안에 들어가."
티치엘은 급하게 수인을 그려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원이 검은 바닥에 새겨지게 했다.
"자, 어서!"
막시민이 제일 먼저 반신반의하면서 원 안에 발을 집어넣었다.
"아니 이 좁은 원에 이 인원이 어떻게 다 들어…"
"어, 막시민?"
막시민이 원 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져버렸다.
"그럼 이번엔 내가 가지."
보리스도 막시민을 뒤따라 원 안으로 발을 옮겼고, 똑같이 사라졌다. 루시안이 이게 무슨 일이지, 하
고 영문을 모르고 있을 때, 조슈아는 잠시 티치엘의 눈치를 살피더니 루시안을 붙잡고 같이 원으로
향해갔다.
"자, 루시안 얼른 가자. 보니까 시간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어어? 그ㄹ…"
이윽고 모두가 원 속으로 사라지고 어둠 속에는 티치엘만 남아있었다.
"… 그가 오고 있어."
티치엘은 잠시 눈을 감고 수차례 주문을 외더니, 모두가 들어간 원 주위에 다시 원을 만들고 그 원의
바깥을 두르는 원을 또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티치엘은 자신의 발을 원 한 가운데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두움이 가득 찬 방, 그 속에 스며들어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들은?"
늙은 노인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린 후에 다른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이번에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였다.
"한 마법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계를 친 걸로 보아서는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습니다."
또박또박 들려오는 목소리 뒤에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결계를 뚫고 사방을 포위해라. 그들이 벗어나게 해선 안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사내의 목소리가 있은 지 얼마 간에 시간이 지난 후, 어두움이 가득 찬 그 방에는 노인의 독백이 메아
리 쳐 울렸다.
"어서 그들의 코어를 찾아야 한다. 그들이 가진 그 코어만이 나를 에덴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야…"
"… 어서 가야돼."
바깥에서 보이는 네냐플 학생들의 빌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안해보였다. 그러나 소녀는 자꾸만 그
빌라를 보고 안절부절했다.
"그들이, 그들이 위험해. 어서 가야만 해."
소녀는 다시 두건을 눌러쓰고 빌라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하늘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이….
소녀는 어쩌면, 저 눈이 절대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눈이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곳
을 가득 채워 사라지게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이 곳에 또 다른 누군가가 발자국을 채워줄거야, 내 발자국을 대신할 누군가가.'
눈 내리는 네냐플의 정원은 켈티카에 사는 귀족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뽐내었다. 정원수에 쌓여있는
눈들이 시들어버린 나뭇잎에 다시금 새 활기를 채워주고 있었고, 원래 나무들이 가지고 있었던 아름
다움에 눈의 아름다움이 더해져 있는 정원수이 나무들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소녀가 있었
던 곳의 발자국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눈이 내리고, 또 눈이 내리고,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그러나 발자국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내리는 지
도 모른다. 움푹 파여있는 그 발자국을 채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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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당... 봐주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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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아샤른2013.01.14잘보고 가겠습니다 ㅎㅎ 다음편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