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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검술 학원 네냐플 Chapter 1. 네냐플의 살인귀 (3)
1
“심심해.”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진 루시안의 대사였다.
“배도 고파.”
조슈아의 대사. 도토리 빌라 군단은 단체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식사 시간이 지났다고 쫓아내는 주방장 앞에서 루시안은 까짓거 밖에 나가서 사먹자며 당당하게 식당을 나왔다. 세 사람은 칼츠 상단 후계자의 자본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군소리 없이 빌라로 돌아왔다. 하지만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루시안은 울상이 되었다.
‘저기, 나 이번 주 용돈 다 썼나봐.’
그리하여 네 사람은 고픈 배를 움켜쥐고 다음 식사 시간만을 기다리며 빌라에 틀어박히게 된 것이었다.
“너, 일주일 용돈이 얼마냐?”
막시민의 물음에 루시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여기 오면 돈쓸 일 없다고 많이 줄었는데… 한 500엘소? 내일이면 바나나가 가지고 올 거야.”
“도대체가, 일주일 만에 500엘소를 다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막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배가 고팠지만 신기하게도 잠이 왔다.
“막시민은 진짜 잘 자는구나. 티치엘한테서 잠자는 마법이라도 배운 거 아닐까?”
“그런 거 없어도 막군은 원래 잘 잤어.”
“그렇구나…. 아, 우리 오늘 막군이랑 같이 티치엘 수업 들을까? 호이오크 교수님도 재밌지만 티치엘이라면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줄 것 같아.”
“그건 안 돼.” 보리스가 말했다.
“왜?”
루시안이 되묻자, 조슈아가 대답해 주었다.
“아까 오는 길에 티치엘 만났었잖아. 티치엘이 아는 선배가 다쳐서 병문안 가야 된다고 오늘 수업 없다고 그랬어. 우린 다 들었는데, 루시안은 뭐 먹을까 하고 고민하느라 못 봤구나?”
“응. 로글랑탱 아줌마네 파이도 괜찮고 어제 갔던 그 술집도 괜찮겠더라구. 아침부터 술 마시자는 건 아니고, 거기 안주도 꽤 맛있었잖아? 그러니까 거기 가서 안주만 시키면 될 것 같아서. 그치만 술집에 가서 술은 안 마시고 안주만 먹으면 좀 그래서 술도 조금만 시킬까 생각도 해 봤는데 역시 무리겠지? 그런데 일반 식당도 마음에 드는 곳이 너무 많더라구. ‘7번가 밀가루 빈대떡’이라던가 ‘네냐플 네냐플’이라던가. ‘악어백 스테이크 하우스’도 있고. 해산물이라면 ‘야무진 킹크랩’도 되게 유명해. 집에 있을 때 자주 외식하러 갔는데 이 앞에도 있더라구. 아버지 말로는 체인점이라나 뭐라나. 그런 큰 식당들은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모양이야. 아아아아아악—! 식당 얘기를 하니깐 더 배고파졌어!”
루시안이 머리를 감싸쥐고 절규했다. 조슈아는 루시안의 마지막 말에 깊이 공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든 자는 말이 없었고, 원래 말이 없던 자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문득 여기 올 때 돈도 넉넉하게 챙겨서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학원 생활이 아니라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던 조슈아는 괜히 짐만 늘어날까 돈은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쩝, 아쉬운데’하고 입맛을 다시던 그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는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일어났다.
“루시안, 너 어제까진 분명히 돈 많았지? 5엘소짜리 금화가 주머니 가득 남았다고 우릴 술집으로 끌고 간 것도 너였잖아! 기억 안 나?
“응…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술집에서 뭘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 뭐 그래봤자 술만 마셨겠지만. 참, 조슈아는 기억나? 너 기억력 되게 좋잖아.”
“내가 본 것에 한해서. 네가 술에 취해서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막군이 너한테 술값을 몰아주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갔었거든? 그런데 네가 알았다고 금화 주머니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는데 주둥이가 열리는 바람에 금화 몇 개가 굴러나왔었어. 어디보자, 밖으로 나온 게 네 개였고 주머니 안에 남아 있던 게 하나 둘 셋…쉰다섯 개였으니까 총 295엘소가 있었다는 얘긴데…. 우리가 어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었나? 우리 술값에다 막군 외상까지 다 합쳐도 그 정도는 안 될 텐데? 나 루시안이 계산하는 모습은 못 봐서 그 다음은 전혀 모르겠어.”
“아우… 그러니까 계산대에서 계산을 할 때까진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어. 술값이 얼마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다음에 계산대 위에 놓인 박하사탕을 먹었고, 그게 맛있어서 너희들 것까지 이만큼 챙겨서 나왔지!”
루시안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두 팔을 쭉 펼쳤다.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던 조슈아도 킥킥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루시안이 사탕을 두 손 가득 들고 뛰어오면서 비틀거릴 때마다 조금씩 흘려서 길바닥에 박하사탕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지.”
그 순간 보리스가 조슈아의 팔을 잡았다. 그가 워낙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통에, 조슈아는 흠칫 놀랐다.
“다시 말해 봐.”
“으, 응? 박하사탕들이 굴러다녔다고….”
“그거 말고 그 앞에.”
“그야 루시안이 박하사탕을 두 손 가득 들고 달려….”
거기까지 말한 조슈아도 갑자기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사람은—태평하게 늘어져 자는 막시민을 제외하면—루시안 뿐이었다. 그가 왜 그러느냐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자, 보리스가 물었다.
“루시안 너, 박하사탕을 먹을 때 돈주머니는 어디에 뒀지?”
“당연히 계산대 위에 뒀지! 그리고 박하사탕을 이만큼….”
이제는 루시안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리스는 의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들었고, 조슈아는 막시민의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막군, 일어나 막구우우운! 우리 어제 그 술집에 가야 돼! 지금 당장!”
“돈 없으면 나 깨우지 마, 이 까마귀가 쪼다 만 썩…”
“으아아아아악! 내 돈! 그걸 찾아야 밥 먹을 수 있어! 배고파 미치겠다구!” 쫓아들어온 루시안이 울부짖는 바람에 막시민의 나머지 말은 도로 삼켜지고 말았다.
2
도토리 빌라 군단이 요란하게 기숙사를 빠져나간 직후, 상급생 네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도토리 빌라를 향해 다가왔다. 선두에 선 건장한 체격의 상급생이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로네르, 문 열어. 파이는 나랑 요제프게 들고 들어갈 테니깐 루카 네가 망 봐. 신호는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교수님이면 두 번, 그 녀석들이면 한 번, 나머지는 세 번. 어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카는 주근깨투성이의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이고는 복도 모퉁이로 쪼르르 달려가 망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르로이는 요제프에게 눈짓을 주며 파이 봉지를 집어들었다. 상급생이 되어서 신입생들과의 빌라 전쟁에 너무 목을 매는 것 아니냐고 동급생들에게 핀잔까지 받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 빌라 전쟁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네냐플에 입학한 이래 몇 차례의 전쟁을 겪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상대는 없었다. 간단한 마법을 쓴 허니 레몬 잼으로 선전포고를 해 놨더니 도리어 크림 차 빌라를 파이 범벅으로 만들어 놓은 녀석들이었다. 예전 수법은 티치엘인가 뭔가 하는 마법사 소녀 때문에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당했던 그대로 되갚아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 도토리 녀석들, 우리 빌라엔 어떻게 들어온 거지? 우리처럼 신입생 시절에 복사해둔 열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장장이가 아니고서야 우리 빌라 자물쇠를 따기는 쉽지 않을 텐데.”
로네르가 도토리 빌라의 문을 밀치며 말했다. 그도 신입생이었을 때는 도토리 빌라를 썼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기숙사 생활에 마법 수업까지, 낯설고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지만 정말 즐거웠…
퍼억!
벽 한가운데 보기 좋게 명중한 파이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깜짝 놀란 로네르가 뒤를 돌아보자 르로이는 벌써 두 번째의 파이를 집어들고 있었다. 정식 대결도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물으려던 로네르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뒤로 물러나 있던 요제프까지 합세하여 도토리 빌라에는 이내 엄청난 양의 파이 가루가 휘날렸다.
“야, 뭐 하나만 묻자.” 로네르가 말했다. 요제프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로 파이들을 던졌다.
“뭔데?”
“왜 네 이름은 조제프가 아니라 요제프인 거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요제프는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로네르는 조금 민망해졌는지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 웃지 마. 나도 나름 진지하게 물어본 거란 말이야.”
요제프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제프였으면, 어땠을까?”
이번에 당황한 쪽은 로네르였다. 애당초 벽난로를 노리던 파이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다른 파이를 집어들었다. 팔을 어깨 뒤로 쭉 뺐다가 있는 힘껏 뿌린 파이가 곧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벽난로에 명중했다.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야. 대신에 나는 너에게 왜 네 이름은 요제프가 아니라 조제프냐고 물었겠지.”
요제프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아까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경쾌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로네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너 말이야….”
덜컹—!
빌라 전체에 육중한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제프와 로네르는 물론 파이 던지기에 여념이 없던 르로이까지도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도토리 빌라 안을 훑어보던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들이 알고 있던 도토리 빌라의 모습과 유일하게 다른 곳을 발견한 순간, 노크도 없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루카? 내가 망 보고 있으라고 했잖아.”
현관 쪽을 쳐다본 르로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뒤이어 고개를 돌린 로네르와 요제프도 마찬가지였다.
“안녕?”
그는 루카보다 한 뼘 반 정도는 더 컸다. 그는 신발도 벗지 않는 채로 거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팔에 들려 있던 것이 질질 끌려오다 현관 바닥과 거실 바닥의 경계에 걸려 터억,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손을 놓자, ‘그것’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 누구야?”
3
“그래서, 이제 만족하냐 이 까마귀가 쪼다 만 썩은 살구 녀석들아!”
“그래도 밥 맛있게 먹었잖아….” “솔직히 막군이 가장 많이 먹었어.”
까마귀가 쪼다 만 썩은 살구 녀석들—루시안과 조슈아—이 입을 모아 투덜거렸다.
루시안의 돈은 다행히 술집 주인이 잘 보관하고 있었다. 주인은 다음부터는 금화를 주머니째 들고 다니는 행동은 자제하라며 돈을 돌려주었다. 한 푼도 빠짐없이. 루시안이 사례를 하겠답시고 금화 몇 닢을 내밀었지만 그는 기어코 받지 않았다. 대신에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아저씨, 보기보다 부자인가 봐! 돈을 안 받겠다고 하는 거 봤어?”
“꼭 부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럼 뭔데?”
루시안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대답해 주려던 보리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의아하게 여긴 세 사람이 보리스 곁으로 다가왔을 때,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보리스? 너 괜찮아?”
비릿하면서도 씁쓸한 향이 공기 중에서 방울방울 배어나왔다. 보리스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등 뒤로 뻗어 윈터러를 감싼 천을 잡았다. 그가 너무 일찍 깨달아버리고 또 너무 가까이서 느껴버린—피 냄새. 그것을 맡은 윈터러의 망령들이 흥분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보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르 부여잡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보리스! 너 갑자기 왜 그…우아아악!”
루시안이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쿠당탕,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보리스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결국 전부 피투성이가 될 거야! 친구들도, 너의 그 소녀도!’
‘그들을 네 숙명의 제물로 바치고 나면, 너의 곁에는 누가 남지?’
‘넌 영원히 혼자야, 혼자라구! 크하하하하핫하!’
“**! 닥치지 않으면 닥치게 만들겠어!”
보리스는 망령들의 목소리를 떨쳐내려 애쓰며 현관문을 거칠게 잡아당겨 열었다. 보리스도, 망령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모퉁이에서 현관까지 끌려간 듯한 흔적을 보고 짐작은 했었지만 결코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던 장면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녀석들, 아는 얼굴이지?”
어느샌가 따라온 막시민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거실 안에 널브러진 네 구의 시체들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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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는 네냐플입니다.
그동안 졸업했다고 계속 붕 떠있어서 글쓰기를 팽개쳐놓고 있었네요.
크림 차 빌라 아이들, 아쉽지만 첫 등장에 모두 사망하셨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나름 훈훈한 분위기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루카같은 캐릭터 참 귀엽고 좋은데,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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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에넬루인2014.02.05악어백 스테이크 하우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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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Irane2012.02.24우왕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룬의 아이들같아요.. 전민희 작가님이 직접 쓰신 것같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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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냐플 IceStream2012.02.15악어백 스테이크 하우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리스님 센스쟁이! 님 소설 완전 기대해요 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