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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자취도 남겨두지 않고 롱소드 굿나이트는 그렇게 클로에의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그녀를 농락하는 광대처럼, 롱소드는 클로에에게 많은 물음을 던지고 갔다.
클로에의 머릿속을 맴돌던 고민들의 ***이자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 롱소드는
무책임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정도로 '귀족 클로에'의 마음을 공허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롱소드가 '무책임'하게 던지고 간 홀 을 손에 쥐고 있었다.
클로에의 시선은 그녀도 알게 모르게 어느덧 그 홀에 집중하고 있었다.
" 이깟 쓸모없는 홀이나 던져주고 가다니 ... 무엇보다 상인이라면 돈을 받아야 하는것 아니겠는가. 그 롱소드인가 뭔가 하는 일개 모험자는 상인으로서의 예도 모르는 ... 말 그대로 일개 모험자일뿐. "
확신에 찬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던 클로에의 눈동자는 그녀의 목소리와는 달리 심하게 떨고 있었다.
" 하지만 ... 그는 보란듯이 원소를 파멸했다 ... 일반 사람이라면 할수 없는 ... "
클로에가 더욱 더 불안하지만 깊은 눈빛을 보였다.
" 무엇보다 남에게 말한적 없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는 알고 있었다 ... 그것도 훤히 꿰뚫고 있는것 처럼 ... "
클로에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 의미심장한 홀에다가 ... 갑작스러운 광대의 등장 ... 모든것이 우연의 일치라 치고는 ... 심히 섬세하군. "
클로에가 이해할수 없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 길들여지는 고양이처럼 ... 혹은 모험을 떠나는 당찬 귀족처럼 ... 훗 ... 재미있는 질문이군. "
클로에가 기쁨을 띄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뒤, 아무렇지 않은듯 정원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녀를 둘러싼 꽃들과 아름다운 나무들은 마치 서서히 사라지는것처럼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오직 결의에 가득찬, 하지만 웃음으로 그것을 숨긴 귀족만이 보일뿐이였다.
클로에는 이내 정원을 빠져나가 대저택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미지의 공간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공허하지만 가득찬 곳 같은 미지의 공간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그대가 원하는 귀족 공녀로군 ... 정말 조화가 되지 않는 화음이겠군. "
비아누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 겉은 차갑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따스한 소녀라고 봐주는게 더 좋을듯 하군. "
남성의 목소리가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귀족으로써의 권위와 자부심에 그녀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까 .. ? "
비아누가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 귀족이기에 그 누구보다 강하고 흔들리지 않겠지 ... "
남성 역시 조용히 말했다.
" 흠 ... 그나저나 묘족 마을은 곧 파괴 되겠군 ... 안타까워 ... "
비아누가 애처롭듯이 말했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만든 마법진은 묘족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이내 묘족 마을의 어딘가에서 깨지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깨웠고,
움집 모양의 집들은 그런 소리에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움집 속에 숨어있던 한 소녀와 그 소녀의 언니와 족장의 할머니만이 이 소리를 들었다.
" 벌써 ... 공격이 시작되려는건가 ... "
묘족의 할머니가 희망도,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 ... 어서 피하셔야겠습니다. 묘족의 정신적 지주인 족장님을 지키는 것은 저희 묘족의 임무 ... 얼른 준비하도록 ... "
족장 할머니가 소녀의 언니의 말을 끊었다.
" ... 지금은 그 때가 아니군 ... "
슬픔이 서려있는 목소리로 족장이 말했다.
" 하지만 .. ! "
소녀의 언니가 이해할수 없다는듯 소리쳤다.
" 하하 ... 얼른 가서 싸우게 ... 모든 것이 다 준비 되어 있다네 ... "
족장이 마치 마지막이라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밖에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갑자기 들렸고, 제법 나이가 있는 듯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려 왔다.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소녀의 언니는 다급히 움집의 천막을 젖히고 나갔다.
평화로운 밤에 고요히 잠을 자던 묘족 마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움집들은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보자기 속 아이들은 알지 못할 검은 형체들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성인들은 단검과 쌍 칼을 이용하여 검은 형체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표창과 수리검을 던지고 있었다.
평화롭던 묘족 마을은 대 혼란에 빠져 있었다.
" ... 나야트레이! "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묘족의 여인이 눈을 갑자기 동그랗게 뜨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녀가 달려간 곳에는 연기에 눈을 뜨지 못한채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연기에서 벗어나려 하는
한 소녀가 있었다.
" 나야트레이! 조금만 기다려, 구해줄게! "
여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리고는 아직 타지 않은 나무 기둥의 벽을 차오르더니, 소녀가 있는 불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 괜찮니? 이제 괜찮아 ... "
여인이 소녀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하지만 불길은 그 어느때보다 빨리 치솟고 있었다.
여인이 뛰어 넘어왔던 나무 기둥은 이미 불에타고 있었고 더 이상 나갈 공간은 없었다.
불길은 점점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 이런 ... "
여인이 말했다.
" ... 언 ... 언니 ... 나한테 ... 바람의 ... "
연기에 질식해있던 어린 소녀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녀의 말을 들은 그 소녀의 언니는 다급히 그녀의 주머니를 뒤졌다.
이내 그녀는 바람이 갇힌것 같은 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선 급하게 뚜껑을 열고서 불을 향해 병을 흔들었다.
병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한 바람이 불어 나오더니, 다가오던 불길의 길을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불길은 이내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소녀의 여인은 기회를 틈타 얼른 불을 풀쩍 뛰어넘었다.
" 이제 됐어 ... 나야 ... "
여인이 말을 마치지도 않고선 말을 멈추었다.
" 언 ... 니 ... "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소녀가 조용히 언니를 불렀다.
" ... "
여인은 아무 말도 잇지 못한채 조용히 동생을 들고 있었다.
" 언 .. 니 .. ? 왜 그래 ... ? "
소녀가 서서히 눈을 뜨면서 말했다.
" ...나야 ... 살... 아야 ... 해 ... "
소녀의 언니가 동생을 천천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 도 ... 망 ... 가 .... "
소녀의 언니가 천천히 입에서 붉은 무언가를 흘렸다.
붉은 피는 곧, 그녀가 안고 있던 소녀의 옷에 묻었다.
언니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녀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소녀의 언니 뒤에는 날카로운 검은 검이 아무말 없이 꽂혀있었다.
" ... 잊지 말고 ... 도망 .... 쳐 ... "
소녀의 언니가 희미한 미소를 소녀를 향해 지었다.
" 언니 ... ! "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소녀의 눈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소녀의 언니가 불을 끌 때 쓴 병을 그녀를 향해 천천히 마개를 열었다.
소녀는 강한 바람을 타고선 멀리, 어딘가 어두운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소녀의 언니는 홀로 서서히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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