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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가 벤야와 헤어지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올 무렵에 루시안과 티치엘은 고초를 겪고 있었다.
다름아닌 밀라 네브라스카, 소위 여왕님이라 칭해지는 소녀 때문이었다.
"내가...분명히 말했을 텐데. 비.키.라.고. 말이야?"
"후에에...그, 그러니까..."
"어어..그렇지만...당신도 복도를 뛰어다녔으니까 잘한 건 아니잖아요."
"뭐라~? '당신'~? 감히 나 '밀라 네브라스카'님을 감히 다~앙신~?"
"밀라..네브라스카? 당신 이름이에요? 난 루시안 칼츠라고 해요. 그런데 그 이름...아니, '네브라스카'라는 이름...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요."
"시끄러워, 꼬맹아."
왠지 화가 잔뜩 난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채찍을 꺼내 들고 한 번 휘둘렀다.
가죽이 휘둘러질 때의 날카로운 바람과 그런 가죽이 바닥에 부딪치며 내는 파공음은 겁 많은 티치엘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아무리 명랑한 루시안이라도 겁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흐...흐에엥....!!"
"채..채찍..."
"감히...!"
"감히 신성한 교내 기숙사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를 휘두르다니...쫒겨나고 싶습니까, 밀라 네브라스카?"
밀라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시 채찍을 내리치려는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간섭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루시안과 티치엘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키가 보리스보다 10cm는 더 커보이는 붉은 장발의 남자가 당당히 서 있었다.
그의 입술은 분명히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의 빛나는 금안은 어딘가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에...루시안과 티치엘은 두 번째로 겁을 집어먹었다.
"크윽...너, 너어..!!"
"하아...밀라 네브라스카. 저도 명색이 이 네냐플의 선생이랍니다. 경어를 사용하는 것까진 상관없지만 호칭만은 정정해주세요."
"시끄러워!!"
밀라의 채찍이 다시한 번 허공을 가르고 선생이라고 밝힌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얼핏 보기에 밀라의 공격은 정통으로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쯧..연습을 게을리 하셨군요. 채찍도 검도, 창도 지팡이도..휘두르는 것은 완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이렇게 쉽게 잡히는 거라면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없어요."
"시벨린, 이 자식!!!"
"그리고 그 언행...이름으로 불러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 뒤의 발언은...여학생이 하기엔 좀 거친 언행이네요."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야!"
"잊었습니까? 당신이 이 네냐플에 있는 한, 당신은 어디까지나 나의 학생이랍니다."
"..."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지요? 밀라는 네냐플 내에서는 '여왕님'이라 불릴 정도로 강하고 또 그만한 리더쉽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프라이드도 강한 편이죠. 오죽하면 절 제외한 선생님들은 웬만하면 밀라의 행동을 제지하려 하지 않거든요."
"아..네.."
갑자기 말을 걸었기에 놀란 루시안에게서는 어벙벙한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작게 웃은 시벨린이란 이름의 선생은 루시안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시 밀라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 아이들은 신입생인 것 같아요. 당신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그러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설마하니 명색이 네냐플의 여왕님인데 이 정도의 관대함은 가지고 계시겠지요?"
"...쳇."
"그런데 당신들은 왜 여기 있지요? 이 쪽은 2학년들이 쓰는 기숙사랍니다."
"엑, 2학년이요? 아..저는 그..티치엘이 기숙사를 못 찾겠다고 그래서..찾아주려고 하다가요..."
"티치엘...? 흐음..티치엘 쥬스피앙이 저 소녀로군요? 그럼 당신은?"
"루시안 칼츠요."
"아아, 방이라면 제가 외우고 있답니다. 저는 검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동시에 기숙사의 담당을 맡고 있어서 재학생은 물론 신입생들의 기숙사 목록까지 외워야 했거든요."
"헉..."
'그, 그 많은 분량을 모조리 외우고 다닌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동시에 밀라와 루시안, 티치엘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흐음..루시안 칼츠...분명 보리스 진네만, 란지에 로젠크란츠, 막시민 리프크네와 한 방이었죠?"
"아, 네!"
"그리고 티치엘 쥬스피앙. 아마 샤를로트 비에트리스 드 오를란느와 세티리아, 그리고 나야트레이...와 같은 방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야트레이? 티치엘은 세티리아랑 이스핀..그러니까 샤를로트밖에 못 만났는데요?"
"아아, 나야트레이는 입학식을 마치고 즉시 짐을 가지러 갔습니다. 아마 내일까지 온다고 했었죠."
"우웅, 혹시 방 번호도 아세요?"
"물론이죠. 정확히는 번호라기보다는 위치를 알지만요. 안내해 줄테니 따라오세요. 그리고 밀라 네브라스카?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화부터 내지말고 좀 더 알아보고 화를 내던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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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군요. 확실히 밀라의 아버지인 줄 씨는 수완이 뛰어난 거상이시죠. 모험심도 많으셔서 직접 배를 몰고 다니시니까요. 덕분에 밀라도 바다에서 사는 날이 많아서 여자아이 치고는 거친 편이죠. 바닷사람의 프라이드도 강하고..."
"시벨린 선생님은 그 누나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그야..밀라가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말이죠. 자, 여기랍니다, 티치엘 쥬스피앙. 앞으로는 길과 방 번호를 꼭 외우도록 하세요."
"고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티치엘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게...알고 봤더니 루시안이 쓰는 방의 바로 맞은편이 아닌가.
"하아...티치엘도 정말이지....대단하달까..."
"아니...저는 그것보다 방 찾아주러 나왔다면서 맞은편은 왜 살피지 않았는지가 궁금한데요."
쿵! 시벨린의 말이 돌덩어리가 되어 루시안의 머리를 직격하는 순간이었다. 하긴...제대로 안 보기는 했지...
"어라, 루시안? 혹시 티치엘 방 찾아주고 온 거야?"
"에에...응. 그게, 우리 방 맞은편이더라고. 여기, 여기."
벤야와 헤어지고 기숙사를 한참동안 뒤지던 보리스였다. 꽤 한참동안 찾아다닌 듯 단정히 차려입었던 교복 자켓을 벗어 손에 들고 있는 채였다.
"그동안 어디있었어? 난 계속 찾아다녔는데.."
"그게...길 헤메다가 2학년 기숙사까지 갔었어. 시벨린 선생님 덕분에 다시 제대로 찾아왔지만."
"어? 선..생님?"
잠시동안 존재감이 잊혀져있던 시벨린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리스 진네만 군이로군요. 실버 스컬에서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그 때는 분명 보리스 미스트리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아, 그건...그 때는 제 이름은 쓰기엔 곤란한 사정 때문에...보리스 진네만이 원래 이름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시벨린 우'라고 합니다. 검술지도와 기숙사를 관리하고 있어요. 앞으로 잘부탁해요. 자아,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볼게요. 오늘은 입학 첫날이라 수업이 없으니까 푹 쉬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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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 같았어. 그치?"
"그래?"
"웅, 아닌가?"
"선생님?"
기숙사로 들어오면서 중얼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막시민이 물었다.
"헉, 매, 매사가 귀찮은 막시민이 관심을 보였어! 이럴수가!!"
"그래서 불만이냐? 선생들 성격을 알아야 수업시간에 잘 수 있을 거 아냐?"
"그...그런거냐..."
"그래봐야 시벨린 선생님은 검술담당이잖아. 수업은 어차피 연무장에서 할 걸."
"쳇.."
"시벨린 선생님?"
이번엔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란지에가 관심을 보였다. 란지에가 궁금해하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물었기에 루시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복도에서 밀라를 만난 이야기, 시벨린이 중재해 준 이야기, 티치엘의 방을 찾아준 이야기, 보리스를 만난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란지에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아아, 말로만 듣던 '여왕님과 붉은기사'네."
"뭐..?"
"밀라 네브라스카, 네냐플의 여왕님이라고 불리는 선배지. 사고가 꽤 많은 걸로 알아. 그리고 시벨린 우. 밀라 선배의 행동을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제지해서 여왕님의 기사라고 하는데 보통 그 붉은 머리 때문에 붉은기사라고 불려."
"그...그렇구나.."
그 많은 사건들 속에 입학식의 날은...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네냐플에도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4. 여왕님과 붉은기사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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